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기류가 몰아치자 청조는 환정보뇌(還精補腦)의 방법으로 들어갔다. 이것은 남녀가 합궁을 한 다음 극도의 흥분으로 사정하려 할 때 급히 왼손 중지와 인지로 음랑 뒤쪽의 항문 앞부분을 눌러주는 걸 말한다. 이러한 비법에 대해 옥진은 귀엣말로 소곤거렸었다.

“청조(靑鳥)야, 이것은 색사(色事)의 고급 수법이다. 설령 대왕이라도 처음 대하는 분에겐 사용하지 않아야 하며 최소한 6개월 동안의 인연이 있어야만 사용할 것이다. 너의 왼쪽 팔뚝에 두른 금사슬로 사내의 힘을 막아버리는 기술은 그때 사용해야 좋은 씨를 받을 것이다.”

이것은 조루(早漏)를 예방하는 비방이었기에 옥진은 몇 번이나 당부하는 걸 잊지 않았다. 그러나 이 수법은 진(陳)나라에 밀파한 고승대덕이 신라로 돌아오면서 <비밀의궤(秘密儀軌)>란 밀교의 비밀상자를 만들게 된다. 남자가 사정할 즈음 숨을 길게 내쉬며 입을 다물면 씨는 배출되지 않고 온 몸을 돌아 뇌 속으로 흘러드는 환정보뇌를 좌도밀교(左道密敎)에서는 ‘영사란(靈蛇卵)’이라 불렀다.

색공지신이 사용하는 비밀의궤에 비장된 것은 주로 이런 것들이었다. <선경(仙經)>에 의하면 환정보뇌의 방법으로 하루 두 번씩 교합하되 1년에 네 번 정도 사정 하는 자제력을 가지면 200세의 수명을 혈색 좋게 누릴 수 있다고 했다. 색사로 인한 피로감에 젖어들 무렵, 저 멀리 성문 밖에서 닭울음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오고 있었다. 사다함은 멀지 않은 곳에서 자신을 부르는 사내 목소리를 꿈결처럼 들으며 단잠 속으로 미끄러졌다.

비가 오고 있었다. 주련(柱聯)에 쓰인 ‘춘풍세우적(春風細雨寂)’이란 말에 걸맞게 봄 바람을 타고 내리는 빗소리가 한결 조용하다. 가끔은 빗질하듯 쏟아지는 봄비의 응석맞이에, 늦잠을 즐기던 앵두나무가 화들짝 깨어나 온 몸을 털어내면 은밀한 곳에 숨어 있던 물방울들은 와르르 봄 잔디 위로 성급하게 달아났다.

좌측 거처의 묘화(妙火)는 부스스 눈을 뜨며 꿈길처럼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사다함 공! 사다함 공!”

목소리는 굵고 소리의 파장은 길었다. 저런 나이라면 좋이 서른은 됐을 것이라 생각하며 가만히 머리를 흔들었다. 이런 시간에 풍류주(風流主)의 이름을 거침없이 부를 수 있는 존재는 많지 않았다. 혹시 세상에 떠도는 얘기처럼 격검(擊劍)과 춤(舞蹈)에 능하다는 무관랑(武官郞)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그는 전방봉사랑(前方奉事郞)으로 좌삼부 보다 우삼부 쪽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도 한때는 좌삼부에 속해 동도(童徒)와 평도(平徒)들의 검술지도를 세련되게 해치운 탓에 도의(道義) · 문사(文事)는 제쳐두고 무사(武事) 일에 신명을 바쳤지 않은가. 사다함이 궁에 들어가 성문을 지키는 귀당비장(貴幢裨將)이 되자 그는 우삼부로 옮겨 현묘(玄妙)를 담당했다.

묘화가 보명궁에 들어오게 된 것은 감독관으로 나선 무관랑이 좋은 점수를 준 탓이었지만, 신라의 내정을 볼 때 이것은 기막힌 우연이었다. 본래의 감독관이 자리를 지키지 못한 탓에 전방봉사랑에 불과한 무관랑 차례가 된 것이다. 악기는 가야(伽倻)에서 신라로 몸을 피한 우륵의 가야금 음악과 춤사위였다.

