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맞이 놀이로 저포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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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맞이 놀이로 저포를 소개한다
2014-01-01     프린트스크랩
▲ 저포판과 저포 도구.


새해부터 정월 보름까지 조선의 새해 벽두를 지배하던 놀이는 윷과 저포였다. 얼마전 고향 인근에서 백제 민속 재현 행사가 있어 참석했다가 놀랍게도 저포를 시현하고 있어 관심있게 보았다. 저포 시연은 물론 저포에 대한 학술 세미나까지 열고 있었다. 저포판과 4개의 가락 그리고 6개의 말이 준비되어 있고 4개의 가락에 쓰여진 犢 塞 塔 雉 秀 梟 開의 전개에 따라 말을 움직이는 윷과 비슷했다.


놀라운 것은  저포판(樗蒲盤)이었다. 19로 바둑판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저포라는 게임이 동북아시아에서는 이미 실전된 게임인 줄 알았다. 필자가 알기로 육박이나 박색, 곤 등의 다른 게임도 실전된 줄 안다.

그런데 초사(楚辭)에 등장하는 '成梟而牟'가 공주땅에서 재현되고 있음을 보고 신기했다.
초사(楚辭)의 「초혼(招魂)은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효(梟)를 이루어 두 배로 이기고( 成梟而牟)
오백(五白)을 부르짖네 (呼五白些)


라는 것인데 주석은 “효(梟)는 이기는 것이고 모(牟)는 두 배로 이기는 것이다.”고 말한다. 오백(五白)은 바로 오채(五采)를 말하는 것으로 제나라는 환공(桓公)의 휘를 피하여 오호(五皓)라고 한 고사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물론 필자의 눈 앞에서 재현되고 있는 저포가 과거 진실의 저포가 맞는지 그건 논외(?)다. 재현자는 연기향토문화연구소였고 시현무대가 충청남도의 거족적 대백전 행사장이니 일단은 하나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저포는 조선중기의 문헌까지는 비교적 잘 나타나다 후기로 오면서 급격하게 빈도수가 떨어진다. 아마도 저포의 유행주기가 다한 때문은 아닌지 싶다. 저포의 등장은 김시습의 만복사저포기가 대표일 수 있다고 본다. 김시습의 글 속에는 저포 바둑은 물론 곤(困) 박색(博塞) 쌍륙(雙六) 등이 등장한다. 다음이 김시습의 시  '戱爲'  즉 '장난삼아 쓴다' 정도의 제목이다.


呼牟博塞大叫後
催兒賭得饅頭盤.


박색을 하며 모야 큰 소리로 외치고
아이를 시켜 내기한 만두를 사오네.


박색에 '모'를 외치는 장면으로 박색과 저포 윷 등이 비슷한 형식의 게임이었는지 그도 궁금하다. 김시습은 '저포를 하며'라는 시를 한 편 쓰기도 한다.

鄕樗蒲只四白
馬跡五圍耳
命屯盧變犢
運通花防之


우리나라 저포는 가락이 네개
말밭은 빙둘러 다섯곳
운 따라 노루와 송아지가 되고
재주를 만나면 꽃길마냥 단숨이라.



저포는 '抱朴子'에 惑有圍碁樗蒲而廢政務者矣이라 나오듯 벌써부터 세상에 근심거리였던 모양이다. 저포는 윷과 비슷하면서도 바둑판과 거의 흡사한 반상에서 놀았던 듯하다. 바둑기록 외에는 별다른 흥미가 없는 필자의 관심은 여기까지다. 그리고 김시습은 만복사저포기 속에 참으로 아름다운 바둑담 한 토막을 남긴다.

한 그루 배나무에 핀 꽃 고요함을 짝하고
가련토다 달밝은 날을 헛되게 보내누나
청년은 외로이 창가에 턱을 괴고 앉았는데
어디에 계시나 옥통수 부시는 님은
짝 잃은 물새 혼자서 날아가고
님 잃은 원앙은 맑은 강에서 노는데
그 집에서 만나 바둑 두자던 약조 잊으셨는가
밤마다 창가에서 불꽃점을 친다네.


( 一樹梨花伴寂寥 / 可憐辜負月明宵 / 靑年獨臥孤窓畔 / 何處玉人吹鳳肅 / 翡翠孤飛不作雙 / 鴛鴦失侶俗淸江 / 誰家有約敲碁子 / 夜卜燈花秋倚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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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타령 |  2014-01-01 오후 3:38:0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흥미롭네요. 제가 <만복사저포기>가 든 <금오신화>로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때 "저포"가 무엇인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런 기사를 보게 되니 감회가 깊습니다. 새해 첫날 무언가 가슴이 뭉클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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