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들의 영원한 ‘18번’
|
|
|
|
|
8월 5일 낮에 롯데호텔을 다녀왔습니다.
향응을 제공 받으러 갔었냐구요? -_-+
요즘 만나는 이들마다 ‘적당히 좀 받지 그랬어’ 라고 한 마디씩 건네는 통에 이만저만 스트레스가 아닙니다.
밝히건대, 그 양실장과 이 양실짱은 엄연히 다릅니다. 철자법부터 다르지요. 전 ‘짱’입니다. (아셨죠? 음모자님 ^^)
평소 별로 절친하다고 하기 힘든 무궁화 다섯 개짜리 호텔을 다녀온 이유는, 그곳에서 모처럼 으리뻑쩍지근한 바둑행사 하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름 아닌, 2003 한국드림리그 개막식.
뭐 대회 개막식이란 게 뻔하긴 합니다. 큼지막한 플래카드 하나 뒤에 걸고, 높은 분 차례로 나와 뻔한(?) 축사를 하시고, 건배 제창 한번 하고, 밥 먹습니다 -_-;
그런데 이 높은 분들의 축사를 듣고 있자면, 이것도 트렌드가 있구나 싶어 재미있기도 합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바둑은 수담이라 하여 어쩌구’가 단연 빈도수 1위였는데, 근년들어 ‘바둑은 이제 스포츠’가 그 자리를 스윽 차지하더니, 요즘에는 ‘바둑판을 들고 세계로!’에 밀리는 듯 보입니다. 그러고 보면 바둑계에도 확실히 오피니언 리더라는 게 존재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날 드림리그 개막식은 좀 다르더군요.
솔직히 이런 개막식 행사를 느긋하게, 쇼 감상하듯 즐겨 본 것이 얼마만인가 싶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드림리그! 일단 첫 인상이 좋군요.
이날 개막식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드래프트제에 의한 선수선발이었습니다. 이번 리그에 참가하는 여섯 개 후원사 팀의 관계자들이 추첨 순서에 따라 즉석에서 ‘입맛’에 맞는 선수들을 골라 자기 팀으로 데리고 가는 거지요. 좀 심하게 표현하면 현대판 인간시장이로군요 -_-;
이 순서를 조마조마 하게 기다리며, 열여덟 명의 ‘상품’들이 나와 있었습니다. 물론 테이블은 가장 좋은 헤드 테이블입니다 ^^;
아카데미시상도 그렇고, 골든글러브상도 그러하듯, 숨 막히는 발표를 앞두고는 반드시! 라고 해도 될 만큼 꼭 따르는 순서가 있습니다. 두두두두! 하는, 사람 심장 떨어지게 만드는 그 얄미운 드럼소리? 물론 그것도 빼놓을 수 없지만, 바로 노미네이트된 사람에 대한 소개가 있어야겠지요. 그래서 장내는 잠시 불이 꺼지고, 벽에 걸어 놓은 대형 스크린에 열여덟 반상 올스타의 CF가 등장했습니다.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역시 이창호. 목소리 촤악 깐 남자 성우의 CF 카피가 죽이더군요.
‘이창호를 얻는 자, 천하를 얻을 것이다!’ (우승한다 이거지?)
아, 조훈현 9단의 것도 멋졌습니다.
‘황제의 분노를 사는 자, 두 집을 허용하지 않으리라’ (대마를 잡아드시겠다는 거로군요)
높은 분들 ‘에헴!’ 기침도 다 하셨고, 영상물 홍보도 다 끝나고.
이제 드디어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추첨식입니다.
 그런데 후원사 중 타이젬에서 타 후원사와의 사전 협약에 의해 조훈현 9단을 덥썩 주장으로 찜을 해 갔군요. 하긴 도리가 없었을 겁니다. 조훈현 9단이 누굽니까? 원년 타이젬의 대표이사를 지낸 바 있는 ‘타이젬의 상징’과 같은 존재가 아니던가요?
만약 눈치 없이 다른 팀에서 주장으로 덜컥 뽑아 간다면 좀 황당할 겁니다. 설마 일부러 져 주지야 않겠지만, 과연 조훈현 9단! 타이젬 선수들을 만나 승부욕이 펄펄 솟지야 않겠지요.
조훈현 9단이 찜된 가운데 드디어 시작된 선발식!
순번 1번을 뽑은 엠게임이 0.5초의 망설임도 없이 ‘0순위’ 이창호 9단을 찍었군요. CF 카피대로 진짜 천하를 얻게 될는지는 몰라도, 우선 당장은 천하를 얻은 기분일 겁니다.
다음은 파크랜드가 유창혁 9단을, 제일화재가 송태곤 4단을, 신성건설이 박영훈 4단을, 건화엔지니어링이 서봉수 9단을 차례차례 뽑아 갔습니다.
순서는 돌고 돕니다.
열명의 선수가 소속팀에 선발되고, 다시 두 명이 뽑히고, 또 다시 두 명이 뽑히고 ….
