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0일. 국수산맥 3차전 박정환과 판팅위의 대국을 바둑TV 생방송으로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어떻게 저렇게 수읽기가 강할 수 있을까. 완벽한 시나리오대로 짜 맞춘 듯 판팅위는 마치 홀린 사람처럼 상대의 손바닥에서 놀아났다.
바둑부터 먼저 보자. (총보를 보실 분은 글 하단 [관련기보]를 클릭하시면 뜹니다. 다른 뉴스를 보실 때도 이렇게...^^)
▲ <장면1> 백: 박정환 흑: 판팅위
박정환에게 초반 실리에서 밀리면 '죽음'이라는 것을 모든 기사들은 알고 있다. 판팅위의 4귀생.
철전한 실리작전이다. 우리는 이렇게 노골적으로 실리를 취하는 기사들을 '빨대'라고 한다. 쪽쪽 빤다는 뜻이다. 중국어로 빨대를 찾아봤더니 ‘吸管, 흡관, 시꽌’이다. 박정환을 맞은 판팅위는 '范吸管' 판시꽌이 되었다.
▲ <장면2> 박정환이 빈삼각을 둔 까닭.
박정환이 백1로 빈삼각을 두었다. 총보 백90의 수다. 박정환은 모양에 구애받는 바둑을 두는 사람이 아니다. 철저하게 실전적이다. 자, 이때부터가 시작이다. 하변 흑돌을 어떻게 공략하는지 유심히 보시라. 진짜 상대를 KO시킨 것은 40수가 훨씬 지나서이다.
▲ <장면3> 박정환만 놀라지 않았다.
박정환은 백1의 끝내기를 두었다(백132수). 정말 끝내기인 줄 알았다. 흑2는 당연한 수. 백3을 둘 때도 끝내기인 줄 알았다. 여기까지는 프로라면 다 족보에 있는 수들이라 안다.
백5는 선수를 잡기 위한 수로 보였다. 그래 선수가 중요하니까. 그런데 웬걸. 백7이 놓였다. 판팅위도 놀라고 나도 놀라고 이 바둑을 본 프로들은 모두 놀랐을 것이다. 박정환의 진가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 <장면4> 이미 여기까지 수를 읽고 있었다니....무서운...
프로들은 다음 수순을 보지 않아도 직감한다. 판팅위도 분명 이때 직감했을 것이다. '졌구나…' 수읽기를 제대로 안 한 것이다. 백2가 결정타다. 이미 흑1을 판팅위가 둘 때 백2를 봤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훨씬 전부터 이 수를 알고 있어야 방비가 된다. 백10까지 참 알차게 살았다. 승부 끝이나 다름없다.
▲ <장면5> 백2가 결정타인 이유.
백2가 결정타인 이유는 흑이 3으로 둘 수 없기 때문이다. 백은 4로 넘는 것이(이렇게 선수로 넘어가는 수가) 대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보시라. 백6,8로 흑을 차단할 때 흑의 다음 수는 A로 두어 B와 C를 맞보기로 해야 한다. 그런데 백4가 선수가 되면 어떤 상황이 되나. C로 넘는 수가 차단된 것이다. 흑 전멸이다.
한국은 1차전과 2차전에서 1:2로 두 번 졌지만 개인승수로 우승을 정하는 룰 덕분에 우승할 수 있었다. 단연 박정환의 3승이 MVP다.
▲ '2015 국수산맥 한중단체바둑대항전'에서 한국은 주장 박정환(오른쪽)의 전승 활약으로 중국을 누르고 우승했다. 우승을 결정한 3차전 판팅위와의 대국. 그 누구도 아닌 판팅위다. 박정환은 2년 전 응씨배에서 판팅위에게 당한 아픔이 있다.
2013년 3월6일. 아마 박정환은 이 날을 꼭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바로 제7회 응씨배에서 판팅위에게 결승4국에서 진 날이다. 지금과 그 때를 비교하면 박정환은 무엇이 바뀌었고 중국의 10대세계 타이틀 홀더들은 어떤가.
우선 내가 생각하는 박정환은 확실히 두 가지가 좋아졌다.
(1) 선배에게 진 것과 달리 후배에게 지면 충격이 훨씬 크다. 계속해서 세계대회에서 이러한 부담탓에 지고 또 졌다. 중요한 점은 그럴수록 자신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채찍질하며 좌절하지 않고 더 독해졌다는 것. 한번 지면(질 수도 있다) 두 배는 더 지독하게 노력을 한 것이다.
반면 중국의 10대 타이틀 홀더들은 너무 쉽게 세계무대에서 성공하면서 목표를 상실했다. 박정환은 2012년 후지쯔배 우승 이후 좌절을 더 많이 경험했다. 오히려 거품을 빼고 다시 도약할 수 있는 기회였던 셈이다. 박정환이 그랬던 것처럼 중국의 10대들이 더 독해지지 않는 한 난 그들이 박정환을 이기지 못할 거라 확신한다.
(2) 수읽기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응씨배에서 다 이겼다고 생각한 바둑을 역전패 당해서인지 감각에 의존해 두는 수는 보이지 않는다. 혹시 모를 상대의 좋은 수까지 온갖 수읽기를 다하는 것이 보인다.
