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성강이 사랑과 이별의 플랫폼으로 기능하던 때는 삼국시대부터인 모양이다. 송도로 들어오던 중국 일본의 상인들의 무상출입은 인간의 생도지망사를 쓰면서 만남과 이별이라는 수많은 사야지곡(史野之曲)을 만들던 시대에 내기바둑에 빠져 아내를 빼앗긴 못난 고려의 사내가 있었다.

고려사 악지는 송나라 상인 하두강(賀頭綱)과 예성강가에 살던 고려 사내의 에피소드를 전한다. 영악한 상인 하두강은 고려 사내의 아내가 미모임을 알고 그 여자를 빼앗으려 음모를 꾸민다. 바둑을 잘 두는 고려 사내를 바둑으로 꼬드겨 초절정의 고수를 내세워서 내기바둑으로 여자를 빼앗아버린 것이다. 여자는 예성강을 통해 끌려갔던 모양이다.

고려사는 이 에피소드를 기록하며 두 수의 노래가 전한다고 했다. 여자와 사내가 각기 지은 노래란 것이다. 자못 애닯고 비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역사는 온전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지 않다. 송나라 상인과 고려 사내의 에피소드를 기록하며 정작 노래의 가사를 전해주지 않고 있어 아쉽다. 그러나 오백년동안 예성강 엘레지는 세인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못난 사내를 만난 고려 연인의 수난사(?)가 슬펐던 것이다. 과연 이 노래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조선사람 유몽인(1559-1623)은 이 내용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유몽인은 어유야담(於于野談)의 저자로 유명하지만 육조의 판서를 두루 거친 행정가이자 정쟁으로 비운을 맞은 정치가다. 그는 수많은 기인기사(奇人奇事)를 한 권의 책으로 묶으며 예성강 엘레지를 살짝 비틀어 오늘에 전해준다.

(바둑은 작은 재주지만 잘 두는 사람은 하루에도 천금을 번다. 전주사람 김철손(金哲孫)이 있는데 바둑으로 최고였다. 그에게 아름다운 첩이 있는데 일본의 상인이 흑심을 품고 김철손에게 접근을 했다. 일본의 상인 또한 바둑의 고수였다.

그들은 바둑으로 금방 친해져 서슴없이 내기바둑을 두었는데 처음에는 해와 달이 그려진 고급 말안장을 따며 기세를 올리던 김철손이 끝내는 패해 첩을 빼앗기는 지경에 이른다. 일본상인을 따라 일본으로 끌려간 첩은 김철손에게 원망의 노래를 지어 편지로 보냈는데 내용은 이렇다.

전주사는 김철손

바둑으로 당할자 없더니

천금의 여자를 왜놈의 배에 태웠다네

해와 별 그려진 말안장 바라보며

첩의 얼굴 떠올리고 있겠구나.

(全主地金哲孫/與人奕睹莫爲先/天金美姬載倭船/畵日畵星一鎧鞍/須替妾顔看)

유몽인은 서천령, 신구지, 안경무 등 바둑의 고수들을 기록하여 바둑사에 도움을 주기도 한 사람이지만 필자는 내용 중에 김철손이  반갑다. 바둑이 도박으로 치달으며 유행하던 명나라시대, 조선 또한 바둑과 도박이 어우러져 발전하고 있음을 유몽인이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둑으로 하룻밤에 천금을 잃고 따던 시대, 김철손은 내기바둑에 사랑하는 여인을 거는 무모함을 보여준다.

도박 앞에 사랑도 버리는 무지막지한 사내를 향해 여인은 바다 건너 일본에서 원망과 한탄의 노래를 지어 부른다. 어쩌면 하두강에게 끌려간 예성강가의 고려여인의 심정도 이와 같았을 것이다. 유몽인도 가사가 전하지 않는 고려사를 생각하며 이 노래를 창작했을지도 모른다. 사랑과 이별은 고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반복된다. 만나고 사랑하고 이별하는  예성가의 엘레지는 계속되고 있다. 부산항에서는 목놓아 돌아오기를 노래하고,  목포항에서는 눈물로 이별을 아파한다. 0시50분 대전발 열차의 차창을 마주보고 헤어지는 연인의 사랑은 반복된다.

바둑이 도박과 연결되어 남녀간의 이별의 엘레지를 만드는 장면이 흥미롭다. 조선과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아내를 도박물로 걸고 한판의 바둑을 두는 모습이 심상치 않다. 오백년의 조선 그리고 오백년의 고려라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 속에서 벌어지는 이 희극적 모습이 '삼국사기' 초기 기록에도 있다. 이것은 진정 놀라운 일이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