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흥왕은 이것을 중신회의에 붙여 시행을 서둘렀다. 측근들을 몽땅 끌고 남도(南桃)에서 연회를 열었으니 왕명은 그대로 통과되었고, 여세를 몰아 지소태후의 수렴청정을 거두고 진흥왕의 친정(親政) 체제로 왕실이 돌아섰다. 이와 같은 소식이 만월성에 전해지자 너무 놀란 지소태후가 서둘러 돌아왔으나 상황을 되돌릴 짬은 없어보였다. 더구나 진흥왕은 자신의 조루(早漏) 증세가 깨끗이 완치됐음을 고하며 이같은 일이 사도왕후의 공이라고 추켜세웠다.

“태후마마, 소자의 건강이 회복돼 내명부 여인들을 누구든 잠자리 시중으로 불러들일 수 있으니 이것은 왕실을 위해 크나큰 복록이라 생각합니다. 소자는 왕실에 비장된 삼련옥벽을 꺼내 사도왕후에게 선물로 내렸습니다.”

지소태후는 내심 치밀어오르는 울화가 있었다. 자신과 핏줄이 맞지 않은 사도왕후를 축출하려던 계획이 물거품 되는 것도 부족해 왕실에 공이 있다고 귀하디 귀한 삼련옥벽까지 내어준 것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이 월성에 돌아와 주위를 탐문한 결과 모든 게 진흥왕에게 기울었으니 소란을 떨어봐야 득될 게 없었다. 모든 걸 빨리 결정하고 정리하는 사태파악에 뛰어난 게 지소태후의 무기였다.

“주상, 나는 오래 전에 사도왕후가 미덥지 못해 쫓아내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날이 무더워 농작물이 타들어가자 기우제를 올리려 만월성에 갔습니다만 왕후가 대단한 노력으로 대왕의 고충을 없애주었으니 어찌 그걸 모른 척 하겠소. 대왕이 중신들과 친정(親政)을 약속했다면 그리 하세요.”

“하하하, 어마마마께서도 기뻐하실 줄 알았습니다.”

“내가 듣기론 중신들의 조회시간까지 새로이 정하고 내명부 여인들이 주상을 모실 때 반지(環)를 준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것은 중원의 풍물인데 괜찮겠습니까. 아무리 사도왕후의 의견이 옳다 해도 그것을 시행하는 데는 여러 제약이 따릅니다. 좀 더 생각한 다음 시행하지요.”

“예에, 어마마마.”

“한데,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습니다. 대왕이 삼련옥백에 대해 말을 하였는데 그건 궁 안의 비밀의궤(秘密儀軌)에 넣어진 것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더구나 그 의궤는 대왕과 왕후가 어찌 알았습니까?”

“소자도 그 점이 궁금해 왕후에게 물어보았는데···.”

“보았는데?”

“누군가가 갖다놓은 책자를 보았답니다.”

“그래요? 그래서 대왕은 비밀의궤에 그런 물건이 있는 줄 알았군요. 이제 궁금한 것은 알았으니 나는 돌아가겠소”

지소태후는 납덩이처럼 굳은 얼굴로 남당을 빠져나갔다. 모든 것은 그 정도에서 끝이난 것이라 여겼는데 곧 전장터에 나가있는 세종을 불러들여 추궁했다.

“어미가 전군(殿君)에게 선물로 내린 물건이 어떻게 대왕의 손에 있게 됐습니까. 그것은 밀교의 수법자들이 귀히 여기는 것이라 함부로 바깥사람들이 보아선 안 된다고 했지 않습니까. 내가 전군을 총애하는 건 궁인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대왕에게 문제가 생기면 보위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생각해 보았습니까.”

“예에? 그 무슨 당치않은 말씀을···.”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왕통만 가지곤 안 됩니다. 힘이 있어야 해요. 주상은 어떻습니까. 매사에 의기소침해 추진해 나가는 힘이 부족해요. 오죽했으면 서른 나이에 조루증(早漏症)으로 고생합니까. 아무리 내 뱃속에서 나왔다지만 정이 가는 아드님이 있어요. 그 아드님을 위해 장차 신라를 신국(神國)으로 만들어 전하려는 데 그걸 망치게 합니까.”

“어마마마, 그 책자와 물건은 소자가 내자에게 주었나이다.”

“내자라면?”

“미실 말입니다.”

“무어라, 미실? 고 요망한 것이 책자와 옥벽을 사도왕후에게 주어 어미의 십년 계획을 망치게 했습니까. 대원신통의 더러운 핏줄이라 관심 밖으로 뒀는데 마침내 일을 만들었습니다.”

“어마마마, 소자는 제왕의 자릴 탐내지 않았습니다. 왕실에 있는 저에게 중책을 내려준 것 만으로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어마마마, 그런 말씀 마세요. 대왕께서 그런 말을 들으면 상심할까 염려됩니다.”

“못난 사람. 모든 건 때가 있고 시기가 있습니다. 한나라의 왕업이 전군에게 다가올 때는 그걸 외면치 않고 감사히 받는 거예요. 그게 ‘신국의 돕’니다. 그러나 이젠 틀렸어요. 모든 게 대왕을 향해 돌아섰으니 내가 할 일은 이제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참을 수가 없습니다. 전군은 지금 미실을 불러오세요. 내 그 아이에게 엄히 따져 물을 일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궁에 없습니다. 얼마 전 그녀의 할머니 옥진궁주가 세상을 떠나 묘소에 참배하러갔습니다.”

“그래도 전군이 데려오세요!”

지소태후는 혈색을 지운 채 칼칼한 어조로 세종 전군에게 명을 내렸다.

  ▸전군(殿君) ; 왕비가 중신들과 사통하여 낳은 아이
  ▸삼련옥벽 ; 밀교의 수법자가 조루증을 치료할 비방과 그에 사용할 물건으로 삼련옥벽을 지소태후에게 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