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1.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의 비밀

2. 기성유수고송관도인(碁聲有水古松館道人)

3. 화기계(畵碁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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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사람들은 그림을 보는것(觀)보다는 읽는것(讀)으로 인식했다. 추사가 그 유명한 '세한도'를 선물로 보내오자 작품을 받은 '이언적'이 엎드려 그림을 읽은 바 눈물이 앞을 가린다(伏而讀之不覺悌之淚交)라 했다. 이것은 글씨와 그림은 하나다(書畵一律)라는 동양의 서화관이 글씨와 그림 안에서 '서권기문자향(書券氣文字香)'을 강조한 것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서화(書畵)에 금기(琴碁)가 첨가되면 금상첨화다. 김홍도가 독보적인 화력(畵力) 외에도 시와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나름대로 삼절(三絶)의 경지로 평가되는 이유도 한가지 재능만으로는 예인이나 가인(佳人) 대접을 받기 힘들던 시대의 요청(?)이 있던 탓이다.

김홍도는 시에도 강점이 있었지만 거문고 피리 등의 연주에도 뛰어난 인물이었다. 절대의 화가 김홍도의 예인기질은 '금기서화'라는 동양선비들이 갖추어야할 교양의 덕목에서도 탁발함을 보여준다. 필자는 수년전부터 바둑의 역사인식을 탐문하면서 '시각적인 바둑사'의 도출을 궁리하면서 김홍도의 그림 한점 앞에서 충격을 받았다. (마상청앵도 참고. 자료1)

이 그림은 말 위에서 듣는 꾀꼬리 소리라는 제목이 붙여진 김홍도가 연대 미상에 그린 작품으로 간송미술관 소장품이다. 그림은 나귀를 타고 가던 한 선비가 고개를 돌려 나무 위에 앉아 있는 꾀꼬리를 바라보는 모습으로 지극히 단순한 구도다. 그러나 이 구도 속에 고즈넉한 사위(四圍)와 늘어진 버드나무, 나른한 나귀와 은근하고 기품이 있는 선비의 모습은 절로 춘곤증을 느끼게 하는 이흥감동(以興感動)이 강렬한 수작이다. 특히 그림 속의 화제(畵題)로 쓰인 시는 김홍도가 왜 시인인지를 잘 보여준다.

가인이 꽃 아래에서 생황을 불기에

선비는 술상 위에 한쌍의 귤을 올려놓아 화답하지.

어지러운 세상도 술잔 위의 버드나무 가지마냥 아련하고

비안개 끌어다가 봄강가에 고운 천을 짠다네.

(佳人花底篁千古/韻士樽前柑一雙/歷亂金梭楊柳崖/惹烟利雨織春江)

시는 그림과 잘 어울려 시대에 고민하는 선비의 내면을 잘 구현한다. 정돈된 김홍도의 사유를 잘 보여주는 화력(畵力)과 문력(文力)이라 하겠다. 그러나 정작 이 그림에서 필자가 놀란 것은 시화(詩畵)의 매치가 아니라 사족(蛇足)으로 붙은 글씨 때문이다.

기성유수고송관도인문욱증(碁聲有水古松館道人文郁證).

문욱(文郁)이 (김홍도)의 작품임을 증명한다는 정도의 뜻인 이 글은 문욱(文郁) 이인문(李寅文1745-1821)의 글씨로 자신의 호를 '바둑두는 소리 들리는 숲속의 주인'이란 의미에 필자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기성유수고송관'은 '소식'의 시 '백학관'의 한 구절로, 문인 '소식'의 자화상 같은 구절로 세상의 진퇴를 항상 걱정하던 동양선비의 귀거래사다.

필자는 이 글을 보고 화가 이인문의 내력을 들추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김홍도와 동년배로 당대에 김홍도와 비견되는 '거장'임을 금방 파악하고 또한번 놀랐다. 이인문의 연구는 미술사학자 '오주석'이 발군이었다. 오주석은 이인문의 대작품 '강산무진도'를 '조선후기 최대의 걸작의 하나로 세계 회화사에 빛나는 문화유산이다'라 평했다.

김홍도 신윤복 최북 등을 최고(?)의 화원으로 알고 있던 필자는 오주석의 안내를 받아 조금 더 이인문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이인문은 '기성유수고송관도인'이란 호를 쓰면서 동시에 '고송유수관도인'이란 호를 자신의 그림 다수에 사용하고 있었다. 오주석은 이인문이 이 두개의 호를 쓰게 된 이유를 이백의 시 '고송'에서, 그리고 좌전에 출몰하는 유수'에서, 그리고 기성(碁聲)은 '백아'의 고사인 풍류관에서 따온 것이다 밝히고 있었다.

오주석이 고전을 탐문하는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소식의 '백학관'을 언급치 않은 점은 불가사의다. 아마 경황중이었거나 아니면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고 외면한 탓인 듯하다.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한 시대의 독보적 경지로 손꼽히는 미술사학자가 '백학관기'의 한 구절을 몰랐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필자는 이 대목에서 이 글을 쓸 필요를 느꼈다.

(다음편, 기성유수고성관도인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