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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원 현대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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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정석 상하
하수들이 앞세우는 회심의(?) 핑계 중 하나가 바로 ‘정석을 몰라서리’.
정석을 몰라서 바둑을 그르쳤다는 나름대로의 전문가적인 소견이긴 한데 초반은 그렇다 치고 사활을 몰라 귀의 대마가 죽어버리거나 끝내기에서 역전 당한 것까지도 ‘정석을 몰라서’로 치부해버릴 건 또 뭐람.
이왕 전문가 이야기가 나온 김에 부언해 보자면 바둑에서 이 ‘정석’만큼 전문가들의 견해가 분분한 분야도 없다. 사실은 분분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극단적인 이론이 상충하는 수준이다.
정석 추종파의 태두는 한때 ‘컴퓨터’라는 별명으로 불린 일본의 이시다 요시오(石田芳夫) 九단. ‘바둑이 늘려면 어찌 하오리까?’라 물어 오는 아마추어들에게 이시다 九단은 백이면 백 “정석을 공부하십시오”라 대답해 준단다. 정석파의 장문인답게 꽤 두툼한 정석책을 시리즈로 출간하기도 했다.
정석파가 제시하는 정석학습의 유용성은 이러하다. 하나의 정석 속에는 사활, 맥, 행마 등 바둑의 망라된 고급기술들이 질펀하게 녹아들어 있다는 것. 따라서 요즘같이 바쁜 시대에 이들을 하나 하나 따로국밥으로 공부할 것이 아니라 정석 하나만 붙들고 연구를 거듭하다 보면 다른 것들은 자연히 깨우쳐진다는 주장이었다.
그렇다고 정석을 마치 천자문, 구구단 외듯 수순만 달달 외워대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하나를 알더라도 꼼꼼히 씹어 제대로 소화를 시켜야 위와 같은 영험한 효험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정석 추종파가 있는 반면 정석 반대파(혐오파라고 해야 할지?)들도 물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조치훈 九단이다. 꽤 두툼한 정석책 한 권을 앉은자리에서 훌훌 넘기던 조九단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책을 내려놓으며 “서너 개 정도를 빼놓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들 뿐”이라 한 말은 정석무용론을 펼치는 이들의 대표적인 인용문구이다.
물론 정석을 몰라도 바둑을 둘 수는 있다. 또 고수가 못되란 법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석공부는 중요하다. 어렵지만 그 속에 진리가 있고 기력향상의 왕도가 있기 때문이다.
영역본 출간 눈앞
정석, 정석 하지만 사실 국내에서 볼 만한 정석책 한 권 찾아내기란 썩 용이한 일이 아니다. 사활이나 맥, 행마, 중반전투, 끝내기 같은 분야와 달리 정석은 제법 유행을 타는 종목이라 과거의 명저라고 해서 오늘날 고전의 대접을 받으리란 기대를 할 수도 없다.
한국기원 정통바둑강좌 시리즈 중 하나인 「현대정석」은 그런 의미에서 독자들께 정독을 권할 만한 좋은 바둑책이다. 상권 280쪽, 하권 414쪽의 700여 쪽에 가까운 방대한 분량으로 필요할 때마다 들추어보는 사전적인 역할을 겸하고 있다.
「현대정석」은 제목에 걸맞게 케케묵은 고전정석들의 거미줄을 걷어내고 새롭게 수정, 보완, 재편집한 책이다. 상권 화점■3■三편이 1991년, 소목.고목.외목편을 다룬 하권은 그로부터 무려 9년이나 세월이 지난 올해 2월에야 세상에 나왔다. 최신정석, 특히 한국바둑이 세계를 제패하는데 최신예 병기로 쓰였던 ‘한국형 정석’을 담느라 발행이 자꾸만 지체됐다는 후문. 물론 그만큼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정석책은 딱딱하고 어렵다’는 선입견에는 조악했던 기존 정석책들의 죄과가 크다. 아무래도 정석은 다른 분야에 비해 변화도와 참고도가 많기 마련인데 이들을 편집의 기본이론조차 무시한 채 욕심껏 한정된 지면에 쓸어 넣다보니 첫 장에서부터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현대정석」은 일단 편집이 시원시원해 한결 눈 맛을 더해준다. 기보를 큼직하게 박아 넣어 한눈에 보기도 좋지만 무엇보다 참고도들의 수순을 잘게 썰어 놓아 중급자 수준 정도면 바둑판의 도움없이 얼마든지 눈으로만으로도 독파가 가능하다.
게다가「현대정석」두 권은 올해 안에 영문으로 번역, 한국바둑의 해외 보급을 위한 첨병으로 쓰일 예정이다. 이럴 경우「현대정석」은 한국바둑출판사상 최초의 영역본이 된다. 「현대정석」의 영문판을 읽은 외국독자들은 적어도 ‘아다리’는 ‘단수’로, ‘조세키’는 ‘정석’으로 알게 될 터이니 이 책 두권이 지닌 무게는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현대정석」의 저자 서봉수 九단과 정동식 五단은 올초 하권을 출간하며 9년 전에 쓰인 상권 역시 제호에 걸맞는 ‘현대정석’이 되도록 빠른 시일 내에 수정, 보완판을 내놓을 것을 약속했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기다리는 전 세계 어린이들의 마음으로 후속작을 기대해 본다.
<양형모 기자/ryuhon@badu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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