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이한 치료법

'오죽헌(烏竹軒)'은 몸채에서 30여 미터 떨어진 동북 방향에 위치했다. 선로 위의 기차처럼 칸칸을 친 방들은 한결같이 대나무와 박달나무 · 오동나무 구조를 이루어 고풍스런 방안으로 바람이 찾아들 때면 향나무 정원에서 날아든 훈향이 감미로웠다.

“이곳엔 열두 개의 방이 있답니다. 손님이 오시면 언제나 안쪽 방을 내드렸어요. 아버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이 방을 쓰십시오.”

이틀 만에 환자의 상태가 호전돼 이곳으로 옮겨오자 탁원제의 소식부터 궁금해 했다.

“사무실로 돌아갔습니다. 박선생님 처지가 이렇다보니 당분간 이곳 출입을 삼가는 게 좋을 것이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별말씀요. 이곳 오죽헌은 지방에서 오신 아버님 손님들이 쉬어가던 곳입니다. 요 몇핸 손님을 받지 않고 아버님만  이 방에서 쉬셨지요. 방 뒤쪽으로 오죽(烏竹)이 들어찬 검은 대나무 숲이니 혹여 들짐승 출입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 예에.”

일우의 겸연쩍은 대답에,

“바람 끝이 매섭습니다. 한기가 박선생님 몸에 해롭다는 걸 잊지 마세요.”

초하가 가볍게 고갤 숙이고 물러나자, 일우는 창밖 풍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과연 방 뒤엔 오죽이 무성했다.

일반 대나무와는 달리 오죽은 검은 빛을 띤 채 가늘고 키가 작았다. 바람이 숲을 흔들릴 땐 저희끼리 몸을 비비며 수런거리는 소리가, 다정한 이들이 은밀한 얘길 나누는 듯한 애틋함이 느껴졌다.

창문을 닫고 방안을 둘러보았다. 오동나무로 짠 듯싶은 책장엔 여러 권의 책이 꽂혀 있었다. 1978년대를 대표하는 문순태의 <징소리>와 김성동의 <만다라>가 있고, 두툼한 기름종이로 표지를 싼 송기숙의 <암태도>가 자리를 지켰다. 그런가하면 천승세의 <황구의 비명>은 표지가 반쯤 뜯긴 채 꽂혀 있었는데 대부분 칠십 년대를 대표하는 소설들이었다.

가장 윗칸에는 <가문으로 본 풍수>와 <터잡기>기 꽂혀 있고 그 옆으로 위(魏)나라 한단순(邯鄲淳)의 <예교(藝敎)>, 오(吳)나라 위소(韋昭)의 <박혁론(博奕論)>, 송(宋)나라의 <오잡조(五雜俎)> 등이 자리를 차지했다.

옆에 세워진 스크랩북에 끼워진 것은 바둑에 관한 해묵은 기사였다. 관철동에 자리한 한국기원의 정경과 그 아래 짤막한 해석을 덧붙여 놓았다.

1955년 사단법인 한국기원이 발족하면서 한국 바둑계가 체계를 확립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 큼지막이 눈에 들어왔다. 매년 네 차례의 전문기사 입단대회를 개최한다는 내용과 일본이 올해(1979) ‘세계아마추어바둑선수권대회'를 개최할 것이라는 기사가 스크랩 되어 끼어 있었다.

책장 옆엔 흑백 티브이 수상기가 놓여있고 덧칠이 벗겨진 승압 트랜스가 얌전히 앉아 있었다. 화문석 깔린 방바닥엔 두툼한 보료가 벽을 의지한 채 깔리고, 그 위에 놓인 앙고라 이불은 네 겹으로 접힌 채였다. 태극으로 수를 놓아 예쁘게 덧싼 목침이 그 아래쪽에 산뜻한 아름다움으로 놓여 있었다.

하나 둘 궁금증이 살아 돋았다. 파라다이스 모텔 505호에서 일어났던 소름끼치는 일들이 머릿골을 쭈뼛하게 흔들었다. 그러고 보니 함께 홍역을 치룬 게이꼬(淸水京子) 양이 어찌 됐는지 궁금했다.

혼란스러웠다. 편두통이 일어나고 바늘 끝으로 찌르는 진통이 밀려왔다. 벌레가 기어가듯 스멀대는 느낌이 발끝에서 줄기를 만들며 올라오더니 찌르르 몸을 진동시키며 열기를 피어 올렸다. 환청이 일고 벌떼가 나는 듯 웅웅웅 귀가 울었다.
현란한 불빛이 시야를 어지럽히더니 거친 금속성의 파열음 속에 대형 유리창이 깨지는 듯한 굉음이 자신의 내부에서 들려왔다. 종류를 알 수 없는 연체동물 하나가 흐물흐물 가슴 속을 유영하더니, 일순간 복부를 뚫고 솟구쳤다. 왈칵 피가 뿌려지는 환영(幻影)에 질겁하며 비명을 지르며 혼절해 버렸다.


아무래도 안심이 안 돼 오죽헌에 들렀던 초하와 우암은 소스라치게 놀라 뛰어들었다. 급히 보료 위에 눕히고 맥을 짚으며 고개를 외로 틀었다.

“사증(死症)이야!”

우암은 반 무릎 남짓 물러앉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의 맥은 한번 숨을 들이마실 때 두 번 뛴다. 그리고 다시 내쉴 때 두 번 뛴다. 이것이 일호일흡(一呼一吸)이다.

한 번의 일호일흡은 일식(一息)으로 나타내 맥박 수는 네 번이다. 그러나 한숨을 내쉴 때면 맥박 수는 다섯이다. 지금 환자는 맥박의 박동(搏動)이 일정치 않고 느려지고 빨라졌다. 회복을 장담할 수 없는 사증(死症)이니 우암의 근심은 그것이었다.

“이 사람의 안면에 나타난 그림자는 평온한 꿈길이 아니네. 거칠게 타오르는 불바다를 걷고 있는 게 분명해. 맥상(脈狀)이 사증이니 서둘러야겠네!”

우암의 말대로 꿈길에서 불바다를 걷고 있다면 양기(陽氣)의 흐름이 지나친 것을 가리킨다. 그 이유를 종류를 알 수 없는 독극물에서 찾았다.

“이 사람 몸에 쌓인 독물은 청산가리가 아닌 모양이야. 열성이 지나치게 강한 건 그렇다 치고 저렇듯 환청 현상이 일어난 것으로 보아 열대 지방에서 구해온 게 아닌가 싶네. 자네가 아니면 치료할 수 없으니 서둘러 결심 하게. 치료가 늦으면 만사가 휴의로세. 자네 부친이 남긴 약재 서랍에 이런 게 들어 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