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계가 시끌시끌하다. 사이버오로, 네오스톤, 타이젬 세 곳의 뉴스에 오른 한 기사에 꼬리글이 물경 2천개가 달리며 차마 눈뜨고는 못볼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바둑계의 유력 패트런이던 고 김영성 씨의 유족과 프로기사 윤기현 9단간에 벌어진 송사를 놓고 바둑팬들이 흥분을 하며 거의 8할이 윤기현 9단에게 일방적인 삿대질을 퍼붓고 있다.

이 사건의 파동에 담당재판부도 놀랐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단순한 사건임에도 바둑팬들의 관심과 반응이 너무도 뜨거운 것에 바둑이 단순 오락의 범주를 넘어 '예도'를 자임하는 이유를 실감했던 모양이다. 일이 일파만파로 번지자 윤기현 9단은 기자회견을 자청하며 진화를 시도했으나 사태를 진정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더 악화(?)시켰다.

이미 패소를한 1심 재판을 부인하며 항소하여 진실을 밝히겠다는 일방적인 주장을 한 후 자리를 떠버려 참석했던 기자들을 실색케 했다. 이날의  회견을 지켜본 바둑팬들은 더욱 빈정이 상해 차마 옮기기도 저어한 욕설(?)로 인터넷 게시판을 도배하고 있다.

이 사건은 고 김영성 씨 유족과 윤기현 9단의 지극히 단순한 개인사다. 이렇게 세상에 드러내놓고 난리(?)를 칠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일이 이 모양이 되어 도하 신문의 사설에까지 거론되며 바둑계 전체를 도마 위에 올려놓기에 이른다.

이 사건에는 한국바둑계의 지존같은 존재인 조훈현 국수까지 오르내리고 있다. (서면으로 제출했기는 하지만) 그가 1심 재판의 유력한 증인으로 나선것이다. 오청원바둑판과 세트를 이루었던 고가의 바둑알(일설에는 바둑판보다 더 고가라고 한다)이 예전에 보았던 그 알이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을 제출했다는 전언이다. 김영성 씨가 윤기현 9단에게 넘긴 바둑알과 윤기현 9단에게 유족이 돌려받은 바둑알이 다르다는 얘기다.

오청원, 세고에, 조훈현, 윤기현, 김영성 등 바둑계의 명망가들이 총 출동하니 언론의 관심이 모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바둑계는 악재를 만났다. 가뜩이나 쪼그라드는 바둑인구와 국수전 왕위전 등 전통의 기전에서 후원기업들이 철수하는 마당에 이런 추태로 물을 흐린다는 것은 개탄스런 일이다.

고 김영성 씨는 한국바둑계가 어려울 때 따뜻한 모닥불을 피워 주었던 전설적인 바둑인이다. 윤기현 9단도 국수전의 타이틀 홀더로, 해설자로 명성을 얻어온 한국바둑의 원로다. 이 두 분 사이에는 30년 우정이 있다고 한다. 우정이 생과 사로 갈린 마당에 진실(?)을 가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두 분이 사랑방에서 바둑을 주제로 담소를 나누며 피웠던 화로불의 불씨가 되살아나, 두 분의 30년 우정은 고사하고 두 분이 그토록 아끼고 보듬어온 바둑이라는 산(山)을 다 태우고 있다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