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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고래등'싸움에 끼어든 미운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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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고래등'싸움에 끼어든 미운오리
2012년 사건사고 3/ 미운오리의 반란이끈 '명장'한종진, 도깨비팀 오로 3위 이변
| 최병준 2012-12-29 오전 00:23 [프린트｜스크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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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버오로가 창단한 2012 한국바둑리그 스마트오로 팀의 위엄! |
모든 일은 코미디의 한 장면처럼 시작됐다. 이를테면 그것은 갑자기 누군가의 '불쏘시개'가 되라는 것이었다.
이러쿵 저러쿵 말이 오갔지만 대충 건너 짚어 하는 말들이 현실이 되리라 믿는 사람들은 없었다. 대기업들이 후원하는 한국리그 판에, 눈꼽만큼이나 작은 회사인 '사이버오로'가 팀을 만들어 참가하는 것은 '고래등 싸움에 자청해서 끼이는 새우짓'이었기 때문이다. 누가보더라도 그랬다.
그러나 2012년 한국바둑리그 출범 1주일 전까지 계획했던 10개팀중 1팀이 모자라자 사정이 급박해졌다. 바둑리그 사상최대인 10개팀을 위한 '비상 대기조'로서, 바둑흥행을 위한 거룩한 '불쏘시개'로서 사이버오로가 올 한해 만큼은 나서주야 한다는 이야기가 급물살을 탔다 . '절대 안된다'는 오로 내부의 소리는 '바둑을 위한 대의'라는 압박에 묻혀졌다.
한국기원을 비롯한 바둑계 주요 관계자 몇몇이 오로사무실을 오가더니 결국 사이버오로가 참가하는 것으로 확정이 됐다. 지난 2월말부터 3월초까지 숨가쁘게 전개된 상황이었다. 숨가빴다. 우습다고 생각되었던 것이 , 코미디처럼 생각되었던 일들이 눈앞의 현실이 됐다.
한종진 감독, 최연소 감독으로 무대 등장
기왕 하는 것 멋있게 가자!
감독 '선임'에 있어선 오로는 한종진 감독(33)을 택했다. 한 해 리그를 책임지는 각팀 감독들중 가장 나이가 적다. 지나와서 하는 소리지만 '최연소'라는 이 부분에 대해 은근히 말이 많았다. 젊은 감독들은 그들대로 놀라는 눈치고, 일부에서는 '오로가 이상하다'는 식의 반응도 제법 나왔다. 40세이상의 감독 선임이 맞다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그런 것을 지키느니 리그 후원을 포기하겠다"는 다른 후원사가 오로팀 창단 훨씬 이전에 있었다. 그 팀은 40세 이전의 젊은 감독을 임명했고, 따라서 한종진 감독의 선임은 문제가 없었다.
리그에 참여한 선수들은 오로를 꺼렸다(?!). 예선을 통과하거나 리그 시드를 받은 선수들은 오로에서 평소의 친분(?)으로 자신을 지명할까봐 은근 겁내는 분위기까지 있었다. 많은 선수들이 기왕이면 대기업 팀의 소속 선수가 되기를 기대했다. - 도대체 오로는 왜 나온 건가? 박치문 중앙일보 전문기자가 정확히 표현한 그대로 시작부터 '미운오리'다.
감독직을 흔쾌하게 일말의 주저함 없이 받아들인 한종진 감독도 주위의 이런 분위기를 모르는 바 아니었다, 부담이 컸다. 한 감독은 "호흡이 잘 맞는 선수구성을 통해 1년간 잘 놀아보겠다, 1년 뒤에 누가 더 잘 놀았는지 겨뤄보자"는 전략으로 주위의 분위기에 맞섰다. 이렇게 한종진의 느낌이 강하게 배여있는 선수구성이 나왔다.
▲ 한종진 감독
3월 19일, 한종진 감독은 선수지명식에서 이영구, 김승재, 홍기표, 안조영, 조훈현까지 다섯을 지명했다. 조훈현(59세) 9단은 리그 최고령 선수다. 바둑황제 조9단은 자신도 오로팀이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오로와 경쟁하는 바둑싸이트의 대표이사를 지냈기에 그렇기도 하다. 이로서 오로팀은 최연소 감독과 최고령 선수가 공존하는 팀이 됐다.
이 팀 구성에 대해 초반의 평가는 별로 좋지않았다. 대놓고 이야기하진 않았어도 오로팀에 대한 평가는 '대표적인 약팀' 내지 잘봐주면 '도깨비팀'에서 멈추곤 했다. 다만 '이런 구성을 상상하기가 힘들다. 막상 결과는 모른다'고 김성룡 감독이 가장 솔직하게 가장 높이 오로를 평가해줬다.
○● 한종진, 명장의 조건
'우승'까지는 아니더라도 '꼴찌'를 하거나 밑바닥에서 박박기면 아무리 '불쏘시개'라도 좀 슬프지 않을까? 한종진 감독은 그냥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사상 최대인 10개팀의 리그는 기존 팀과 신생팀의 선택이 관심을 끌었다. 선수 지명에서 기존 선수를 이미 보유한 팀들은 유리하다. 선수지명식 전부터 이세돌과 한상훈을 사전지명한 신안천일염은 그 자체로 이미 우승후보였고, 전기 우승팀으로 강동윤, 목진석을 보유하고 출발한 포스코또한 그랬으며, 김지석과 윤준상을 보유하게 된 한게임도 출발이 좋다. 바둑리그 신생팀인 SK는 주장 최철한을 정관장은 박정환을 롯데는 이창호를 선택했다.
