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실이 예전에 보았던 건 신라(新羅)란 지명이 한반도가 아닌 중원이었다. 해묵은 서책의 어딘가엔 그런 내용이 있었다. 신라는 한반도 안의 작고 편협한 나라가 아니라 중원의 여러 나라를 이끌던 강력한 제국(帝國)이란 표현이었다. 지금으로선 그곳이 어디인지를 지적해 낼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여러 나라를 거느린 제국이었다’는 점이다.

제국(帝國). 적어도 이 말을 쓰려면 많은 병력을 움직일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있어야 했다. 작고 좁은 나라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사사가 건네 준 이상한 형태의 쇠붙이는 처음 보는 것이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낯이 익어 뵈는 물건이었다.

‘나 역시 이런 물건을 예전에 본 적 있다. 그때는 하찮게 여겼지만 아주 오래 전에 중원에선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는 일이 있었다. 이 물건은 비밀의 궤짝에서 나오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이 형태로 쇠붙이가 이뤄진 것으로 보면 신라의 국호나 창립연대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미실이 생각한 신라(新羅). 그 신라는 어떤 나라인가?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발을 딛고 산 나라에 대해 명확한 인식을 지니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나라 명칭이 여러 개의 국호(國號)로 불렸기 때문이리라.

미실은 문헌에 나타난 기록을 생각해 보았다. 명칭은 서라벌(徐羅伐), 서나벌(徐那伐), 서야벌(徐耶伐), 사라(斯羅), 사로(斯盧), 신라(新羅), 신량(新良), 신로(新盧), 시라(尸羅), 서벌(徐伐), 계림(鷄林), 계귀(鷄貴), 구구타예설라(矩矩吒-說羅) 등을 들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사사도 상당한 연구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랬기 때문에 그 자신이 의아스럽게 생각한 부분을 내놓았다.

“궁주님, 소인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궁주님이 의아롭게 생각하시는 신라(新羅)와 신로(新盧), 시라(尸羅)의 경우 한자의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지 않고 있다고 보옵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거론하겠습니다만, 만약 한자의 음을 중시할 때엔 새로울 신(新)과 시체 시(尸)의 의미가 같다고 봐야 하며 벌일 라(羅)와 화로 로(盧)가 같다고 봐야 합니다.”

“그건 뭣 때문인가요?”

“겉으로 보기엔 이렇듯 다양한 한자가 혼용돼 신라의 국호를 나타낸 것은 신라어의 특정 발음 때문으로도 보고, 발음에 대해 제각각의 한자가 부여된 결과로 보여집니다.”

“으음.”

이러한 신라 국호가 나중엔 ‘신라’라는 단일 명칭으로 통일돼 사용된다. 그것은 6세기 때의 일이다. 여기서 잠깐 훗날의 기록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이다.

<삼국사기> 권4 ‘지증왕 본기’엔, 지증왕 4년(503)에 국호의 혼란을 없애기 위해 신라라는 국호를 채택하면서 거기에 덕업일신 · 망라사방의 의미를 부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가하면 <삼국유사> 권1 왕력(王曆) 편엔,

기립왕 때인 서기 307년에 덕업일신 · 망라사방의 의미를 담아 신라 국호를 채택했다고 기록돼 있다. 사료로 볼 때 이곳에서 두 가지를 추출할 수 있다.

첫째는 처음엔 다양한 국호가 병용되다가 307년 혹은 503년에 신라라는 표현으로 통일되었다는 점이다.

둘째는 신라 국호를 채택하면서 거기에 덕업일신 · 망라사방의 의미를 부여했다는 점이다. 

신라 국호의 세 번째 의미는 덕업일신 · 망라사방이정답인가 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신라의 국호가 여러 가지 발음으로 파생되면서 그 발음 각각의 과정에 그럴듯한 의미가 사후적으로 부여된 것이다.

그렇다면 훗날의 언어학자들은 신라 국호에 담긴 원래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학자들은 여러 명칭 가운데 어떤 게 진짜 발음이었는지를 찾은 후에 그 발음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규명하여 의미를 밝혀내려 한 것이다.

그러기에 <신라의 명의>란 글을 쓴 전몽수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신라의 원래 발음은 ‘서라벌’이다. 이것은 ‘실애벌’로 그 의미는 곡천원(谷川原)이다. 곡천원은 ‘산골짜기의 나라’라는 의미다.”

이렇게 보면 ‘신라’는 처음부터 대단한 뜻을 내포한 것이라곤 보기가 힘들다. ‘산골짜기의 나라’란 말에 신라 왕실은 동의한 것일까? 미실이 살았던 그때에도 그들은 그렇게 생각한 것일까? 자신들이 골짜기에 있는 조그만 나라라고 인식했다면 신국(神國)이란 거창한 표현을 쓸 수 있었을까.

아귀가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뒤집어 보아야 한다. 신라가 작고 좁은 산골짜기의 나라가 아니었다면 누군가가 잘못 표현했거나 거짓으로 우겼다는 점이다. 거짓이라면 무엇 때문인지 그것을 밝혀내야 한다.

▲비밀의궤(秘密儀軌) ; 비밀의 궤짝 안에 들어있는 신라의 왕실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