예전엔 사활책만 들고 다니며 연구해 뭔가 아쉬운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큰 오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현대바둑은 초반 중반이 중요한 시대가 아니다. 정석, 초반, 중반이 무시되기 일쑤다. 덤이 많아지게 되면 자연 돌이 부딪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현재의 프로들은 무엇을 가장 중요시 해야 하나? 대답은 나와 있다. 빠른 시간 안에 여러 수를 생각해 낼 수 있는 수읽기 능력 향상. 그것을 가장 키워주는 공부 방법은? 바로 사활이다.
혹자는 그간 박정환이 세계대회 문턱에서 번번이 좌초한 경력을 들어 ‘2%’가 부족하다며 여전히 의구심을 품을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이창호-이세돌이 독주하던 시대보다 지금은 나이어린 천재기사가 훨씬 많이 등장했으며 자연 더 가혹한 무한경쟁시대에 돌입했다. 따라서 한두 판 불의의 일격을 맞을 여지가 늘 있다. 100% 항시 완벽할 순 없는 게 승부세계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엔, 이제 왔다! 앞으로 박정환은 우승 퍼레이드를 벌일 일만 남았다.
▲ 이제는 한국이 가장 '믿는 도끼' 주장 박정환. 국수산맥배 폐막식을 마치고 나오는 모습. 한국랭킹 1위로서 이번 국수산맥배에서 그 어느때보다 한국팀 주장 역할을 완벽히 했냈다.
'신의 경지!' 바둑에서는 이것을 뜻하는 말로 '입신(入神)'이 있지만 세상이 변해 이미 우리나라만해도 68명이나 되는 입신(9단)이 있다. 그것을 박정환에게 붙이기엔 뭔가 부족하다. 조훈현은 '전신' 이창호는 '신산' 그렇다면 수읽기가 최고인 박정환은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하나? 필자가 보기에 적어도 수읽기에 관한 한 신들이 노니는 세계에 다다랐다. 지금 박정환은 바둑계에서 이창호에게 ‘신산’이라는 호칭을 붙여주었던 나이와 같다. 이창호는 신(神)이란 수식어를 붙여도 되고 박정환은 안 될 이유가 없다. 이참에 팬들께서 멋진 별칭 하나 붙여주시길. 댓글 공모 한번 해볼까. ^^
이 상황에서 수많은 천재들이 박정환 한 명을 이기지 못하는 것에 대해 중국 바둑팬들은 선뜻 이해가 안 갈지도 모른다. 조훈현-이창호-이세돌의 20년을 거쳐 드디어 중국의 오성홍기가 세상에 펄럭일 줄 알았더니 아직도 태극기가 휘날리는 것에 대해. 그들이 보기엔 손바닥만한 한국에서 바둑사에 길이 남을 영웅들이 계속 등장하는 것에 대해 억울할지 모른다.
동내 구멍가게앞 평상에서 두는모습을 하고
테레비로 전국민에게 중계방송을하니 쪼메 챙피합니다
최고의수를 찿아 고뇌하는 그들에게 의상에 신경을쓰게
한국기원차원에서 신경을 써주세요
가끔 일본기객들의 타이틀메치를 보면 정장을하고 머리를
쥐어짜는 모습에서 바둑을 대하는 그들에게 서 뭔가 신비함을
느낍니다
전경
｜ 2015-08-12 오후 12:37:00 [동감0]
최종병기 박정환
레지오마레
｜ 2015-08-12 오후 1:40:00 [동감0]
선재동자님 의견에 한표 행사
자벨린
｜ 2015-08-12 오후 6:13:00 [동감0]
바둑왕 화니
중원을향해
｜ 2015-08-12 오후 8:25:00 [동감0]
神手 박정환으로 합시다. 이유는 신수가 훤하기 때문입니다.
高句麗
｜ 2015-08-12 오후 10:20:00 [동감0]
박정환은 뚜렷한 특기가 없어서 뭐로 별명 지으기 뭐하고 다재다능이 특징이 아닌가 합니다
해서 다재다능이 좋다고 봅니다
youngpan
｜ 2015-08-13 오전 12:51:00 [동감0]
뜨겁군요! 다능전사는 어떨까요?
모 진정한 입신은 적어도 프로를 두세점 접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판팅위 같은 사람을..ㅎ 지나친 비약일까요?
cosmosro
｜ 2015-08-13 오전 1:02:00 [동감0]
멋져부러 정환!
cosmosro
｜ 2015-08-13 오전 1:02:00 [동감0]
달려라 진서!
요씨
｜ 2015-08-13 오후 12:35:00 [동감0]
뭔 신은신? 동네서만 잘 하드만
중바우
｜ 2015-08-15 오후 9:24:00 [동감0]
중국전설에 나오는 눈이 이마에 하나 더 달링 [이랑신]이 적합한 줄 아뢰오!
입영전야愛
｜ 2015-08-17 오전 10:38:00 [동감0]
김성룡프로님 좋은 기사 잘 보았습니다 앞으로도 재미 있는 좋은 글 기대 하겠습니다 후반기 감독으로서도 바둑리그에서 좋은 성적 올리 시기를....
대국중무심
｜ 2015-08-27 오후 1:15:00 [동감0]
분명히 전성기는 맞는데 세계대회 우승이 부족하므로 와룡선생이 어떠할지. 군대 개념으로 별명을 지으면 바둑사관학교 생도 출신으로 세계랭킹1위에 올랐으니 작전사령관이 어떠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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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솔핫워러
레지오마레
자벨린
중원을향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