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 조선의 바둑판을 소개하며 바둑판 밑에 쓰여진 기반명을 말한 적이 있다. 홍석주, 김매순과 더불어 19세기 최고의 문인으로 손꼽힌 '홍길주'가 친구 '상덕용'이 손수 만들어 온 바둑판에 아래와 같은 문장을 써 준다. 홍길주는 바둑을 좋아한 어머니 서씨의 영향으로 바둑을 즐겼던 인물이다.
그 판 평평하고 그 판 곧으니 반듯하고 바르도다. 이겼다고 으쓱하고 졌다고 다투지 않으니 덕을 따름이다. 공자도 노느니 바둑도 좋다 하셨고 맹자도 '전심치지'를 비유하셨으니(다른 이유가 없다) 모자란 선비가 이를 명에 새기노라.
碁盤銘. 尙德翁作碁盤 洪子爲之銘. 平其基直其行 方正勝毋僖敗毋爭 循德性 孔曰 賢乎巳 孟云 專心致志 有迂一士銘以識其意.
이 바둑판이 전하지 않는 것이 안타까우나 아마도 좋은 바둑판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면서 조선의 바둑판 몇 점을 박물관 등지에서 살펴보았다. 오동나무에 17점이나 24점 장점을 찍은 바둑판이 몇 점 전하나 그렇게 마음을 사로잡는 바둑판이 없어 아쉬웠으나 며칠전 눈을 번쩍 뜨게 하는 바둑판을 보았다.
이 바둑판을 필자에게 소개해 준 사람이 박성균 아마7단이다. 박사범은 일본에서 순장바둑판을 한 점 구해와 국립민속박물관에 전달한 사람으로 바둑고수이자 바둑관련 유물 수집가이기도 하다. 그런 박사범이 일본의 소식통을 통해 바로 이 바둑판 정보를 주어 필자도 보게 되었다. 보는 순간 전율이 일었다. 세상에 태어나 이런 화려하고 멋스런 바둑판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이름을 짓자면 이 바둑판의 이름은 '대모나전 용 귀문 기반(玳瑁螺鈿 龍 傀紋 碁盤)'으로, 바다거북 껍데기와 소라껍데기로 칠기를 한 바둑판 정도겠다.
바둑판은 화려하기 그지없던 나전칠기 기법이 문양의 구도와 대칭에 여백을 주기 시작한 조선후기의 양식으로 화려함 속에 안정을 추구한 모습이 보는 이를 감탄케 했다. 일단 바둑판을 정리해 보았다.
- 17개 장점이 있다.
- 오동나무에 이중으로 배를 대어 공명음을 발생하게 했다. 조선식 바둑판에 나타나는 형상이다.
- 네 다리에 괴문을 조각해 달아 맸다.
- 소라껍데기로 칠기를 하고 거북껍데기로 용을 장식했다.
- 19로 줄은 음각으로 은으로 새겨 넣었다.

바둑판에 사용된 거북껍데기는 야기라 부르는 아랍산 거북등껍데기, 즉 대모를 사용했다. 대모는 신라시대부터 궁중 사치품의 최고 품목으로 '인도 침향, 아랍 대모'라 할 정도로 귀하고 고가인 재료다. 이 재료로 바둑판을 치장하고 은사입사(銀絲入絲)를 한 점이 돋보인다.
시대를 측정할 수 있는 자료는 없었다.
그러나 용의 발톱이 일곱 개인 것이서 고종시대 제작된 것으로 유추할 수 있었다. 일곱 개의 용발톱은 중국황제의 전유물이었던 역사적 맥락을 헤아리면(사대하던 나라에서는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 조선에서 황제로 등극한 분이 고종임금이었으니 그때로 추정된다. 시기는 1897년에서 1900년 사이쯤 아닐까 한다.
한동안 바둑에 관심이 멀어졌었다. 글쓰기도 심드렁 했다. 그런던 차에 이 바둑판을 만났다. 그리고 밀어 두었던 바둑일기장을 다시 끌어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