선발된 선수들은 희희낙락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진에서도 웃고 있군요.)
개중에는 벌써부터 자신이 속한 팀의 우승 가능성에 대해 예상을 나누어 보기도 하고, 남은 자리에는 어떤 기사가 선발되어 주었으면 하고 자신의 의견을 조심스레 피력하기도 합니다.
자, 이제 열여섯 명의 기사가 모두 선발되었습니다. 남은 것은 단 두 명.
치열한 예선을 뚫고 올라온 열여덟 명의 반상 올스타들이지만, 이렇듯 공개적으로 자신의 몸값이 매겨지는 데에는 당혹스럽기도 하고, 불만도 없지 않을 겁니다.
“야! 우린 올라가고 싶어도 실력이 없어서 예선 탈락했다! 배부른 소리 마!”라고 항의할 사람들도 많으리라 생각되지만, 그래도 사람 마음이 어디 그런가요?
 마지막으로 남은 두 명의 기사는 안관욱 5단과 윤혁 3단.
자! 과연 최후에 남는 자는 누구일까요?
사회자가 드디어 17번째 기사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신성건설에서 윤혁 3단을 선발하셨습니다!”
순간 윤혁 3단의 입가에 안도의 웃음이 돌았습니다. 쑥스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무엇보다 다행이다 싶었을 겁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양실짱 역시 기뻤습니다.
하지만 ….
양실짱의 눈에, 마지막으로 남은 자의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안관욱 사범님.
마치 ‘알고 있었어’라는 듯 달관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그 마음 읽히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18번이라니 ㅜ.ㅜ
마지막에 안관욱 사범님을 자동 선발하게 된 타이젬의 사장님이 멋지게 위로(?)를 하시더군요.
“어제 미리 안 사범님을 만나 뵙고 우리 팀에 꼭 오시면 좋겠다고 말씀 드렸는데, 진짜로 오시게 되어 기쁘다.”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말씀 듣는 안관욱 사범님의 표정이 사진에 나와 있습니다. ^^;
 그럼 오늘 양실짱은, 이날 남들이 안 한 안관욱 사범님 얘기 좀 하겠습니다.
안관욱 사범님은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나셨으니, 우리 나이로 올해 마흔 셋. 중년의 프로십니다.
사실 안 사범님은 프로 시절보다 아마시절에 더 이름을 날린 분이십니다. 이런 분들의 특징이 보통 입단이 늦다는 건데, 안 사범님도 서른한 살이 되어서야 프로가 되신 늦깍이십니다.
양실짱은 사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안 사범님을 무척 좋아하는 편입니다. 이유는 그 분의 기풍을 좋아해서도 아니고(기보 한번 놓아본 적 없음 -_-), 무슨 엄청나게 뛰어난 성적을 거두셔서도 아닙니다(타이틀 한번 따신 적도 없음 -_-;). 양실짱이 안 사범님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저 그 분과 함께 했던 그다지 길지 않았던 시간이 무척 편안했고, 지금까지도 생각날 때마다 옛 사진첩을 뒤적이듯 꺼내들 수 있는 잔잔한 감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양실짱은 지금으로부터 7, 8년 전 쯤, 안 사범님과 월간바둑지에서 코너 하나를 함께 연재한 일이 있습니다. 형식은 당연히, 해설 안관욱에 정리 양실짱.
박한 원고료에도 얼굴 한 번 찡그리는 일 없이, 매월 중순이면 누런 봉투에 원고를 담아다 조용히 양실짱 책상 위에 놓고 가시던 안 사범님.
원고를 열어보면, 볼펜으로 두툼두툼하게 눌러 쓴 글씨와 기보가 가득했지요. (가끔은 그립습니다. 워드가 아닌 펜으로, 원고지와 기보용지에 원고를 쓰던 그 시절)
수가 짧은 안실짱이 원고를 정리하다 궁금한 점이 있어 전화라도 드리게 되면, 싫단 내색 한번 없이 느릿 ~ 한 말투로 조근조근 설명해 주시곤 하셨지요.
몇 년 전부터 안 사범님은 연고도 없는 대전으로 내려가 후학을 가르치는 일에 정열을 쏟고 계십니다. 간혹 한국기원에서 뵈어도, 입만 떼셨다 하면 “우리 애들이 어쩌구 … 연구생이 저쩌구 …”하시며 온통 제자들 얘기뿐이십니다. 꼭, 아이가 귀여워 컴퓨터 바탕화면이며, 책상 위에 아이 사진으로 도배를 해놓고, 그러고도 모자라 틈만 나면 집으로 전화를 해대는 젊은 아빠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번 드림리그에 안관욱 사범님이 얼굴을 내미신 것 자체가 참 대단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서울도 아니고 대전씩이나 내려가 후진 양성에 여념이 없으신 분이,(바둑도장이나 바둑교실을 운영 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이거 보통 노가다가 아닙니다) 세계 최강 한국 프로기사군의 베스트 에이틴에 드시다니요. 열여덟 기사의 면면을 봐도, 50세의 조훈현 9단을 빼면 최고령이로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안 사범님은 13승 7패. 승률 65%의 좋은 성적을 거두셨습니다. 뭐 이창호, 유창혁, 이세돌, 송태곤 같은 일류들에 비하면 손이 부끄러울지 모르겠지만 이거 절대 만만한 성적이 아닙니다. 사실 이날 열여덟 명 중에서도 결코 하위권의 성적은 아니었지요.
