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는 본시 여인의 눈물에 약하다. 한 말(斗)에 천금(千金)이 나가는 미주(美酒)를 포실히 따라, 왕자들 걱정의 단장(斷腸)을 안주로 내놓자 몇 잔 술을 들이켠 진흥왕의 잔정이 가만있지 않았다. 그 동안 은밀한 정감이 없었다 해도 내당에 뿌려진 양위마마의 사랑엔 이상이 없었다.

아드님을 셋이나 생산했으니 공으로 말해도 으뜸이다. 품행이 방정하여 내명부에서 ‘타의 모범’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쫓아내려는 건 자신의 뜻이 아닌 어머니 지소태후의 바람이다. 사도왕후의 핏줄이 대원신통(大元神統)이라는 걸 모를 리 있겠는가.

진흥왕은 미약한 자신의 힘을 생각해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아마도 미약(媚藥)은 이 무렵 뿌려진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무덤덤하고 우직한 사도왕후의 자태가 선녀처럼 요요롭게 보일 리 만무였다.

본래의 계획대로라면 사도왕후가 행술을 펼치는 축혈(蓄血)의 자세에서 시작해야 됐으나 술기가 차오른 진흥왕이 멋쩍은 모양새를 취할 리 만무였다. 대왕은 사도왕후를 반듯이 눕히고 양다리를 둘러맸다. 두 다리는 자연스럽게 가슴을 지나 어께에 걸치게 하고 왕후의 엉덩이와 허리를 동시에 들어올렸다.

술을 마신 후였지만 이런 체위를 자연스럽게 펼친 것은 당시 신라 왕실을 황음하게 수놓은 중원에서 들어온 춘화도(春畵圖) 때문이었다. 거기엔 한결같이 그런 체위를 연출한 그림들이 수없이 널브러진 상태였다. 이러한 ‘원박(猿搏)’의 체위는 전통적으로 통통한 미인을 고집해온 중국 왕실이 허리가 가늘고 발이 작은 세요미인(細腰美人)으로 바뀌다 보니 자연스럽게 선호도가 바뀐 추세였다. 그런 이유로 신라 왕실의 귀족들 집안엔 허리가 가는 미인을 어깨에 둘러매고 성행위를 치르는 그림들이 적지 않게 나타났다.

진흥왕의 뇌리엔 이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두 다리가 아닌 한쪽 다리만 둘러업은 채 진입을 시도하는 마요제(馬搖蹄)도 있었다. 그러나 이 체위를 왕실의 약사들이 권한 건 결코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신라를 다스리는 대왕이 볼썽사납게 펼치는 동작으로 무리라 여긴 것이다. 그러나 이날 밤 진흥왕의 행법은 그런 것과는 상관 없었다. 술에 취한 사내의 뇌리 속에 남은 찌꺼기는 궁금증에 대한 강렬한 도전이었다.

진흥왕이 서책으로 보아왔던 이 체위는 중원의 귀족들이 즐겨 사용한 굴곡체위(屈曲體位)다. 특히 <동현자(洞玄子)>라는 서책의 삼십법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였기에 진흥왕이 이 체위를 유도한 것은 중원의 풍류객들이 말하는 물결 따라 배를 밀고 가는 ‘순수추선(順水推船)’의 즐거움 때문이었다.

배가 물살에 밀려 떠내려가면 어떤 체위를 써도 무난할지 모르나 여인이 하나의 나뭇잎이 되어 이리저리 이끄는 대로 흘러간다면 그 놀이가 얼마나 정취있게 돼 바라지겠는가. 어릴 때부터 지소태후의 눈치를 보아선지 왕후와의 잠자리가 한 번도 깨가 쏟아진 적이 없었다. 남들이 가지고 있는 똑같은 물건인데 왜 자신은 쥐가 들락거리는 여인네의 취서(臭鼠) 입구에 가면 괜스리 상대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가. 항상 비실거리는 아드님의 기를 살리기 위해 지소태후는 몇 번이나 용기를 불어넣었다.

“대왕, 왕실에 있는 여인이라고 특별히 다른 점은 없어요. 세상 여인들은 한결같이 똑같은 것을 지니고 있답니다. 조물주가 남녀를 만들 때 사람마다 몇 가지 기관을 달리 만든 건 사실이에요. 현명한 사람은 그 점을 찾아내 개발시켜 나가고 아둔한 자는 명기(名器)를 찾는다고 법석을 떨지요. 그러나 시간이 흘러 되돌아보면 명기를 찾아나선 자는 스스로 운수없다고 탄식하는 반면 상대의 단점을 장점으로 개발시킨 자는 마침내 금현(琴絃)을 찾아내 방사의 즐거움을 만끽합니다.”

여인의 은밀한 곳에 자리잡은 ‘금현’은 음핵소대(陰核小帶)라는 또 다른 이름이 있다. 이곳은 자신과 상대하는 사내와의 의기가 투합해 모든 조건이 맞아 들어가면 거문고 줄이 찌르르르 울리는 것이다.

힘이 좋은 사내가 억지로 밀고 간다고 울리는 게 아니다. 여인의 몸은 오상(五常)의 절도를 지켜 손님이 찾아들기를 바란 것이다.  잘난 사내나 못난 사내나 누구나 가지고 있기 마련으로 상대가 준비되길 기다리는 게 인(仁)의 마음이며 옥경의 중심부가 호수 모양으로 되어 있는 게 의(義)며 귀두의 끝부분이 잘룩한 게 예(禮)며 발딱 일어서서 하늘을 향해 앙각(仰角)을 취하는 건 지(智)며 때에 따라 적절한 행동을 하는 것이 신(信)이다.

이러한 오상에 대해 귀가 닳도록 들었지만 한 번도 체험해보지 못한 진흥왕으로서는 지소태후의 충고가 그림 속의 떡일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밖에 진흥왕의 양경이 단단한 박달나무 같다가도 아차 하는 순간 물 먹은 진흙덩이로 변해 힘없이 축 늘어지기 예사였다. 그렇다보니 상대하는 여인으로서 얼마나 김 빠질 일인가. 그런데 이날만은 달랐다. 진흥왕의 남성이 바짝 독이 오르자 때를 놓치지않고 사도왕후의 비기(秘技)가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