당초 오로의 한종진 감독 선임에 대해, 바둑계 주변에서 놀라워한 것은 한 감독이 다소 튀는 구석이 있고, 덜렁거리는 느낌도 있어서였다. 이러면 나이에 비해 더 어려보이게 된다. 그러나 승부는 보통의 생각보다 조금은 더 냉정하다. 지나고 나서 리그 1위부터 4위까지를 차지한 결과를 보면 2012년 리그 신생팀은 오로 1팀 뿐이었다. 한종진 '감독'의 역할이 컸다고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단체전에선 팀 승리를 위한 기세를 타는 게 중요하다. 앞선 선수가 지면 뒤 선수가 부담을 가지기도 한다. 잘 풀리려면 꼭 3-2로 아슬아슬하게 이긴다. 한 감독은 선수 오더에서 이런 면을 많이 고려했던 것 같다. 기세를 탈 수 있게 배려한 부분이 많다. 선수들의 흑 승률과 백 승률까지 빠꼼히 알고 있고, 그런 순서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충암도장에서 프로를 지망하는 실력파 연구생들과 상담을 하고 단체생활의 호흡을 맞춘 경험도 한종진 감독이 가진 큰 자산이었다.
한종진 감독은 여전히 어려보이고, 가벼워보이고, 덜렁거리는 것 같았지만 다른 팀 감독에 비해 더 많은 자산과 선수관리의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신임감독이지만 선수관리의 경험만큼은 오래된 감독못지 않았고 천천히 자신의 장점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첫 데뷔전(대 양건 감독)'을 졌지만 한종진 감독은 별로 기죽지 않았다. 리그가 모두 끝나고 나니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당시 분위기로 말하자면 오로를 제외한 9개팀이 라운드별 상대를 보면서 "오로같은 팀은 꼭 이겨줘야 하는 상대"로 만만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가령 오로에게 초반 패점을 당한 어느 팀 감독은 사석에서 "멘붕이 왔다"고도 표현했었다.
▲ 스마트오로는 지난 6월 연고지인 강원도(강릉)으로 전지훈련을 갔다 왔다. 오로 락스타리그 선수, 내셔널리그 강원팀, 스마트오로팀 선수, 전지훈련을 준비한 고광록 단장, 팀 관계자들이 모두 함께 했다. 오로팀의 특징중 한가지가 항시 사람으로 북적거리는 것이었다. (PHOTO=박주성 기자)
오로는 초반전부터 각팀에게 패점과 당혹감과 멘붕을 안겨주면서 선두그룹으로 뛰어 올랐다. 근소한 차이지만 오로는 우위에 있었다. 이길 때는 3-2, 질때는 1-4로 지면서 다른 팀과의 차이는 아슬아슬했다.
오로의 아슬아슬한 승리에는 2지명 김승재 선수가 있다. 사실은 한 감독도 김승재가 이렇게 잘 해줄 것은 몰랐다. 물론 잘 해줄 거라 생각하고 2지명으로 뽑았다. 그러나 박정환 만큼의 승률로 한국리그를 누빌 줄은 아무도 몰랐다. 승부는 이렇게 '운'이기도 하다. 굴러들어온 복덩이를 잘 쓰는 것도 감독의 능력이다. 한 감독은 정규시즌 18경기에서 김승재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팀의 승수를 높혔다. 김승재는 의외로 '락스타리거'에 가끔 졌다. 이렇게 진 판을 제외하곤 상대가 주장이건 누구건 모두 이겼고, 14승 4패로 리그 다승왕이 됐다.
주장인 이영구와 3장 홍기표, 4장 안조영은 후반기 들어서 힘을 냈다. 포스트 시즌에 진입하기 위한 1승차이의 살떨리는 스코어 경쟁에서 홍기표, 안조영, 이영구가 힘을 냈다. 바둑황제 조훈현은 2승 4패였지만 팀 승리에 결정적인 1승이었다. 조훈현의 빈자리는 락스타리거 민상연, 일명 슈퍼팬더가 대신했다.
개개인이 이기는 것도 때론 호흡이다. 그리고 감독과 선수의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잇달은 패배에 괴로워하며 감독에게 선수교체를 요구한 선수도 나왔지만 한종진 감독의 지론은 언제나 "너 없는 오로팀은 생각할 수 조차 없다"는 믿음의 용병술 단 한 가지였다.
○● 미운오리의 해피엔딩
오로는 10월 21일 이세돌의 신안천일염에게 준플레이오프에서 패하며 리그 3위를 확정했다. 선수들은 무척 아쉬워했으나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결말이라 할 수 있겠다.
시작은 '코미디' 였으되 끝은 '해피엔딩'이었다. 한국바둑계는 오로팀의 신임감독이자 최연소 감독인 한종진에게서 명장의 조건을 발견했고, 김승재에게서 새로운 강자의 모습을 확인했다. 정규시즌 내내, 플레이오프와 준플레이오프기간내내 오로 응원석은 다른 팀의 프로들과 리그에 속해 있지 않은 프로들과 많은 관계자들로 북적였다. 그들 모두 오로를 편하게 여기고 오로의 선전을 응원했다. 그 하나만으로도 해피엔딩이라 부를 수 있겠다.
오로는 2012년 한국바둑리그를 위해 성공적인 '불쏘시개' 역할을 다했다. 역량을 벗어나는 불쏘시개 역할은 이 한 번으로 족하리라. 코미디가 두 번이면 비극이 되고, 고래 흉내를 내던 '미운오리'는 진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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