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작(細作)들이 보내온 비밀 전문을 읽은 강여상은 마침내 때가 왔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공격의 포인트가 찍히자 희발은 모든 군사력을 총동원해 대공세를 폈다.

기원전 12세기 70년대. 기원전 1122년 주부락을 위시한 각 부락의 연합군 4만5천명이 전차 4천대를 이끌고 맹진(孟津)에서 황하를 건너 상왕조의 수도 조가(朝歌)를 향해 진격했다. 마침내 양군은 목야(牧野)에서 대치했다.

결전이 벌어질 찰나 뜻밖에 상정부의 선봉대가 반란을 일으켜 자수신의 어림군(御林軍)을 공격했다. 어림군은 허장성세만 나타내는 허수아비 병력이다. 전시용 도구에 불과한 병력은 순식간에 무너지자 자수신은 그제야 깨달았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뼛속 깊이 미워한 사실을 안 것이다.

이 순간에도 그는 악질적인 근성을 발휘했다. 혈세를 거두어 마련한 수많은 금은보화가 있는 녹대의 적성루(摘星樓)로 달려가 기름 뿌리고 불을 질렀다. 그의 이기적인 생각으론 자신이 소유하지 못할 물건이라면 결코 남에게 내어주지 않겠다는 속셈이었다. 자수신은 불길에 뛰어들어 목숨을 버렸다. 그러면 소달기는 어찌 됐는가?

그녀는 자살 같은 소극적인 방법은 취하지 않는다. 절세적인 용모를 이용해 앞으로도 얼마든지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여 스스로를 믿었다.

그러나 원통하고 애석하게도 그녀가 만난 상대는 젊고 준수해 정력이 남아도는 쪽이 아니었다. 이미 저승의 아래층에 올라와 있는 극락왕생을 눈앞에 둔 노인이었다.

연합군사령관 강여상은 이미 90대였다. 비극의 연령이다. 이 나이는 죽을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아무리 탄력있고 아름다운 여인을 품에 넣어주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은 육신의 시간대이자 안타까운 연령이다. 그렇다보니 소달기로선 희망을 접고 자신의 몸이 목과 분리되는 것만을 기다릴밖에 없었다.

민간전설에 의하면 밧줄에 묶인 소달기가 형장으로 끌려갈 때 울음을 터뜨린 모습은 한 송이 배꽃(梨花)이 봄비에 흠뻑 맞은 것 같고 형장에 있는 망나니들은 목이 잘릴 죄인이 이토록 예쁠 줄 상상밖의 일이라 혼이 달아날 정도여서 칼을 들어올릴 수 없었다고 한다.

강여상은 보고를 받고 사형을 집행하기 위해 형장으로 달려갔으나 소달기의 현란한 미모에 눈이 부셔 목표물을 정확히 겨냥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보질 않으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거야.’

이러한 원리를 생각해 머리를 가린 후 목을 벴다. 그녀의 죽음을 애닯게 여기는 수많은 시를 사람들이 읊었는데 그 중 한 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달기의 아름다움 만인의 연민을 받았다네

그 가련함 얼마나 깊었으면

형장의 망나니도 눈물 흘렸을까

복숭아꽃이 이에 비교될까

작약꽃이 이에 견줄 수 있으리?

옛날 그녀가 덮은 이불엔 아직도 그녀의 체향이 있는데

이제 그녀의 아릿따운 몸매 간 곳이 없으니

슬프다, 가인이여! 그 한을 어찌 풀려나!

죽는 것도 억울한데 머리까지 걸리다니

기가묘무(奇歌妙舞) 어디 가고 비구름만 맴도는가?

이 한, 이 원 풀길없어 해돋이지 않는구나

기원전 18세기 30년대인 기원전 1766년 상부락 추장 자천을은 망국의 군주 부부 사이계와 시매희를 소호를 추방했을 뿐 그들의 목은 베지 않았다. 그러나 기원전 12세기 70년대인 기원전 1122년 주부락(周部落)의 추장 희발은 망국의 군주 부부 자수신과 소달기에게 인정을 베풀지 않고 사형에 처했다.

상고시대의 농업사회에서 이 두 가지 사건은 불과 6백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는데도 많은 변화가 있다는 것은 당시의 정치투쟁이나 지금이나 얼마나 참혹한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상왕조가 기원전 1122년에 끝장나고 자수신이 스스로 불에 타죽고 소달기의 목이 잘린 건 대다수 점성가들이 인과응보로 여겼다. 하늘은 그 어떤 사람에게든 항상 좋은 점, 항상 좋은 것만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권을 잡은 이들은 자신의 시대는 끊임없이 똑딱이는 디지털시계처럼 영원하리라 믿는다. 이것처럼 불쌍하고 어리석은 게 없다.

우리 인생은 디지털이 아닌 모래시계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길에서 하나씩 저지른 죄악, 그게 세상이든 개인이든 모래시계처럼 남긴 잔흔은 결코 인간의 힘으로 지워지지 않고 그 후손에게 미친다. 일시적으로 즐겁고 잘 된 것 같은 것들은 자신이 누렸던 희락의 10배, 아니 100배의 중량으로 죄업의 고통 속에 떨어져 몸부림치며 괴로워한다.

그래도 그들은 적당한 핑곗거리를 찾아 안도한다. 사람은 죽음으로써 그 죄도 사라진다고 믿기에 정권을 잡은 이들은 흥미로운 코미디를 연출한다.

“다시는 이 땅에 나와 같은 불행한 정치가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조가(朝歌) ; 상왕조의 수도로 하남 기현에 있다.

▲어림군 ; 왕을 호위하는 군대

▲목야(牧野) ; 하남 급현의 남서쪽에 있는 교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