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이 나던 날, 그러니까 아끼꼬가 죽던 어제 새벽에 시경 상황실로 전화가 왔다는 거야. 파라다이스 모텔 307에 있는 처녀가 죽어가고 있으니 빨리 가보라고 말이야. 첨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겠지.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으니까. 왜 그런 거 있잖아. 정신 빠진 놈들이 전화장난 하는 거. 상황실에선 그런 거로만 알았는데 5분쯤 지나 다시 온 거야. 전화를 건 사람은 파라다이스 모텔 307호실의 비상전화까지 가르쳐 줬다는 거야.”

“전화 건 사람은 누군데요?”

“거야 모르지. 서른 가까운 사내 목소리라는데···. 경찰에서 찾는 모양인데 소득이 없는 모양이야.”

“그러니까···, 누군가 아끼꼬가 죽어가는 걸 지켜보았다?”

“글쎄···. 지켜보았다는 건 무리가 아닐까. 그랬으면 자신이 살렸겠지.”

수화기 저쪽에서 삐삐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통화를 끊기 전 빠르게 속삭였다.

“지금 사무실에 나가봐야 해. 저기 말이야, 우리 사무실에서 아끼꼬 사건 녹화 뜬 모양이야. 그거 자네 사무실로 보냈으니 나가면 틀어봐. 그 처녀가 쓰러진 카펫 근처에 종류를 알 수 없는 단추같은 게 있다니까 알아보고.”

사무실에 나가보니 이달호 차장에게 들은 선입관인지 녹화 테이프의 카펫 근처에 엄지손가락 크기의 납작한 물건이 눈에 띄었다. 재생 테이프의 화질상 식별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그것은 모표나 배지, 그런 게 아니라면 여성용 오버 단추로 생각될 만큼 겉모습이 알록달록했다.

“저건 오버 단추잖아. 그 양반 괜한 것 가지고 그래.”

간단하게 치부하던 목소리가 가늘어졌다. 문득 아침에 배달된 일간 신문의 토요일자 경제면에 시선이 붙박혔다. 화면에서 본 문양이 그곳에 흩날리고 있었다. 단장을 짚고 선 구로다 그룹의 구로다 회장을 비롯하여 신일본연구소(新日本硏究所)의 미우라(三浦) 간사장, 그리고 일본사학계를 쥐락펴락 하는 무라야마(村山) 교수일행과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은 세 명의 노신사였다. 이들의 방한을 기념하게 위해 촬영 포즈를 취했는데 뒷줄에 선 40대 후반의 사내가 깃발 하나를 쳐들었다. 그곳에 그려진 알록달록한 문양이 바람에 흩날렸다.

‘이건 구로다 그룹의 심벌링이잖아!  이거 재미있어지는데. 죽은 아끼꼬 곁의 단추 같은 게 이거야? 얼마 전 송학수 원장이 지적하던 구로다 그룹의 심벌마크, 무당벌레잖아. 아무리 그렇다고 무당벌레를 기업의 심벌마크로 삼아? 송원장은 무당벌레가 ‘환생’과 관계 있다고 했지?’

때마침 전화벨이 요란히 울리는 바람에 어지러운 상념이 순식간에 달아나버렸다. 이달호였다.

“알아봤어?”

“별거 아니에요. 구로다 그룹의 상징물! 거 왜 심벌 있잖아요.”

“무당벌레?”

“아, 예에.”

“내가 자료 찾아보니까 희한한 게 나오더라구. 예전에 그런 게 있었다네. 촉산(蜀山)이란 귀신 많이 나오는 산 말이야. 서극(徐克) 감독이 무협영화 만들어 재미 좀 봤지. 그 산엔 별의별 귀신이 있대. 떠도는 얘기엔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가 선비들을 죽여 집단으로 무덤을 만들었는데···, 그 산에 색귀(色鬼)라는 것이 있는데 말이야.”

이달호는 얘기를 하다 말고 킥킥거렸다. 이내 정색을 하고 목소리를 낮췄다.

“이럴 게 아니라 잠깐 만나지. 토요일 오후에 굿판 벌어질 일도 없을 거구. 오랜만에 삼겹살에 쐬주나 한잔 하세.”

그렇게 하여 만나 자리에서 이달호는 끊어진 얘기토막을 추슬렀다.

“그 색귀 말이야. 그것들은 언제 누구하고든 옷을 홀랑 벗고 일을 벌이도록 춘정을 발동시킨다네.”

“발동?”

“거럼! 중국인처럼 강정이다 강장이다 하는 약재를 끊임없이 개발하는 민족도 적지 않을 거야. 우리가 몰라 그렇지 중국에는 비아그라보다 백 배는 효과가 쎈 약재가 많다네.”

“설마 백 배까지야···.”

“히야 이 친구 완전히 지방 방송이네. 이거 말이야, 자네가 몰라 그렇지 중국인들이 그 방면에 연구한 걸 보면 기가 차 말도 안 나와. 내 이런 말 안 하려고 했는데 거 왜 여자들의 은밀한 곳 있지. 그 입구를 이놈들이 어떻게 연구했는지 몰라도 거기에 대한 설명이 열두 가지야.”

“설마?”

“이런 사람하곤. 내가 비싼 음식 먹고 헛소리 하나. 자네가 박부장 닮아 흐리멍텅하니 얘길 해줌세. 은밀한 곳 중 어느 부위 명칭이 금현(琴絃)이라는 곳인데 남자와 사랑을 나눌 때 거문고 소리가 난다네. 그러니 그 짓거리 하는 게 신선나라 가는 거라고 떠들잖아.”

“차암, 이차장님도 아는 게 많아 먹고 싶은 것 많겠어요.”

“그렇다보니 색귀도 요란하다는 게야. 자네 몬도가네라는 거 알지? 남자들 정력 쎄라고 해구신(海狗腎)과 배암 먹는 것 말이야. 보신탕 먹는 거야 음식 문화니까 그렇다 해도 배암을 푹 고아 팩에 넣은 국물을 빨대로 쪽쪽 빨아대는 거 보기 흉하더구만.”

이달호는 상대가 반신반의하자 좀 더 신빙성 있는 결론을 내주었다. 그가 작년에 중국에 갔을 때, 촉산 아래 사는 무당들이 스스로의 영력(靈力)을 높이기 위해 칠성무당벌레를 생으로 먹는다고 털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