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마침 중국에서 벌어진 LG배와 겹쳐 관심이 덜했는지 모르나 제주시에서 4개국 신예들이 펼치고 있는 2011 KCTV배 국제신예대항전에는 눈에 띄는 스타와 새내기들이 꽤 있다. 대회 타이틀이야 ‘신예대항전’이지만 실은 한국 중국 일본 대만 젊은 기사들의 잔치마당이다. 한국주장 박정환 9단이나 중국주장 리저 6단, 일본 여자기전 3대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씨에이민 5단, 역시 중국의 여자간판 탕이 2단 같은 이는 신예대결에 참가하기엔 조금은 멋쩍은 월드스타급이다. 강유택 4단이나 세계대회 4강에 든 나현 初단, 중국의 스위에 5단이나 일본의 신인왕 무라카와 다이스케 7단 또한 실력적인 면으로 레벨을 매기자면 이미 새내기 범주를 넘어선 이들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신나는 마음으로 모였다. 상금이라야 달랑 우승국 한팀에 1천만원을 줄 뿐인 비공식대회인데도 말이다. 결코 폼나는 대회가 아님에도 기껍게 참가하는 건, 그 이면에 ‘타는 목마름’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대회가 연이어 열리는 바둑계는 외관상 화려해 보인다. 억대의 우승상금을 다투는 정상급 기사들에겐 그럴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눈높이를 낮추면 대국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아 애태우는 신예들이 즐비하다. 입단하고 바로 뜨지 못하면 일년에 스무 판을 넘기지 못하는 저단기사가 상당수다. 예전에 비해 공식 신예기전이 거의 사라진 여파다. 애벌레 시절을 거치지 않고 나비가 된 스타는 없다. 신예들이 뛸 수 있는 무대가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우리가 환호할 스타 또한 적어진다. 기전이 점차 홍보효과에 치중하여 우승상금을 키우고 관심을 끄는 세계대회로만 몰리는 사이 기초체력을 다지는 바둑계의 시스템은 시나브로 침식되고 있다.
이러한 때 국제신예대항전은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다. 세계대회에 견주어 반절의 관심조차 끌지 못했어도 15년을 한결같이 지속하고 있으니 그 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나마 국가간 신예기전으로는 유일한 대회다. 공식대회로 요란을 떨며 태어난 숱한 기전들이 다 사라진 판국에 비공식대회로 묵묵히 기여하고 있는 이 신예교류전을 떠받쳐온 이 누구일까? 그 주역 두 사람과 대회를 만든 내막과 이끌어온 과정에 대해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아다시피 허장회 9단은 대회의 산파이자 이끌고 있는 기둥이고 김일한 사장은 앞장서는 후원자다. ‘앞장선다’고 표현한 까닭은 그가 돈만 대는 스폰서와는 확연히 다른 후원자이기 때문이다.
백아와 종자기 같은 마음으로 이끌어온 대회
- 먼저 이 대회가 만들어진 이야기부터 해주시죠?
(허장회 9단) “92년에 중국 영파에서 응창기바둑기금회가 주최하는 세계청소년바둑대회가 열렸는데 제가 감독으로 애들을 인솔하고 갔다가 중국감독인 오우린(吳玉林) 사범을 만났습니다. 그때 둘이 양국 신예기사이 우정을 나누고 실력을 연마할 수 있는 교류전을 만들자고 약속했죠. 오우린 사범은 당시부터 재작년까지 중국기원 국가대표팀 감독을 지낸 분입니다(이번에도 변함없이 중국팀 감독으로 왔다). 그러고 5년 뒤 97년 중국 항주에서 첫 대회를 열게 되었지요.
지금도 생생하네요. 첫 대회에는 충암연구회의 멤버들로 주축을 이뤄 치렀는데 김영삼, 김승준이 주전이었고 조한승, 이희성은 동생뻘 선수로 출전했죠. 이들 또래로는 중국의 콩지에나 후야오위, 치우쥔이 나왔지요. 콩지에의 나이 15세였는데 그때부터 바둑을 잘 두었습니다. 젊은 기사들이 함께 식사하고 한 방에서 뒹굴며 우의를 다지던 모습이 선합니다.“
- 2회 대회는 강릉에서 했죠? 그때 저도 취재한 기억이 납니다만...
(허장회 9단) “강릉의 고광록 변호사(강원도바둑협회장)께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기에 가능했지요(인터뷰를 하던 대회 둘쨋날 고변호사는 춘천에서 재판을 마치자마자 곧장 서울을 거쳐 제주로 날아왔다. 여전히 그는 든든한 후원자이자 친구다). 2회 때부터는 양국의 정예멤버들이 출전했습니다. 양국의 잘 둔다 하는 신예 중 이세돌 9단만 빼고는 이 대회를 거치지 않고 정상급으로 발돋움한 기사는 없습니다. 특히 중국은 다...”
