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시작을 발원(發源)이라 한다. 물은 정맥(山脈)과 동행을 하며 장강(長江)을 이루고 그 장강에 기대어 사는 삶들의 사연이 엮여 사초(史草)가 되고 역사도 된다. 한강과 낙동강은 태백에 근원을 두고 있다. 황지(黃池)에서 시작된 수원이 천삼백 리 낙동강이 되고 검룡소(沼)에서 시작된 수원은 한강의 발원지가 된다.

이 두곳의 용천은 불과 10킬로미터를 사이에 두고 백두대간의 허리춤인 태백에 숨어 있다. 그 위쪽 피재에 떨어진 빗물이 서로 흘러 한강이 되고 남으로 흘러 낙동강이 되며 북으로 흘러 오십천이 된다는 삼수령(三水嶺)이 있는 것도 특이한 일이 아니다.

태백(太白)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삼수의 근원이자 우리 민족의 시원인 단군이 개천(開天)을 한 땅, 태백산 정상 천제단에서 2008년 개천의 날을 맞는 제사와 한판 바둑이 펼쳐질 모양이다. 민족의 시원에 대한 엄숙하고 경건한 제의의 절차 속에 바둑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바둑이 우리 민족에게 오락의 차원을 넘어 민족의 역사와 함께 해온 기예(技藝)로 인정받아온 탓이다.

태백산을 몇번 가본 적이 있다. 태백이 민족의 성산이란 인식보다도 태백의 단단하고 튼실한 자태가 언제나 든든했다. 최남선은 안창호에게 태백산이란 장문의 시(詩)를 준 바 있다. 선생 스스로 존경하는 도산선생에게 바치는 시라는 겸손(?)을 담은 시편이다.

숭고하다. 그의 얼굴 광명이 돌고 / 헌양타 그 모습 위엄이 있다
하늘을 오르는 사다리 모양 / 가늠치는 못해도 그와 같을 듯
그 모습 볼 때마다 우리 이상은 / 빛나는 태양과 다투려 하고
그 풍신(風神) 마주한 마음은 / 하늘을 찌르듯 높아지도다.

최남선이 그린 태백산은 담박하고 웅혼하다. 특히 국가를 잃고 절치부심하던 시대를 살던 지성의 마음이야 오죽했을까. 최남선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지만 그가 바둑인이었다는 것은 잘 모르는 듯하다. 최남선은 바둑을 아주 좋아했다. 그의 저서 '조선상식'에 밝힌 '한국바둑사'는 아직까지도 유용하다. 바둑을 운운하며 삼국사기니 고려사니 당서니 하는 말들은 최남선이 이미 말한 것이다.

최남선은 우리의 바둑사를 정리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아예 '기보'라는 바둑책을 편저자로 출판까지 한다. 1914년의 일이다.
얼마전 경희대 최상식 교수의 이름으로 '조선상식'이 다시 출판되었다. 최남선의 조선상식을 재출간한 것이다. 그런데 그 책 속에 놀랍게도 바둑 부분만 쏙 빠져 있었다. 같은 최씨(?)끼리 이래도 되나 싶었다. 이것이 바둑의 현실이다.

금년의 태백산 정상에는 이창호 유창혁의 상산대국이 벌어질 모양이다. 상산사호에 의미를 두던 역사가 있는지라 뜻깊은 생각이 든다. 부디 두 분 좋은 기보를 남기고 내년에도 국태민안하기를 빌어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