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신이 지은 <설문해자>에 의하면 달기가 살았던 소부락의 소(蘇)는 ‘회생할 소’ 또는 ‘깨어날 소’란 뜻의 사이부생(死而復生)이란 뜻풀이를 갖는다. 다시 살아난다(蘇活)는 의미다.

‘차조기 소’로 알려진 이 글자는 초부(艸部)에 생선(魚)과 벼(禾)가 합해진 글자로, 번화가에 버티고 선 나라가 아니라 생선과 벼가 자라는 변방의 나라란 뜻이다. 그 나라가 달기로 인해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니 계략이 성공했다는 의미다.

상은왕조(商殷王朝)가 무너지자 중신들과 그 후손들은 자신들이 살만한 곳을 찾아 민족의 대이동을 서둘렀다. 그렇다면 이 당시 상은왕조의 후예들은 배를 타고 신라 땅에 도달했을까? 그건 아니다. 일부는 그럴 수 있을지 모르나 중신들은 자신들이 살았던 머지않은 장소에서 터를 내렸을 것이다. 주(周)부락의 힘이 미치지 않은 지역에 굳건히 말뚝을 치고 나라를 열었다.

미실이 왕실에 들어와 비밀의 궤짝인 <비밀의궤>를 구경했을 때 이해할 수 없는 물건에 의심을 가졌지만 대수롭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사사는 중원 역사에 관해 심상치 않은 의혹을 제시하고 나섰다.

“소인이 팥죽 끓듯 뒤바뀌는 중원 역사에 관심을 가진 건 모두가 궁주님의 배려로 이뤄진 것입니다만 녹슨 쇳조각이 뜻하는 게 뭔지를 몰라 허둥댄 건 사실입니다. 하온대 어느 날엔가 <장량소서(張良素書)>를 읽다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장량. 자가 자방(子房)이다. 일찍이 비교의 다리위에서 황석공을 만나 <소서(素書)>를 얻은 후 여러 해 동안 은밀한 곳에 칩거해 진(秦)의 시황제를 살해하려 암중모색했다. 사사는 그 동안 <무경칠서>를 읽으며 장량과 그가 쓴 <소서>가 중원의 병략서완 다른 점을 깨달았다.

제세안민(濟世安民)의 민중 중심인 그 책은 황제우위론과 궤도술로 짜인 중원의 병략서와는 내용이 판이했다. 초패왕 항우의 그늘에 있으면서 그는 항우가 <소서>의 내용과 부합되지 않은 인물이라고 느꼈었다.

천하에 다시없는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자신의 위세를 나타내는 데 사용했다. 이런 이유로 장량은 항우를 떠나 유방의 진영으로 옮겨왔다. 항우와 달리 유방은 인후자애함이 있었다. 그는 언제나 장자방의 충언을 받아들였다.

어디 그뿐인가. 그가 살았던 고향마을에선 여자라면 사족을 못썼었는데 전리품으로 걷어들인 여인들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것은 대단한 인내심이자 용기였다. 이것이 대업(大業)을 이루게 된 성공의 첫걸음이었다.

인후자애(仁厚慈愛). 이 말은 중원의 제왕학에는 없는 말이었다. 설령 있다고 해도 제왕우위론을 주장하는 중원의 제왕들에겐 쓸모없는 말들이었다. 유방이 장자방의 충언을 받아들인 것은 그의 계책이 백만대군을 호령하는 한신처럼 도검을 휘두르지 않고도 따뜻한 햇볕처럼 백성들이 따라올 수 있게 만들었다.

역사는 꿈꾸는 자의 것이라 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거기엔 인후자애가 깃들어야 제 몫을 하게 된다. 그 점이 없고서는 지속될 수 없다는 걸 유방은 알았다. 그렇기에 장자방의 계책을 받아들여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룬 것이다.

장자방은 항상 겸손했다. 한신처럼 쉬 틀어지거나 궤도술을 쓰지도 않았고 불평하거나 불만도 갖지 않았다. 그에게는 자신에게 주어진 천하통일과 백성들의 안민이 전부였다. 그래서인지 유방의 뒤를 이어 황태자 유영이 서한 왕조의 2대 황제가 되자 스스럼없이 궁을 나와 고조선(古朝鮮)의 옛 땅으로 들어가버렸다.

장량이 꿈꾸었던 홍익인간과 무위순화의 나라. 온 백성이 욕심을 부리지 않고 비록 움집이나 수혈에 살더라도 기만과 궤도술로 상대를 속이지 않고 고루 평안을 누리는 고조선 옛 땅을 찾은 것이다. 장량은 그곳에서 고조선 문화의 우월성과 중화문화의 속빈 허장성세를 발견했다. 이러한 장량에 대해 사사는 그에 대해 느낀 점을 간략히 약술해 놓았다.

<···내가 감히 장자방을 정의인사라 규정짓는 것은 그가 중화인이라 하더라도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험한 사실들을 기록으로 남겼다는 점이다. 그는 후대의 병략가들에게 <소서>를 전하지 않고 자신의 주검과 무덤 속에 묻은 채 저승길로 가져 갔는가. 왜 그는 공자라 해도 이 <소서>만 못하다고 했는가.>

알듯 모를 듯 사사가 만지작거린 이 말들은 나름대로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 유교 경전 중 <역경(易經)>은 가장 나중에 채택된 것이다.

왕도정치를 구현하려 공자가 열국을 돌아다닐 때 <역경>은 항상 뒷전으로 밀려났다. 어찌 보면 당시엔 이런 책에 주석을 붙일 수 있는 지에 의문을 갖게 한다. 지금은 어떤가? 유교경전을 얘기하면 항상 앞자리에 등장한다.

그 이유는 당시 고조선 문화의 유입이 늦었거나 설령 전해졌다 해도 그에 대한 마땅한 연구나 주석을 붙일 석학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당시 중화문화의 사가(史家)들은 고조선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들이 네세우는 ‘하도’나 ‘낙서’를 위주로 귀갑(龜甲)을 던져 점복술에만 응용했을 뿐 체계적으로 연구하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율력법(律曆法)>을 몰랐기 때문이다.

▲장량은 <소서>를 자신의 무덤 속에 묻어버렸는데 발견된 것은 송나라 때로 그의 후손에 의해서이다. 괴이한 것은 그의 무덤에서 발견된 글에 ‘요순우문무왕(堯舜禹文武王)은 전설이라는 내용이다.

▲궤도술(詭道術) ; 상대가 나를 속일 때 그것을 이용해 상대방을 다시 속이는 수법

▲율력법 ; 고조선에서 사용한 율력을 헤아리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