▲2003년 중국에서 벌어진 한중일 신예대항전에서 한국과 중국의 2장으로 출전한 82년생 동갑내기 조한승과 콩지에의 대국. 이 대회에서 조한승 7단(당시)은 3연승을 올리며 한국 우승을 이끌었다.
- 애초 한중 두 나라로 시작한 대회가 지금은 4개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허장회 9단) “이 대회와는 별도로 허장회도장(현 충암도장)과 일본의 기쿠치도장의 프로들끼리 매년 교류전을 하고 있었는데 자연스레 가세하게 된 것이지요. 일본은 2000년부터, 대만은 2004년 8회 대회 때부터 합류하였습니다.
큰 상금이 걸린 것도 아니고 대국료가 지급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우열을 가리는 대국만 달랑 하고 마치기 일쑤인 삭막한 세계대회보다는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우의를 다지는 이런 대회 하나쯤은 존속되어야겠지요. 이 대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치 중 하나라고 봅니다.”
- 이번에 보니까 공식 선수단만 50여 명에 통역, 취재, 스탭 등을 더하면 80여 명에 이르는 대규모 인원입니다. 외국 선수단 비행기 삯만 제외하고 나머지 체류비 일체를 주최국이 부담하는 걸로 아는데 제가 얼추 짐작해 봐도 1억으로는 어림도 없겠던데요? 6년째 단장을 맡고 계신 김일한 사장님의 애환이 컸을 텐데요. (웃음) (김일한 사장) “제가 이 대회에 작으나마 힘을 보태기 시작한 건 6년 전부터였는데 저뿐 아니라 여러 분들께서 기꺼이 도와주시기에 가능합니다. 일일이 다 열거하진 못하지만 이 자리를 빌어 거듭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김일한 사장은 국내외에서 여러 가지 사업을 펼치고 있는 사업가지만 바둑계에선 골수 바둑인으로 여긴다. 그만큼 바둑계 발전을 위해 애쓴다는 얘기인데 실제 본인도 사업가라기보다 바둑인이라 말하길 좋아한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에 이미 1급 수준이어서 한때 프로를 지망하기도 했지만 “재주가 없더라”며 “바둑계 주변인으로 남아있기로 했다”면서 껄껄 웃었다. 바둑 주간지를 창간하기도 했고 [바둑과 문화]라는 무크지를 3집째 내며 바둑문화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 2개국도 아니고 4개국이 참가하는 대회입니다. 그것도 단체전이죠. 특히 이번 제주대회는 유명한 김창완밴드가 개막식 공연에 나서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더군요. 듣자하니 대회 준비과정에서 허장회 9단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는데...
"하하. 하면 된다! 과정이 얼마나 수월하느냐 않느냐의 문제일 뿐이지 세상에 안되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면 됩니다! 요즘은 다들 세계대회를 중요시하니까 협찬을 받아내는 데 힘이 더 드는 건 사실입니다. 비공식 대회로서 어려운 부분도 있고요. 현행 대회방식에 대해 한번쯤은 정립할 시점이기도 합니다. 4년마다 돌아가면서 한번씩 개최를 하니까 다음 대회 때 도움을 주실 분이 더 많았으면 합니다.”
- 단장으로서 이 대회에 바라는 게 있으시다면?
"늘 중국이나 한국 두 나라만이 우승을 다투는데 꼭 일본이나 대만이 우승했으면 합니다. 네 나라가 고루 힘의 균형을 이뤄 경쟁해야 발전이 빠릅니다. 이 점이 가장 안타까우면서도 제 바람이기도 합니다.”
한 사람은 대회를 만들었고 한 사람은 이끌어간다. 후학들을 위해 두 사람 다 무대 뒤에서 갖은 애를 쓰지만 뜻하는 바 두 마음이 아니기에 두 사람을 보면서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던 백아와 종자기, 관중과 포숙이 절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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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이 대회가 만들어진 이야기부터 해주시죠?
▲2003년 중국에서 벌어진 한중일 신예대항전에서 한국과 중국의 2장으로 출전한 82년생 동갑내기 조한승과 콩지에의 대국. 이 대회에서 조한승 7단(당시)은 3연승을 올리며 한국 우승을 이끌었다.
(김일한 사장) “제가 이 대회에 작으나마 힘을 보태기 시작한 건 6년 전부터였는데 저뿐 아니라 여러 분들께서 기꺼이 도와주시기에 가능합니다. 일일이 다 열거하진 못하지만 이 자리를 빌어 거듭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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