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무 박혁론 바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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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 박혁론 바로 읽기
2014-01-13     프린트스크랩
▲ 눈 내린 서산 서광사. 이곳에서 바둑 템플스테이가 열리고 있다.
    
 

역사적으로 바둑론(論)에 도전했던 사람을 손꼽으라면 이덕무, 정원용, 최남선 정도가 아닌가 한다. 바둑의 역사가 오래이고 기예(技藝)의 하나로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 해도 바둑의 근본을 묻는 질문은 드물었다.

이런 점에서 이덕무의 '박혁론'은 실로 보석 같은 자료다. 이덕무는 평생을 업으로 많은 글을 썼다. 그의 관심은 박람(博覽)이어 세상의 온갖 것들을 탐색했다. 바둑도 예외가 아니어서 아예 논(論)이란 독립의 장으로 예리하고 냉정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덕무의 박혁론은 1970년 민족문화추진회의 주도로 국역이 된 바 있다. 역자는 최완수다. 박혁론은 원고 15매 분량의 소략한 것으로 몇몇 바둑 필자들의 소개로 바둑계에도 알려졌다. 물론 원문의 대조나 검토작업 없는 정보제공 수준이다.

박혁론의 주장은 간단하다.

바둑은 예가 아니다. 바둑은 요임금이 만들지 않았다. 바둑은 배울 점도 없다. 바둑은 백성의 생업을 망칠 정도로 중독성이 강하다. 바둑은 유학의 적인 노자나 장자와 같은 이단이다. 나는 바둑을 모른다. 그리고 알고 싶지도 않다.


이덕무의 바둑관은 성호 이익과 비슷하다. 성호는 바둑을 두는 자는 미친놈이다, 할 정도로 안티(?) 바둑인이었다. 이덕무는 이익과 비교되는 박학(博學)의 소유자면서 공리공담보다는 생활 학문을 하자는 실학자로 박혁론은 야박할 정도로 바둑에 지탄을 가한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인 느낌이다. 이덕무를 조금 더 알고 박혁론을 뒤집어 읽어보면 이덕무의 박혁론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덕무는 바둑을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다고 했지만 그 말은 사실이 아니다. 이덕무는 바둑의 이해가 깊었고 둘 줄도 알았다. 청장관전서 영처시고 1권에 희영기호운응구(戱詠碁呼韻應口)란 시가 있다. 친구가 재미로 바둑을 떠올려 운을 부르기에 자신이 곧바로 시를 지었다는 작품이다.

정자에서 한가롭게 바둑을 두니
텅텅 흑돌 백돌 놓는 소리
뒤섞여 흩어졌다 내려 앉는 듯
백사장에 점찍히듯 오리와 기러기.

이 시는 박혁론의 이덕무의 육성과는 배치된다. 지극히 평화롭고 기품까지도 느껴지는 바둑관이 담겨져 있다. 이덕무는 이 시뿐만 아니라 아정유고 8권에 스스로 자신이 바둑인임을 토로한다. 친구 '윤가기'에게 보낸 편지에서다.

내가 갖고 있던 기보 한권을 그대에게 주노니 1년 360일을 바둑판으로 삼고 스스로의 재주와 연륜을 바둑을 두는 상대로 삼아 삶에서 영원히 이기는 방법을 찾기를 바랍니다. 삶의 바둑은 그대로 두고 그대의 재주를 힘쓰고 만전을 다하며 세력을 잃지 않는다면 마치 샘물이 솟고 토끼가 뛰며 매가 내려 앉는 듯한 기상으로 소리를 친다면 못이길 것이 뭐가 있을까요? 내년의 바둑도 이렇게 하고 후년의 바둑도 이렇게 둔다면 비록 백년을 산다해도 편할 겁니다.

이덕무는 분명 기보(碁譜)라 했다. 자신이 갖고 있던 '기보'를 윤가기에게 준다고 했다. 이덕무는 기보를 선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친구의 인생을 바둑과 비교하며 삶에 굴하지 않는 건강한 삶이 되기를 바라고 권한다 했다. 기보를 소장하고 있다가 친구의 인생을 바둑에 빗대어 이만큼 충고를 하는 이덕무가 바둑의 문외한이라면 이건 거짓이다.

