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질이 찾아낸 ‘삶을 도모하는 수'를 본 청허 노인은 바둑알을 통 안에 쓸어 담더니 미소를 머금은 채 속내를 털어놓았다.

“한때는 자네처럼 방랑의 길을 서슴지 않았네만 우연히 이곳에서 딸 아이의 죽은 어미를 만나 가정을 이뤄 지금껏 지내왔네. 어떤가, 자네와의 내기 바둑이 아니었어도 그런 부탁을 하고 싶었네. 내 이미 나이가 고희에 이르렀으니 딸 아이의 장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네. 자네가 맡아 줄 수 있겠는가.”

왕질 또한 3년 가량 이집에 있다 보니 정이 들대로 든 터수여서 노인의 청을 즐겁게 받아들였다. 이럭저럭 다섯 해가 지나가고 슬하에 두 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비록 화전(火田)을 일구고 나무를 베어 숯을 굽고 살았지만 왕질은 세 살박이 어린애처럼 즐거운 눈빛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산중에 들어와 도끼질을 하고 있는데 멀지않은 곳에서 백록(白鹿) 한 마리가 오도카니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반드시 그것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으나 이미 왕질의 걸음은 그것을 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