행사가 모두 끝나고, 참석자들은 모두 큼직한 접시 하나씩을 들고 줄을 섰습니다. (밥 먹어야죠. 뷔페식이었습니다 -_-)
음식을 부지런히 주워 담다보니, 옆에 안 사범님이 서계시더군요.
다짜고짜 “축하드립니다.” 했더니, 그저 쓸쓸히 웃으셨습니다. 아마도 제가 드린 축하 인사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셨을 겁니다.
이날 안관욱 사범님에게 부여된 자랑스러우면서도 부끄러웠던 마지막 18번.
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이 ‘18번’을 하나쯤, 숨겨 둔 비수처럼 주머니 속에 꽂아 두고 살아갑니다.
양실짱도 언제고 향응을 제공 받을 때를 대비하여(?) 부활의 ‘사랑할수록’을 18번으로 준비해두고 있습지요. (요즘엔 지겹다는 여론에 밀려 마야의 진달래꽃에 도전하고 있다는 …)
음식이 담긴 접시를 들고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시는 안 사범님의 뒷모습을 보았습니다.
안관욱 사범님.
부디 이번 한국드림리그에서 좋은 성적 거두시어
이날 마지막 18번의 진짜 능력을 보여주시길 기원하겠습니다.
당신은 우리들의 영원한 ‘18번’이시기에 ….
|
|
|
|
|
|
|
|
|
|
|
|
|
|
|
| ┃꼬릿글 쓰기 |
|
 호호아아 |
｜ 2003-08-07 오전 10:45:00 [동감0] 
|
|
 이 의견에 한마디 |
엣 추억의 묵향이 전해오내요.
|
|
|
안관욱사봄님 화이팅!!! 힘내세여^^*
|
|
|
코 끝이 찡하네요. 안사범님 화이팅... 양실짱님도 화이팅!!!
|
|
|
구래두 전 안관욱 사붐님께 양실짱님이 무쟈게 향흥 받았다고 강력히 주장합니닷~!!! 오로의 굿모닝은 우찌이리 더뎌요~~자주좀 올려주셈! 안관욱 사봄님도 화이링~^^*
|
|
|
애잔한 시한편을 읽은거 같이 맴이 찡해오네요...두 18번 화이팅!!!!!!!
|
|
|
바둑을 즐기는데 오로건 타이젬이건 뭔 상관있나요? 글고 양실짱님이 어디에속해있던 관심없음니다. 다만 글이 재미있어설 리플달았을뿐......
|
|
|
음..안관욱! 생소한 이름 석자인데... 어쩐지 범상치 않은 인상. 일내시오.
|
|
 a4g.net |
｜ 2003-08-12 오후 6:43:00 [동감0]
|
|
이 의견에 한마디 |
멋진 글이네엽
|
|
|
최고의 바둑매너에 정감있고 열심성실이신 안사범님! 중견강호의 무림지존을 기원하고 또 믿습니다.열여덜 화이팅!!
|
|
|
안사범님 스카이 바둑에서 좋은해설 잘 듣고 있읍니다. 항상 조용조용히 자세히 설명하시는 모습이 보기좋던데여 부디 중견의 노련미로 훌륭한 성적내시길 빌게여
|
|
 osoo707 |
｜ 2003-08-20 오후 4:00:00 [동감0]
|
|
이 의견에 한마디 |
인간적인 내음이 물씬한 글이시네염!.. 잘 읽었구염.. 근디.. 옥의티 하나.. 나이가 두번째는 아닌 거 가틈! 서명인 담 아님꺄?
|
|
 musimhan |
｜ 2003-08-25 오전 5:46:00 [동감0]
|
|
이 의견에 한마디 |
바둑은 정신게임이니, 나이가 들어도 지존이 될 수 있읍니다. 일본에는 나이 60이 넘은 사람이 사법시험에 합격한 기록이 있고, 슈우꼬가 65세인가 타이틀을 딴 적이 있지요. 안 사
|
|
| musimhan |
｜ 2003-08-25 오전 5:48:00 [동감0]
|
|
이 의견에 한마디 |
범님이 앞으로 타이틀을 따서 멋진 기록을 남기시기를 기원합니다
|
|
|
안사범님 화이팅!! 눈물이 그렁그렁..감동 만점입니다. 양실짱님!! 휴지사와여!!
|
|
|
|
|
|
.gif){kind=logo}
강소어
세월단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