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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케이 신문 보도를 접한 이슬아는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당시 자신은 비매너적이고 악의적인 시간 공격을 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
산케이 신문은 최근 ‘바둑에서도 일본을 압도…한중기사(棋士), 공포의 스파르타 교육, 머리에 침 꽂은 채 대국도!?’라는 장문의 기사를 내보냈다.
제목에서 엿보이듯이 한국과 중국 기사들이 가진 승부의 집념과 바둑교육의 경향을 다루고 있다. 한국과 중국이 바둑 강국으로서 실력에서 일본보다 앞섰지만 지나치게 승부지상주의에 치우쳐 있지 않느냐는 것이 기사의 골자다.
기사는 표현을 절제하면서도 간간이 일본 프로기사들의 말 속에 격앙된 어조를 살려 인용했는데 그 내용 중에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었다. 지난 아시안게임 때 벌어진 이른 바‘시간 공격과 심판 개입’ 해프닝에 대한 언급이다.
박정환-이슬아 조가 중국 류싱-탕이와 벌인 아시안게임 페어 경기에서 발생한 해프닝인데 이 기사에서 한 일본 기사는 '한국 선수들이 의미 없는 수순들로 시간 끌기 공격을 한 것은 비매너'라고 지적한다.
예컨데 초읽기가 없는 특별한 룰이라고 해서 종반에 시간승을 노리고 의미 없는 수순을 반복하는 한국기사. 결국, 그 기사는 반칙패 했지만 "이길 수만 있다면 뭐라도 할 수 있는가"라며 기가 차다고 표현했다(밑줄 친 부분).
기자는 2년이나 지난 이 대국을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는 데 놀랐다. 당시의 대국 당사자인 박정환 9단과 이슬아 3단이 매너 없는 기사들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시간공격과 심판위원장 판정의 정황은 이랬다.
2010 아시안게임 바둑종목 혼성페어 예선전은 흔히 보는 초읽기 방식 대신 타임아웃제를 택했다. 한국기사들에게는 낯선 룰이다. 시간을 초과하면 그때까지 아무리 좋은 내용을 이끌었어도 진다. 시간 안배가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시간에 쫓기는 것이 두렵다면 초반에 시간을 아껴 써야 한다. 타임아웃방식 자체가 시간을 가장 중시하므로 시간 안배 능력도 경기의 한 요소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제한시간과 초읽기가 병행되는 대국에도 비슷한 개념이 존재하지만 이때는 초읽기 상황으로 들어가도 정해진 횟수만 넘기지 않으면 대국을 이어갈 수 있으므로 타임아웃제와 차이가 크다.
한국의 박정환-이슬아 조는 중국의 류싱-탕이 조를 만났고 중반이 끝나가는 시기에 패색이 짙어졌다. 류싱-탕이 조는 중반에 시간을 많이 사용해 1분만을 남겨 놓고 있었는데 이때 박-이 조의 시간공격이 시작됐다.
그러자 중국인 우위린 심판위원장이 들어와 경기를 중지시키고 대국자들에게 대국을 지속할 것인지를 물었다. 심판위원장은 박-이조의 시간공격을 '악의적인' 것으로 판정했고 박-이조는 불계패를 인정했다.
한국선수단의 코칭스태프는 즉각 항의했고 주최측(중국)은 규정에 따른 방침이었을 뿐이라고 맞섰다. 파장이 작지 않았던 이 해프닝은 ‘의사소통 과정에서 불거진 오해’로 압축되면서 한국선수단과 주최측의 빠른 합의로 마무리됐다.
기보는 공개되지 않았다. 심판위원장은 “시간공격이 벌어지던 30수 가량을 공개해 정상적인 끝내기였는지 악의적인 훼방이었는지 밝히자”고 했고 한국 역시 “우리도 ‘고의적인’ 시간 공격은 반대한다”고 밝혔다.
