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마니아를 자처하다 보니 옛날 바둑 기물들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바둑사가 궁금하다는 막연한 호기심에 시작한 바둑사 찾기의 행마에서 바둑판, 바둑알, 기보 등을 보게 되는 것이 의외의 일은 아닐 터이다. 수일 전 한 고서경매장에 나온 기보(碁譜)를 보았다. 책자는 기보라 쓴 표지와 24쪽의 내용 외에 다른 설명은 일절 없는 비공개 작품이었다.

필자가 검토해본 기보는 1883년 또는 1823년 충청도 태안군 소원면에 살던 사람의 필사작으로 보여진다. 내용의 검토로 일단 그렇게 판단했다. 필자는 경매장에서 본 기보 외에 대략 20종의 기보를 파악하고 있다. 1765년 민백흥의 기보부터 최남선의 기보까지 그 숫자가 결코 적지 않다.

이 기보는 표지 다음장에 기보를 읽는 방법과 중국의 '기경'들에 들어있는 잡다한 '위기부' 한편이 소개되어 있고 다음 페이지는 묘수풀이로 일관되어 있다. 출전은 현현기경은 물론 선기무고, 명대혁보 등을 망라한다. 그리고 뒷장에는 필사자의 바둑을 대하는 마음이 담긴 시 한편과(이 시 속에 필사자가 살던 곳의 단서가 있다), 바둑판을 인의예지신(仁義禮知信)으로 본 인식이 특이하게 다가왔다.

마지막 페이지의 인의예지신은 바둑판의 평상거입(네 귀퉁이)을 말한다. 사배자식 바둑에서 흑 좌상 우하, 백 우상 좌하를 배치하고 백이 선수로 천원(신)에 착수하는 형식을 말하고 있다. 기보 속에는 우리가 말하는 순장식 기보용지도 한 점 들어 있다.

이번 칼럼은 그동안의 딱딱한 내용을 반성(?)하는 의미에서 사진자료로 대신한다. 부족하지만 내용파악은 거의 되어 있기에 차후에 소개하겠다.

위의 시의 내용을 한번 해석해 보기를 권한다. 그렇게 어렵지 않다. 이 한편의 시 속에 기보와 바둑의 의미 그리고 필사자의 사는 곳이 담겨 있다면 놀랄 일이다. 미고(迷古)하지 않고 숭양(崇洋)하지 않겠다는 말의 의미가 새삼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