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지소태후가 만월궁에 그 같은 일을 꾸민 것은 진골정통을 내세우자는 것입니까. 그렇기에 왕자를 생산한 나도 한여름밤을 밝히던 개똥벌레처럼 가을의 찬바람이 몰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까?”

“왕후마마, 왕궁은 어느 누구도 믿어선 안 됩니다. 소인에게 의심이 많다지만 궁안은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리는 곳입니다. 대왕께오서 아직 서른이 되지 않은 팔팔한 연치십니다. 시문(詩文)을 좋아하는 세종 전군처럼 서책을 가까이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연의 경관을 마음에 담는 풍류남아도 아니잖습니까. 그런 분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색(色)’입니다. 한번 색의 그물에 빠져들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다는 걸 태후마마는 알고 계십니다. 그러하와···.”

“그래서 당신의 뜻을 관철시키려 왕자를 셋이나 생산한 나를 쫓아낸다는 것이오?”

“왕후마마, 사내들은 느실느실 움직이는 뱀과 같은 습성이 있습니다. 소인이 태후마마 앞에 똬리를 친 두 마리의 뱀을 갖다놓았을 때 왕후마마께선 두 마리의 뱀 중 암수를 구별할 수 있겠나이까?”

“글쎄요···. 그걸 어찌 구별하겠습니까.”

“두 마리의 뱀 중 무언가 지키려는 몸짓을 하는 쪽은 암컷이고 기회를 노리고 밖으로 나가려는 건 수컷입니다. 수컷은 쓸모없는 일에 바삐 움직이니 관형찰색(觀形察色)의 수련을 해온 의원들은 쉬이 알 수 있나이다. 암컷은 자신의 새끼를 보호하려는 본능이 큰 반면 수컷은 그런 게 부족하거나 없다는 점입니다. 그걸 태후마마는 이용하시겠지요.”

“하면, 어찌 되는 게요? 정작 나를 쫓아내려는 것이오?”

사도왕후는 가슴 속에서 무언가 ‘쾅!’하고 소리내며 부서지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사실이 그랬다. 당시 신라인들이 못난 사내들의 평점을 먹일 때 주색초(酒色草)라 했다. 주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술을 말하고 색은 치마 입은 여인네를 밝히는 것이며 초는 이상한 풀을 가까이 둔다는 말이다.

이상한 풀에 대해 현대인들은 담배가 아닐까 생각하지만 당시 귀족마을 인왕동의 흐름을 볼 때 약초(藥草)였을 것이다. 그 당시에도 돈냥이나 있는 사내들은 중원에서 들여온 책자를 넘겨가며 강정효과를 높이는 약초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곳에서 약초 뿌리를 거둔 땡초들은 이름을 알 수 없는 산나물 등속을 말려 그것을 가루 내어 정력에 뛰어난 비방이라고 떠들어댔다. 가끔 성 문 입구에 몰려들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아하하하, 여러분들도 들어서 아실 겝니다. 소인이 산 속에 다섯 해 동안 들어가 기화이초(奇花異草)를 채집하던 중 신선을 만나 처방했지 뭡니까. 이게 뭣이냐 하면 바로 ‘독계산(禿鷄散)’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도 궁금해 하시니 독계산에 대한 근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신라와는 달리, 찾아가기에도 길이 워낙 험하다는 촉군(蜀郡)의 지방관장 여경대(呂敬大)라는 분이 이 약을 오랫동안 복용하여 70세가 넘었지만 아들을 셋이나 낳았다는 희소식을 전합니다.”

사람이 모여들자 그는 낼름 혀를 내밀어 입술을 적시고 나서 뒷부분을 이어나갔다.

“이게 무슨 약이냐! 두 말할 것 없이 사내의 오로칠상(五勞七傷)을 치료하는 비방이라 그 말입니다. 사상자(蛇床子)를 비롯해 육종용(肉蓗蓉) · 오미자(五味子) · 토사자(兎絲子)를 섞어 그것을 분량에 맞추어 가루로 내어 이렇듯 드시기 좋게 만들었습니다.
이 약을 먹은 여경대라는 분은 일흔이 넘어 사내를 셋이나 낳았는데 그 바람에 그의 부인은 앉은뱅이가 됐지 뭡니까. 화가 나서 먹던 약을 마당에 던져버렸는데 때마침 놀고 있던 닭들이 이걸 쪼아먹고 장닭이 암탉을 올라타더니 머리가 벗겨지도록 쪼아대 대머리를 만들었다는 연고로 그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약을 먹을 때 아주 중요한 금기사항이 있습니다. 상대하는 여인이 없을 때는 절대 복용해선 안 되는 비방입니다.”

알듯 모를 듯 미묘한 웃음을 흘리게 하는 ‘독계산’의 설명에 사람들은 주머니에 든 돈들을 만지작거렸다. 약장수말처럼 ‘독계산’이 오로칠상에 효험이 있다면 속는 셈 치고 구해 볼 생각들이었다. 그들이 고개 들었을 때 약장수는 돼먹지 못한 시구들을 토하기 시작했다.

구비구비 유수경으로 뚫린 길(曲曲通幽境)

봉우리 사이의 갈라진 협곡이라(兩峰隔小溪)

물은 있어도 고기는 기를 수 없고(有水魚難養)

숲이 없는 데도 새는 절로 사네(無林鳥自棲)

아, 예쁘기만한 사방 한 치의 땅(可憐方寸地)

많은 사내가 그 얼마나 매혹됐던가(多少世人迷)

▸오로칠상(五勞七傷) ; 사내의 기력이 쇠해 일어나는 질병

▸남도(南桃) ; 중원에 있는 도원경을 북쪽이라 여기고 신라의 만월성에 만든 복숭아나무 정원을 남도라 하였다. 나중에 현재의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예전엔 남녀가 사랑을 나누고 그 정표로 부도나 검, 또는 반지 같은 것을 상대에게 줬는데 이 검도 그런 용도였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