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소태후가 미실을 궁으로 부른 것은 밤마다 찾아오는 꿈길도 문제였으나 월성(月城)에 떠도는 심상치 않은 소문이 한몫 단단히 했다. 태어날 때 칠색조(七色鳥)가 날아들었다는 아랫것들의 호들갑이 문제가 아니었다. 미실이 옥진궁주의 손녀딸이란 점에 있었다. 자신과는 달리 대원신통(大元神統)의 머릿돌이라는 그녀 때문에 아드님 삼맥종(三麥宗)이 보위에 오를 때 얼마나 숨 죽이며 애를 태웠던가.

옥진궁주를 총애한 법흥왕은 태자를 폐위시킬 준비를 했었다. 다행히 1세 풍월주 위화랑(魏花郞)의 반대로 일은 그 정도에서 끝났지만 잠을 이루지 못하고 불안에 떨었던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고 보면 원망과 분노의 그늘이 이미 드리워진 상태였다. 지소태후는 생각했다.

‘고것들은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아쉬워했겠지. 내 아드님에게 보위가 돌아오지 않았다면 제 놈들이 단단한 놈을 보위에 앉혔을 테니까. 다행히 월성의 신령이 나를 도와 지금에 이르렀으니 다행이긴 하나···, 내가 고것들을 믿지 못해 궁 안엔 얼씬도 못하게 했으나 소문이 고약하게 들리니 아예 고 요망한 것을 가까이 두고 지켜보아야겠다.’

미실에 대한 소문이 월성뿐 아니라 인왕동의 귀족 마을에도 칙칙한 진눈깨비처럼 뿌려대고 있으니 일단 불러올려 귀당비장(貴幢裨將) 사다함에게 던져줬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지소태후의 측근 중의 하나인 태후전 약사 사사(四四)는 가야정벌에 대해 이상한 거래가 있었다고 보고하지 않는가.

“태후마마, 신이 출정군 사령관 이사부(異斯夫) 장군의 측근에게 들은 얘깁니다. 가야정벌은 시기가 좋지 않아 우리 병력의 손실이 클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사온데, 갑자기 가야정벌군이 도성을 떠난 것은 이유가 있다는 귀띔이었나이다.”

“이유라니? 병력을 움직이는 건 대왕의 권한이거늘 무슨 이유가 있다는 게냐?”

“마마, 한 걸음 물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마마께서 태종(笞宗)을 총애한 탓에 세종 전군(殿君)마마가 태어났습니다. 비록 자식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으나 정벌군 사령관 이사부는 전군 마마의 생부십니다. 가야정벌을 여섯 달이나 앞당겨 공격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아무 이득 없이 가야정벌을 서두른 것은, 전군마마의 간곡한 부탁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아이가 뭣 때문에?”

사사는 얘기를 꺾지 않고 밀고 나갔다.

“태후마마께서 궁문수비의 직첩을 사다함에게 내린 데다 청조(靑鳥)를 주었지 않습니까. 소인이 그 점을 생각해 은밀히 인왕동의 평락전(平樂殿)으로 사람을 보내 알아보았더니···.”

“알아보았더니?”

“청조가 궁에 들어오기 하루 전에 전군마마의 청혼을 받았다 하옵니다.”

“흐음, 그러니까 옥진궁주는 세종의 청을 멀리하고 청조를 궁에 들여보냈다 그 말이냐? 그야 당연하지. 내 명을 어기면 어떤 일이 벌어질는지 그 늙은 것도 백 번은 더 생각했겠지.”

“하온데 태후마마, 떠도는 소문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사다함이 전장에서 공을 세우기보다 목숨을 잃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고, 그렇기에 가야정벌군이 떠나자마자 전군 마마에게 청조를 보낸 것이란 소문입니다.”

“나 역시 사다함이 월성에 돌아오지 못한다고 믿었단 말이냐? 그랬기에 사다함의 계집을 세종에게 보낸 것이구?”

“그러하옵니다. 이제 갓 혼인한 사다함을 전쟁터로 내몬 것은 청조를 얻기 위해 전군마마께서 이사부 장군을 찾아가 부탁드렸다는 소문입니다.”

“그것 참···. 그래 사사의 생각은 어떤고? 내가 어찌 처신해야 백성들의 입쌀에 오르내리지 않겠는고?”

“그것과는 별개의 얘깁니다만, 보명궁엔 마마께서 추려 뽑은 묘화(妙花)라는 궁인이 있사온데 요즘 왕후마마께서 그 아이를 가까이 두어 얘기가 많다고 합니다.”

“사도왕후가?”

“그것은 태후마마가 추진하고 있는 일과 관련있기 때문입니다. 지난번 대왕마마의 잠자리 시중으로 진골정통(眞骨正統)의 여인을 추려 뽑지 않았습니까. 마마께선 소인에게 말씀치 않으나 그 일은 왕후마마를 폐하시겠다는 뜻이 아니신지요?”

“계속하라.”

“왕후마마께오선 그 일에 대비책으로 궁인들을 자신의 전각으로 불러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라 봅니다.”

“대책이라···. 그럴지도 모르지. 허나 지금에야 그걸 알았다면 너무 늦었지. 이보게 사사, 그동안 대원신통의 계집들이 난장을 어찌 쳤는지 자넨 모르지 않겠지. 때가 이르기만 하면 제 세상을 만들려고 기를 쓴단 말이야. 청조의 할머니 옥진궁주가 그렇고  손녀딸 청조와 사도왕후가 그래. 나라의 중신들은 뭐라고 떠든지 아는가. 대왕의 연치가 그만 하니 나의 섭정을 거두라는 게야. 섭정을 거두면 제놈들 세상이 오리라 보겠지. 내 아드님이 장성했으니 당연히 섭정을 거둬야지. 허나, 그 이전에 할 일이 있어. 내명부에 대원신통의 혈맥을 송두리째 뽑아버리는 거야. 그 일을 끝내고 나서 대왕에게 옥새(玉璽)를 넘길 게야!”

▸위화랑(魏花郞) ; 1세 풍월주

▸사사(四四) ; 태후전각의 약사. 내명부 약사는 궁인들이나 후궁둘의 몸을 살피나 태후가 거처하는 전각에 머물며 직접 태후 한사람만의 건강을 살핀다.

▸태종(笞宗) ; 이사부(異斯夫)

▸정(鼎)은 발이 셋 달린 솥을 의미하지만 신라시대엔 도가의 의미로 사용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을 이루는 정(精) 기(氣) 신(神)을 인체의 삼보로 여기고 그걸 나타낸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