박혁론은 바둑에 생업을 망칠 정도로 빠져있는 백성들이 많음을 지적한 글이다. 바둑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농공상을 가리지 않는다고 한다. 바둑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심지어 주인과 종이 신분을 망각하고 서로 승부를 다투는 등 도무지 제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박혁론은 바둑이 아무리 재미가 있다고 해도 부모자식 간과 주인과 노복 간에 그러면 안된다고 한다.

박혁론은 그 이유도 말하고 있다. 바둑이 고기맛보다 좋다는 것이다. 한번 바둑을 배우면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잊을 정도란다. 이쯤되면 우리는 이덕무의 박혁론의 집필동기를 수긍케 된다. 이덕무는 안티 바둑인이 아니다. 다만 바둑의 지난친 붐에 제동을 걸고자 한 것이다.

영정조시대 조선에는 흥청이는 문화가 있었다. 악(樂)과 무(舞)가 있는 기방, 듣기 좋은 창과 실전 유희가 있는 광대패, 골방에서 벌어지던 투전, 돈을 주고 빌려다 보는 희설(소설), 글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책을 읽어주는 책방, 그리고 이덕무가 나서 입에 거품을 물고 성토하던 정도로 조선팔도에 퍼진 바둑의 열풍이 있었다.

영정조시대를 흥기했던 바둑은 이덕무의 박혁론 같은 두가지 얼굴로 나타난다. 바둑의 유행 선도와 한편으로는 유행을 걱정하는 이율배반의 두개의 시각이 그것이다. 이덕무는 내면으로 바둑을 긍정하고 외면으로 강하게 부정한다. 그러나 강한 부정은 긍정이란 말이 있듯 이덕무의 박혁론은 결국 긍정론이다. 이덕무는 박혁론에서 다시 말한다.

바둑은 기예 중에서도 고상한 것이다. 무릇 모든일에 깊게 빠지면 지난친 것이기에 바둑에서 고상함을 취하고 도박과 다툼을 배제하면 이것은 인간의 도(道)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이덕무가 진실로 하고 싶던 말이다. 이덕무는 박혁론으로 바둑을 강하게 부정하면서 결국은 긍정하는 주역식 사유방식을 보여준다. 이덕무는 박학을 주장하지만 전문성 없는 박학은 조소했다. 이덕무는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학문의 부족을 탓하며 누군가의 기탄 없는 질정을 고대했다.

이덕무는 자신의 식견 부족을 탓하는 것이라면 조계의 봉(棒)과 운문의 할(喝)도 마다치 않겠다는 각오를 피력했다. 이덕무의 박혁론은 기승전결이 있는 논문이다. 바둑의 요순설을 당나라 학자 '피일휴'를 거론하며 일축한다. 그리고 바둑은 '예도'의 축에 끼지 못한다 단언한다. 그러나 그 일축과 단언에 힘(?)이 없다. 그것은 이덕무 본인이 더 잘 알았다. 박혁론을 다 쓴 후 그는  찾아온 친구와 바둑판을 내놓고 한판 대국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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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디77 |  2014-01-13 오전 10:57:5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글 하나만 읽고 판단하기에는 그 사람의 인생과 철학이 어떠했는지 알 수 없다는 말씀이군요.
필자의 해석이 무릎을 치게 만드네요. ^^* 내가 짧았구나 ㅎㅎㅎㅎㅎㅎㅎㅎ  
手談山房 |  2014-01-13 오후 2:04:4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박지원. 이덕무.홍대용.이서구.유득공. 정약용 그냥 불러봅니다.조선의 실학자 지식인
바둑마니아!!!!  
AHHA |  2014-01-13 오후 6:36:4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바둑을 좋아 하다보니,개화기 유명 인사들이 모두 바둑 고수로 보입니다. 타이틀 보유자 @ 天元(춘원) 이광수.. 도전자 @ 六段 (육당) 최남선, 시드 @五段(위당)정인보....  
충령산 |  2014-01-13 오후 7:25:2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서광사가 저리 생겼나요? 아닌거 같은디~~
3층 건물로 기억 합니다.  
bank 서광사 본당입니다~ 천년 역사에... 서광사에서 좌측으로 300m 들어가시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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