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놀이, 이것은 ‘사자놀이’라고도 불린다. 기악(伎樂)과 함께 수(隋)나라에서 들어왔으나 사악한 기운을 쫓아내는 경사스러운 놀이란 믿음이 있었다. 남녀가 합환(合歡)하는 만자형(卍字形) 도화원에서 이런 놀이가 적합한 것인가는 둘째로 치고 지소태후가 연회에 한 번도 시행한 적이 없는 이런 놀이를 열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사자 모양의 탈을 쓴 놀이꾼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자 유녀(遊女)들이 좌우로 갈라져 길을 터주었다. 설추경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태후마마, 모하리에 머물던 무녀들이 모두 성안으로 들어왔나이다.”

“지금 어디 있는고?”

“모두 밖에 있나이다. 무녀의 우두머리 모을지(毛乙支) 큰무당은 어룡정(御龍井) 주위를 맴돌며 신을 맞는 굿판을 벌일 것이라 합니다. 주지놀이는 나중의 연회에 사용하심이 좋으리라 봅니다.”

지소태후가 고갯짓을 하는 것을 보자 놀이판을 향해 설추경이 두 팔을 휘둘렀다. 큰 탈을 쓴 사자는 앵돌아진 채 투정을 부렸다.

“놀이라는 게 보따리를 풀었으면 끝을 봐야하는데 말이야. 오늘은 괜한 헛염불만 하는 것 같구만. 비가 오고 만물이 풍성하게 주렁주렁 열리고 풍년가 소리 드높아야 흥취가 나지 이렇게 가물어 목이 타들어 가니 차라리 밖에 나가 기우제(祈雨祭) 놀이판이나 구경 해야겠네. 자, 모두들 앞마당으로 나가세나!”

흥을 돋구는 북소리가 소란스럽게 울리자 그곳에 있던 남녀는 모두 앞마당으로 나갔다. 해가 져 가는 하늘이 왠지 을씨년스러웠다. 구름 한 조각 없는 하늘엔 서산에 걸린 태양의 여광(餘光)이 아스라한 빛기운을 뿌려댄 탓에 군데 군데 휘움하게 밝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앞마당엔 기우제를 올릴 준비가 단초롭게 펼쳐진 채였다. 설추경이 가만히 한소릴 내놓았다.

“태후마마, 소인이 보건대 머지않은 시각 한줄금 비가 쏟아질 것 같나이다. 이따금 바람에 섞인 빗발이 없는 게 아니오나 목이 탄 농작물을 해갈시키기엔 크게 모자란 듯 싶나이다. 이런 때 마마께서 기우제를 올리시는 것은 참으로 현명한 처사라 보옵니다.”

기우제를 올릴 준비를 서두르자 뭉쳐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볼멘소리가 흘러나왔다.

“어허,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은 정치하는 위인들이 지저분한 짓을 하기 때문이야.”

“아암요, 그렇고 말고요.”

그런가 하면 좀 더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쪽도 있었다. 이를테면 대지를 숭배하는 위인들로 자신들이 살아온 생활의 풍속을 응용하는 쪽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날이 가물자 여인네의 달거리에 쓴 무명으로 된 개짐을 땅에 묻어 무릎 꿇고 통성으로 빌고 또 빌었다.

그런데도 비가 오지 않자 모하리에서 온 무녀들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그들이 하는 양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무녀들은 엄숙한 천제(天祭) 의식을 사용했다. 제단으로 보이는 상(示) 위에 천신이 좋아하는 걸 차리고 그 앞에 신간(神竿)을 세워 동서남북으로 색색의 천을 늘어뜨렸다. 속곳을 벗고 치마만 두른 채 굿판에 서자 악기가 와그르르 울어댔다. 바야흐로 영신(迎神)맞이가 시작된 것이다.

춤을 추었다. 살랑살랑 치마를 흔들며 바람 신이 흥분하도록 음란한 춤을 추었다. 천을 잡은 쪽과는 별도로 사이 사이에 낀 두 명씩의 여인들은 아홉 수의 춤을 추었다. 이른바 ‘구구법(九九法)이다. 그 하나는 용번(龍飜)으로 동쪽의 황룡이 날아오르는 자세를 취하고, 그 둘은 호랑이 걸음(虎步)이니 서쪽의 백호가 날뛰는 모습이며, 그 셋은 거북이가 하늘로 올라가는 구등(龜騰)이며, 그 넷은 숫봉이 나르는 봉상(鳳翔)이다.

이러한 네 가지 형상이 동서남북의 중심선에 모습을 그려내자 원숭이가 나무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의 원박(猿搏)이 나타나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매미가 나무에 앉은 모습의 선부(蟬附)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가 하면 토끼가 가는 풀을 얌얌거리는 토연호(兎吮毫)도 있고 물고기가 서로의 비늘을 비벼대는 어접린(魚接鱗)도 나타났다. 그러고 보니 학이 껴안고 목을 비벼대는 학교경(鶴交頸)이 없겠는가.

장고와 북소리 장단이 덩더꿍 울리고 그럴 때마다 무녀를 이끄는 큰무당은 귀두도(鬼頭刀)를 휘리릭 내려치며 바람을 잘랐다. 가뭄이 어째서 일어나는가. 그것은 양(陽)의 기운이 음(陰)을 이겨 하늘이 빗장을 꽁꽁 잠근 탓이다. 그것을 풀기 위해선 무엇보다 음란한 춤사위가 필요했다.

“오호라, 비가 내린다. 화끈하게 쏟아지도록 놀아보세! 자, 어서 벌려라, 벌려!”
   "벌려라, 벌려!“

큰 무당의 목소리가 악다구니처럼 들렸다. 자신의 신령스런 기운으로 비위가 틀어진 신의 넉살을 바로잡겠다는 안간힘이었다. 그러기에 수줄을 비녀목으로 연장해 올가마를 만들고 암줄에 비녀목을 꽂으며 음담을 주고 받았다.

“똑바로 벌려!”

“벌려라 벌려!”

처음엔 댓구를 하던 무녀가 열두 명이었는데 흥을 탄 유녀들이 따라 외치자 음담은 더욱 짙어졌다.

“똑바로 세워라, 세워!”

“세워라! 세워라!”

행동은 일사분란하게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절도가 착착 맞아떨어졌다.

“세게 질러라! 질러!”

“질러라! 질러!”

그야말로 난장이었다. 고통의 음란함과 어지러운 춤사위. 이것이 무엇인가. 삶의 한 자락이다. 하늘에선 빗방울이 한두 방울 보이더니 밤공기의 후덥함을 젖히고 비가 내렸다. 후꾼 달아오른 땅을 촉촉이 적시고 있었다.

▸어룡정(御龍井) ; 왕궁을 만들 때는 왕실의 번영을 빌기 위해 우물을 판다. 이 우물은 정월 초하룻날 뚜껑을 열어 문무 대신들에게 신년맞이 ‘세수(歲水)’를 제공하고 다음해 정월이 올 때까지 닫아놓는다.

▸기우제(祈雨祭) ; 오래전의 기우제는 남녀의 성행위로 바람의 신을 흥분시키는 놀이였다.

▸구구법(九九法) ; <현녀경(玄女經)>에 나오는 아홉 가지 체위

▸황룡이라고 하지만 이 역시 옥으로 깎아 빚은 옥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