oro 세계 인터넷바둑의 허브
  • 겜임&채널
김옥균 바둑을 말하다
Home > 컬럼 > 이청
김옥균 바둑을 말하다
2010-06-15     프린트스크랩

 

김옥균과 바둑에 대한 에피소드는 편수도 많고 내용도 여러가지다. 에피소드의 출전을 좇아가 보면 대부분 김옥균 본인의 육성이 아닌 제3자의 전언이거나 창작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김옥균이 바둑 애호가였다는 점은 그가 남긴 기보나 기타 방증자료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필자는 얼마전 윤치호가 수납자 미상에게 보낸 간찰 속에서 김옥균의 바둑 사랑을 보고 놀랐다.


- 옥균은 바둑을 좋아했다. 그는 바둑을 말하기를 절개 있는 여자라 했다. 기생은 남자들을 바꾸는 게 일이지만 자신을 대하는 바둑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다
. (均好碁也 其有節美色 妓換夫多伴事 我對碁不變耶)

 

(윤치호가 2대 사장을 지낸 독립신문)


윤치호는 김옥균과 조선의 개화라는 대의를 공유함과 동시에 갈등관계를 유지했던 인물로 자신의 문집에서도 여러번 김옥균을 언급한 바 있다. 윤치호도 바둑광이던 아버지 윤웅렬의 영향으로 바둑을 일정 부분 이해했던 듯하다.위의 자료도 제3자의 언급으로 김옥균의 바둑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라 하겠다.

김옥균이 직접 바둑을 언급한 자료는 '갑신일록(甲申日錄)'이 유일하다. 갑신일록은 일본 수나가하지메(順永元) 문고에 소장된 일기로 갑신정변을 주도했던 김옥균의 육성자료다. 이 자료 속에 두 건의 바둑 기록이 있다. 윤치호는 이 일기 속에도 등장한다.


- 1884년 11월7일.
조선 고수 두 명을 데리고 공사관(일본)에 갔다. 관원 우치가키(內恒)가 바둑을 잘 두어 조선인과 일본인의 바둑을 다투게 한다는 구실이 적당했다.

김옥균은 정변을 도모하며 일본의 지원을 적극 모색하며 일본 영사관을 무상출입한 듯하다. 주변의 눈을 피하기에 바둑이 그만이라는 육성인 것이다. 김옥균은 며칠 후에 다시 한번 바둑을 기록한다.

- 1884년 11월10일. 어제 있었던 바둑모임(圍碁宴)의 답례로 신축한 나의 집으로 다케조에(일본공사), 시마무라(서기관), 고바야시 영사 등을 초대했다. 우리 쪽에서 서광범, 박재형, 윤치호가 함께 했고 홍영식이 늦게 왔다. 시마무라와 옆방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

 

 (강범석이 검토한 갑신일록 자료사진)


위의 자료는 한일은 물론 북한의 학자들의 연구로 믿어도 좋다와 기록의 예민한 부분 곳곳에 가감의 흔적이 있다는 정도의 논의가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바둑부분은 조작(?)의 여지가 없기에 김옥균의 육성자료로 믿어도 좋다고 본다.

김옥균은 바둑마니아다. 상당한 기력의 소유자기도 했지만 위의 자료는 김옥균이 바둑을 혁명의 공간 안에서 매우 유용하게 사용한 전략가였음도 보여준다. 당시 김옥균을 중심으로 뭉친 개화파를 주시하던 포도청, 한성부, 형조 등의 기찰망의 삼엄한 감시를 뚫고 개화파가 수시로 모일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바둑두는 것뿐이었다.

우치가키는 영사관 직원으로 훗날 김옥균이 일본 망명시 일본의 바둑계와 길을 터주는 중요한 인물로 김옥균의 지음을 받았다. 김옥균은 바둑을 좋아한 애기가였고 바둑을 혁명공작의 한 방법으로 이용도 했지만 그것에 그치고 말았다면 김옥균이 아니다. 김옥균은 자신의 좋아하는 바둑의 한반도 전래를 궁금해 했고 나름 해답에도 이른다.

김옥균은 한반도에 들어온 바둑의 시초를 인도로 보았다. 바둑이 중국에서 발생하여 한반도로 직접 들어온 것이 아니라 인도에서 남중국을 거쳐 한반도로 들어온 것으로 본 것이다. 한국바둑사에 바둑의 해외기원설을 논리화한 사람은 최남선이다. 물론 그 전에 유본학 등이 언급을 한 적이 있지만 그저 들은 풍월(?)이고 본격적인 논지를 전개한 사람이 최남선이다. 최남선이 언급도 바둑의 인도기원설을 주장하던 학자들인 '마원중' '혁단평' 등의 설을 인용한 것에 그치지만 최남선의 나름의 바둑연구는 허투루 넘길 수 없다.

김옥균의 한반도 바둑인식을 최남선이 계승(?)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김옥균과 최남선 사이에는 오세창이 있다. 그들은 한 세대를 사이에 둔 선후배다. 이들 세 사람의 바둑인식도 비슷하다. 세 사람 모두 바둑마니아였다. 김옥균은 바둑에 살고 바둑에 죽었다 할 정도로 바둑광이었고 오세창 최남선은 모두 바둑책을 출간할 정도로 애기가였다.

최남선은 '조선상식' 속에 '위기'라는 타이틀을 달아 바둑사를 전개한다. 중세와 근대, 그리고 근대와 현대라는 역사의 큰 매듭의 자리에서 한국바둑의 역사를 가늠했던 최남선의 정리는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하지 않다.

김옥균을 바둑과 연관지어 말하는 글들을 많이 본다. 몸통과 가지들이 따로 놀며 출전과 근거도 미약한 내용이 너무 많다. 일례로 김옥균이 본인방가의 분란을 중재했다는 등의 설은 너무도 사실과 동떨어진 것이다. 미완의 혁명가 김옥균 그 사람이 바둑계 안에서 온전한 모습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바둑인들의 분발이  필요하다.

 


  • 페이스북
  • 구글+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트위터
이전 다음 목록
┃꼬릿글 쓰기
하나바 |  2010-06-15 오전 9:11:1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多伴事? 茶飯事?  
알프스소년 |  2010-06-15 오전 11:35:0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좋은 자료, 좋은 글 너무 감사합니다. 이청님 책은 한권 밖에 사드리질 못했네요.
꾸준한 글 부탁드립니다. ^^*  
callme |  2010-06-17 오전 2:30:3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정말 김옥균이 혁명가였나요?  
靈山靈 빵장사인거 모르시나여?
난빈삼각 그 시대에 영어회화도 어느정도 할 정도의 인물이라면.......안동김씨남자들이 명이짧지여...피가뜨거우니..
난빈삼각 |  2010-06-29 오후 10:13:4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고균'은 바둑을 좋아했다./가 아닌강....  
네눈티끌 |  2013-03-07 오전 7:48:0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최남선의 정리는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하지 않다?- 과하지 않다 또는 부족하다라고 해야 논리적일듯--  












* 띄어쓰기 포함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000 / 400바이트)
대국실입장하기
다운로드 이용안내 고객센터
정회원가입
오로볼구매
가장 많이 본 기사
스폰서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