지소태후는 유난히 가야국 정벌에 힘을 기울여 거침없는 공격을 요구했다. 무너질듯 흔들리면서도 가야국은 그런대로 건재한 상태였다. 가실왕(嘉悉王)의 명으로 가야금을 만들어 율려(律呂)를 본 따 곡을 짓던 우륵(于勒)은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악기를 들고 신라에 투항했다.

거칠부를 따라 전쟁에 나선 무관랑은 노래와 춤을 배웠는데 그 방면에 기예가 뛰어나 만만찮은 실력이었다. 한 번도 내세워 자랑한 적이 없었지만 사다함은 그의 재능을 진즉부터 눈여겨보았다. 그러나 묘화의 입장은 달랐다. 대대로 흙을 짓이겨 물건을 만드는 도공(陶工) 집안이다 보니 누군가 궁에 들어가 공방(工房) 한자리를 차지한다면 집안을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에 딸아이에게 춤을 가르쳤다.

하늘의 도우심이 있었던 덕인지 묘화의 춤사위는 장원했고 그녀는 눈이 잘 보이지 않던 어미가 만든 공방살(空房煞) 도자기의 보급 효과를 노리게 됐다. 그렇다보니 왕족과 대신들을 색공하겠다는 생각은 애당초 없었던 그녀로서는 자신을 궁에 들어가게 한 무관랑(武官郞)을 만나 춤추는 흙 인형이라도 만들어 볼 생각이었으나 아직까지 기회를 얻지 못 했었다.

그런데 첫새벽의 닭울음소리와 함께 덩그마니 서 있는 앵두나무가 있는 쪽에서 사다함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창문을 열고 내다보았지만 사람 그림자는 찾을 수 없었으나 미실의 거처가 밝아지며 분주함이 일어나고 있었다.

진흥왕의 명이었지만 기실은 가야국 정벌에 대한 지소태후의 엄명이었다. 다시 이사부를 앞세워 가야국 정벌에 나선 진흥왕22년의 이날, 정들자 이별이란 말처럼 미실은 풍랑가(風浪歌)를 부르며  사다함을 전송했다.

바람이 불되 임 앞에 불지 말고

물결이 치되 임 앞에 치지 말고

어서 어서 돌아오라

다시 만나 안고 보고

아아, 임이여!

잡은 손을 차마 뿌리치려오

가야와의 국경이었던 곳에 이르자 사다함은 원수 이사부 앞으로 나아가자 그의 곁엔 신분이 낮은 듬직한 친구 무관랑(武官郞)이 따랐다.

“병사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서는 저와 같은 소년들의 용기를 앞세우는 게 좋으리라 봅니다. 장군, 저희가 선봉에 서겠으니 장군께서는 휘하 병력을 지원해 주십시오. 저희들 만으로는 숫자가 너무 적습니다.”

무엇보다 승리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출정군 장수에겐 그의 주장은 인정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정예부대의 상당수가 합류하자 병력은 5천 명으로 불어났다. 공격을 알리는 북소리와 함께 사다함의 선봉대는 단숨에 가야의 요충인 전단성(栴檀城)의 성문을 깨뜨렸다. 이것은 가야국이 종말을 뜻하는 신호탄이었다.

▸영사란(靈蛇卵) ; 사내의 고환을 뱀의 알이라고 칭했다.

▸동도(童徒) ; 13~14세의 낭도

▸평도(平徒) ; 18~19세의 낭도

▸현묘(玄妙) ; 춤과 음악

▸전단성(栴檀城) ; 상대방과 대치하고 있는 마지막 바리케이트를 친 성문

▸공병식은, 전쟁에 나갔지만 크고 작은 공사에 명을 받았기에 보는 것처럼 칼이 작고  휴대가 간편해 즉시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