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의 문인들 중 다소 특별한 사람들이 있다.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 박제가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학자이자 성군이던 정조의 발탁을 받을 정도로 나름대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다. 이들은 '후4대가'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졌고 학문적 용어로 실학파로 대접(?)을 받는 사람들이다. 동시에 이들 모두는 바둑에 대한 기록들을 남겨 바둑인들을 즐겁게 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실학파는 조선후기 '이용후생경세치용' 하자던 사회 운동이다. 우리는 실학파를 암울하던 중세 봉건시대에서 근대라는 신천지로 안내하는 사상의 조타로 배웠고 또 그리 알고 있다.

실학파 중 박제가(朴齊家, 1750-1805)는 단연 발군이다. 그는 서얼 출신으로 타고난 재주가 있어 정조의 발탁으로 규장각 검서관으로 자신의 포부를 펼친다. 박제가는 초 일류 시인이었다. 그는 일류의 문장과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심원한 학문적 역량을 자랑(?) 했다. 박제가의 시는 청의 유력 학자 '이원조'에게 당 시인 백락청에 버금간다는 평을 받은 정도다.

- 박제가의 시는 볕처럼 반짝이고 조개처럼 광이 나며 이무기가 노는 듯하고 언덕의 그늘같이 어두우며 구름의 음산함을 닮았다. 마르고 건조함이여 봄날 냇가에 핀 꽃과도 같으니 아, 천하의 기이한 문장이다. (초당집 이원조평)

박제가는 연경의 유리창에 들어와 있는 선진문물을 조선에 들여올 것을 주장한다. 새로운 문물이 조선을 부강케 한다는 것이다. 정조는 박제가의 이런 생각을 주목하고 그를 고무한다. 유득공 이서구 이덕무 등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정조의 인물 사랑을 포장은 하지 말자. 정조는 실학파에 대해 냉정했다.

- 이덕무 박제가 등의 문체는 패관소품이다. 내가 이들을 내각(조정)에 두는 것은 이들의 문체가 좋아서가 아니다. 다만 이들의 처지가 특이하고 스스로 하고자 하는 표방이 있기에 한번 길러 보는 것이다. (홍제전서)

조선실록 속의 정조의 박제가평은 한술 더 한다. 거의 인신모독 수준이다. 정조는 실제로 박제가의 문체가 순정하지 못하다 하여 반성문을 쓰게 한 적도 있다. 박제가는 이렇게 반성문을 쓰고 있다.

- 신은 13경을 날줄로 삼았고 25사를 씨줄로 삼아 서로 얽어 근본을 따르고자 하는 것이며 실용에 귀일토록 할 것입니다. (초당집)

필자는  박제가를 평가할 생각이 없다. 그럴 실력도 입장도 되지 못한다. 다만 박제가의 문집에 바둑을 말한 시 한 편이 있는 것이 그저 반갑고 고맙다. 박제가는 충청도 공주의 한 역장을 맡아 수년을 근무한 적이 있다. 오늘날의 공주 부여 청양로를 담당하던 이인도(利仁道) 찰방이다.

비둘기 소리 시끄러울 때 술친구 돌아가고

찰방실에서 종일 시를 지었네

계란빛 종이는 갑사에서 나오고

사향내 나는 먹은 공주의 특산물이지

신선처럼 노니는 고기는 밤새 천리를 가고

도는 책속에 표범 무늬마냥 돋보인다네

한양으로 돌아갈 일 까마득하고

(나는) 절벽 누각에 앉아 바둑이나 두고 있다네

(鵓鳩聲襄酒人還  終日我詩簿領問 卯色新笺來岬寺 麓香官墨出公山

神遊物表魚川里 道在書中豹一斑 歸計差池成筮隱 碧欄紅閣奕碁聞)

박제가는 당당하고 거침없는 성격이었다. 당대의 실력자 심환지의 면전에서 책상을 뒤엎기도 했었다. 국책연구소 연구원이 교육부장관에게 책상을 엎으며 항의를 한 셈이다. 박제가는 자전소품(自傳小品)이란 글에서 참으로 호연(浩然)한 발언을 한다.

-몸뚱이는 남아도 정신은 흘러간다. 뼈는 썩어도 마음은 남는다. 나의 말을 알아 듣는 사람은 아마도 생사와 이름을 초월하는 곳에서 나를 만날 것이다. (초당집)

오늘 박제가가 근무했던 충청도 이인역은 흔적도 자취도 없다. 그가 바둑친구들과 앉아 바둑을 두던 누각은 더더욱 없다. 그러나 그가 남긴 한 편의 바둑시는 남아 초정 박제가를 다시 생각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