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후마마, 대왕의 연치는 지금 서른이 훨씬 넘었나이다. 신라의 국왕이면서 당신의 손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없다보니 심기가 상해 간(肝)에 이상이 있으리라 보옵니다. 간은 혈해(血海)라 하였사온대 누워 있으면 혈액은 간으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이른바 ‘인와혈귀어간(人臥血歸於肝)’이지요.”

번거로움을 싫어하는 사도왕후의 마음을 생각해 길게 얘기하지 않았지만 심장은 혈액을 순환시킨 반면 간은 혈액의 저장소라고 할 수 있으니 오장(五臟)의 정기를 양육시킨다고 볼 수 있었다.

“왕후마마, 대왕의 심기가 상해 방사(房事)에 흥미를 잃었다고는 하나, 그대로 두면 고질화될 우려가 있사오니 대왕마마께 즐거움을 찾아주시옵소서. 그 첫 번째 방법으로 쇤네가 ‘시황동녀단’을 권한 건 흥미 잃은 방사의 불씨를 살리려는 뜻이 있나이다.”

사내들은 생각하는 것이나 소유하고픈 폭이 여인과 다르다.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 짓기보다 무엇이든 확실하게 자신의 소유로 점을 찍으려 한다. 그것이 대왕이라고 예외이겠는가. 비록 지소태후의 그늘에 있었지만 자신의 뜻을 펼치고 싶은 욕망은 어느 누구보다 강했다. 미실은 자신의 설명이 길어질수록 좋은 결과가 나오리란 점을 기대할 수 없어 ‘네 가지 법술’에 대한 설명은 더 이상 하지 않고 돌아갔다.

“그러니까 미실 그 아이가 준 네 가지 법술은 방사의 체위를 말하는 게 아닌가. 대왕의 심기가 불편할 것을 염두에 두고 그 첫째로 ‘시황동녀단(始皇童女丹)’을 사용하라는 건 대왕께 즐거움을 찾아주라는 것 아닌가.”

사도왕후가 그런 생각을 더듬는 것처럼 과연 ‘노함을 다스리는 법술’은 그런 것인가? 그랬다. 그것은 ‘노함을 다스리는 법술’이었다. 방사의 체위 축혈(蓄血)이란 것으로 중원에서 건너온 팔익(八益)의 체위 중 여섯 번째에 해당됐다. 사도왕후는 대왕에게 시집 오면서 내문학관 약사에게 참고의 말을 들었었다.

“왕후마마, 성의학 교전(敎典)에 칠손(七損)이니 팔익(八益)이니 하는 것은 모두가 음양을 나누는 남녀에게 도움을 주려는 이유 때문입니다. 성적으로 음양의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이에게 체력을 강화시켜 원만한 치료효과를 거두려는 데 그 뜻이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남녀가 즐거움을 나누면서 근육이나 관절, 내장 · 혈행 · 맥행(脈行) · 신경 등의 기능강화에 힘을 쓰는 반면, 여인에게는 체위를 통해 무릎을 굽히거나 벌림, 좁히기 · 뒤틀기 등의 운동과 허리의 충분한 회전으로 신장의 기능을 강화시켜 골반 내의 혈액순환을 돕고 복부 근육을 강화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문학관 약사는 <옥방비결(玉房秘訣)>에 대해 누누이 설명을 펼쳤다. 그 책자에도 ‘음양의 도’란 항목에 칠손과 팔익이 있었다. 그것들은 인체의 고장난 부분을 치료하는 기능성 체조이기 때문에 조금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팔익의 여섯 번째에 해당하는 축혈(蓄血)은 남성의 허기진 즐거움을 회복시켜주는 체위라 할 수 있었다. 체위 부분을 설명하는 곳에 미실이 남긴 주의사항이 쓰여 있었다.

“사람이 노(怒)함으로 기력을 탕진했다면 쉬고 싶은 건 당연합니다. 그 옛날 중원에선 진(秦)나라 시황제가 연나라에서 보낸 자객 형가(荊軻)의 공격을 받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이른바 혼에 구멍아 났다고나 할까요. 시황제가 두서없이 회랑을 방황할 때 그를 잡아끌었던 게 호씨녀(胡氏女)였습니다.”

호씨녀는 성의학 교전대로 시황제를 보료 위에 눕게 한 채 그 위에 걸터앉아 시황제의 옥경을 깊숙이 모셔들었다고 역사서는 전한다. 신빙성이 있는 얘기인지 모르지만 이 날을 시작으로 10여일간을 호씨녀와 잠자리를 같이 하였고 이로 인해 시황제의 신력(腎力)은 크게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리낌스러운 것은 있었다. 당시의 인연으로 호씨녀는 왕자를 낳았고 그 아들이 진나라를 망친 제2세 황제 호해(胡亥)였다.

‘미실이 이 서책을 준 것은 어떻게든 대왕의 은총을 내게 돌리려함이 아닌가. 그렇지 않고서는 왕후라 한들 위태롭다는 것이리라. 지소태후가 월성으로 돌아오면 날 내쫓으려 일을 꾸밀 것이니 그걸 막을 시간은 오늘 밤뿐이리라.’

자신에게는 미실이 놓고 간 약초가 있었다. 사내들의 마음을 흔들어댈 요초(搖草)라는 미약이었다.

▸칠손팔익(七損八益) ; 이 용어는 <소녀경>에 나오지만 <옥방비결>에도 모습을 보인다.

▸시황동녀단(始皇童女丹) ; 요초를 이용한 미약의 다른 이름. 본래는 방사를 돕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나 왕실에 들어온 여인이 왕자를 생산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사용해 역대의 제왕들이 일찍 목숨을 잃는 비극을 초래하였다.

▸옥기 ; 악기의 한 가지. 옥기는 궁중 음악을 연주할 때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