중국 체단주보의 씨에루이 기자는 자신의 컬럼에 ‘양측이 문제를 잘 합의하였으므로 주최측은 기보를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기보를 공개하면 박정환-이슬아 조에게 불리할 것’이라고 썼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악의적인 시간 공격에 대해선 매너상 옳지 못하다고 동의한다. 또 일본도 이를 근거로 산케이 보도에서 ‘매너의 문제’를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바둑계와 중국 바둑계는 빠르게 화해함으로써 민감한 시점에서 사이가 크게 틀어질 뻔하던 위기를 슬기롭게 넘긴 듯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전체적으로 많은 의문점을 남긴 채 봉합됐고‘박정환 선수와 이슬아 선수는 ‘악의적인 시간 끌기’를 한 비매너의 기사들’로 기억되는 결과를 남겼다.
정말 박정환-이슬아 조는 비매너를 저질렀나?
기자는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당사자에게 물었다. 솔직한 심정을 듣고 싶어서다. 이슬아 3단은 “당시 시간 공격을 먼저 시도한 것은 나였다”며 당시 상황과 견해를 들려줬다.
▲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바둑종목 혼성페어 부문에서 금메달을 따낸 후 기뻐하는 이슬아(왼쪽)와 박정환.
“산케이 신문의 보도를 접하고 난처했다. 당시 바둑은 중반을 지나 후반으로 향하고 있었지만 아직 결정되지 않은 곳이 많았다. 만약 바둑이 거의 형태가 결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의미 없는 수순들로 시간 끌기를 하는 거였다면 나 역시 규정을 떠나 매너가 없는 행동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응수타진 혹은 승부수의 의미가 있는 수순의 시간공격을 했지 ‘악의적인 시간공격’은 한 적이 없다. 그전까지 타임아웃제로 공식대국을 경험해 본 적조차 없는 내가 규정을 어떻게 악용하겠나.
어떤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승리하기 위해 시간 공격을 훈련시켰다는 것도 중국의 오해다. 오히려 양재호 감독님(당시)은 우리 선수들이 타임아웃제에 익숙하지 않은 것을 염려해 상대의 시간공격에 철저히 대비할 것을 주문하셨다.
흔히 우리는 프로기사의 대국을 관전하면서 승부수를 많이 접하며, 정상급 기사가 두었음에도 성립하지 않을 것 같고 마치 억지스러워 보이는 수를 숱하게 본다. 이것은 승부수이며 저것은 억지수라고, 이것은 응수타진이며 저것은 시간 끌기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심판위원장이 경기를 중지시켜서 불계패를 선언한 것처럼 보인 것도 실은 다르다. 심판이 오지 않았어도 시간공격을 더 해보다가 돌을 거두려고 했다. 참고로, 중국 선수들은 시간공격에 대한 대비가 거의 완벽히 되어 있었다.
일본의 보도가 이해가 되기는 한다. 일본은 예의를 중시하는 나라다. 대국 중 화장실에 갈 때도 목례를 하는 걸 자주 본다. 일본 기사들은 대국 중 상대가 신경 쓰이지 않게 배려하는 것을 중시한다. 중국기사들이 대국 도중 자리를 떠서 다른 대국을 보는 모습에 놀라는 것도 당연할 일일 것이다.
비슷한 일을 우리도 겪는다. 일례로 지난번 중국기사가 사석을 우리 기사의 돌 통에 넣은 사건을 우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일각에서 분통을 터뜨리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룰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중국바둑은 우리와 룰이 다르다. 또 우리 기사들의 행동은 일본 기사들에게 비매너로 비칠 수 있고 반대로 일본 기사들의 행동이 우리에게 예의 없이 보일 경우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세계 정상을 다투는 한국, 중국, 일본의 바둑계가 서로 간의 문화, 규정, 시각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함께 나아갔으면 좋겠다. 사실 언론이 이런 일들을 다뤄주는 것은 기회다. 이렇게 한바탕 홍역을 치름으로써 한국과 중국 일본이 서로를 잘 알게 되고 더 배려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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