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의 ‘4귀생 통어복’ 실리노선에 맞선 최철한의 대응전략은 대마공격. 강력한 파워를 앞세운 공격력에다 한판의 명운을 걸었다.
딱 100수째인 백1의 급습. 독심을 품고서 폐부를 건드리는 일침이다. 국후 최철한은 ‘공격이 제대로 안 먹히면 진다는 심정으로 이 수를 놓았다’고 술회했다.
실전진행1 (사느냐 죽느냐)
흑3까지를 응수시킨 백은 4로 정비. A의 단점을 방비하는 시급한 보강이다.
여기서가 기로. 흑5부터는 집차지의 격차를 한껏 벌려놓는 버팀이다. 바로 전, 안형을 위협해 온 △에 전혀 굴하지 않는 두둑한 뱃심. 백도 필사적으로 칼을 빼들 수밖에 없다. 사느냐 죽느냐….
참고도1 (승산 없는 승부)
흑1로 대마에 가일수하면 평온하다. 그러나 백2로 단속할 경우 좌변일대는 35집을 호령하는 대가(大家).
물론 3의 곳을 차지하면 전체적인 실리는 흑이 뒤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길을 가지 못한 것은 군데군데가 두터운 백의 집이 불어날 곳이 많다는 점. 이 상태로 끝내기 승부를 걸면 흑에게 승산이 희박하다.
실전진행2 (불만스러운 수습)
단곤마는 여간해선 죽지 않는다. 사방에 적군이 진을 치고 있지만 흑대마도 생명력이 끈질기다. 백1은 내친 걸음이나 사정을 아는 최철한은 이 시점에서는 포획이 아니라 이득 추구에 초점을 겨누었다.
이창호의 타개술은 흑1의 치받음부터. 그런데 이 수가 걸음을 잘못 뗐다. 삶을 도모하는 사이 왼쪽 흑일단이 떨어져 나갔고, 백23의 기대기에 중앙대마를 염려한 24, 26은 집으로 실속없는 수들.
참고도2 (직선적인 이득)
실전에서 백은 최상의 전과.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정도로 풍성한 수확을 거두었다.
공격을 중단하고 실리로 전환하기란 마땅치 않다. 직선적으로 1수 들여서 잡는 백1은 가치가 작다. 흑4, 6으로 망가진 손실이 커서 이기기 어렵다. 이에 비하면 실전은 공격 효과로 흑 몇점을 자연스럽게 수중에 넣은 결과.
참고도3 (흑의 수습안)
좌중앙 백진을 허물어서 이제 흑은 살면 이긴다는 분위기가 비등했는데 수습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
이창호는 복기 때 흑1의 마늘모를 맨 먼저 제시했다. 백4의 안형 탈취에는 스스로 약점을 남기는 것 같은 흑5가 의외로 호수. 이에 백6, 8로 화를 내다가는 흑9로 끊겨 대책이 없다. 흑9로는 A에 끼워도 된다.
참고도4 (백의 변화)
그래서 백8로 돌아서면 흑13으로 끼우는 수가 맥. A의 단점을 방비하며, B의 자체안정과 C의 연결을 맞보기로 삼는 수다.
<참고도3>과 더불어 이 그림은 ▲가 아직 잡히지 않았다.
장면2 (단수를 깜박하다)
공격 포인트를 올린 이후 백의 낙승으로 끝날 듯하던 이 바둑은 최철한의 실수로 박빙의 형세로 근접한다. 그리고 바둑사에 길이 남을 만한 해프닝이 출현한다.
반집승부를 운운하며 극미한 추이를 주시하던 검토진. 그러나 백1의 단수에 흑2를 보고서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백가로 따내자 이창호는 당황할 겨를도 없이 패배를 인정했다.
참고도5 (빠뜨린 교환)
천하의 이창호가 18급도 아는 단수를 깜박했다. ‘계가하다가 잊었다’는 게 국후의 변(辯). 올바른 수순은 1～3. 흑1과 백2의 교환을 빼먹은 것이다(이하는 끝내기 예상도. 이창호는 제대로 두었어도 1집반 내지 반집은 졌을 거라고 진단했다).
믿기지 않는 난조다. 올 들어 굵직한 대국에서 쓴맛을 곱씹으며 1승 4패의 초라한 출발. 유래가 없었던 극심한 부진이다. 한편 최철한은 이창호를 상대로 한 타이틀전에서 6연승 고공 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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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익신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