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소리가 느릿하게 울리자 김순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계는 12시 10분 전을 가리켰다. 그녀는 대충 머리를 매만지고서야 탁원제를 돌아보았다.

“행사장엔 일본에서 온 손님들을 비롯해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참석했을 거예요.”

“행사장은 어딥니까?”

“비봉루(飛鳳樓)예요. 이번 행사를 위해 옛 건물을 헐어버리고 새롭게 단장했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녀는 준비가 다된 듯 앞장섰다.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동쪽 방향으로 난 좁은 길을 타고 올라갔다. 여전히 북소리가 새벽을 흔들어 깨웠다.

“신도원은 저녁 10시가 되면 통행이 금지되거든요. 곳곳에 공사가 진행 중이므로 위험하다는 표지판을 붙였지만, 전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신도교가 시중에 떠도는 종교단체들을 규합하려는 움직임도 있대잖아요. 그렇게 보면 이곳은 비밀에 쌓인 덩어리죠. 저녁 10시만 되면 이런 저런 이유를 붙여 통행을 금지시키죠. 해제되는 건 다음날 첫닭 우는 시각이구요.”

이것은 조선 시대의 인정(人定)과 파루(罷樓)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인정은 매일 밤 저녁 10시에 스물여덟 번의 종을 쳐 통행금지를 알린다. 태조 이성계가 개국한 후 한양에 도읍지를 정하고, 정도전이 도성을 쌓고 사대문과 사소문의 8문을 낸 후 종루에서 치는 종소리에 맞춰 문을 여닫게 하였다.

인정은 천지의 일월성신인 28수(宿)에 고하기 위해 스물여덟 번을 치고, 파루는 서른세 번의 쇠북을 쳐 제석천(帝釋天)이 이끄는 하늘의 삼십삼천(天)에 고해 그날 하루의 국태민안을 기원했다.

인정이 울리면 도성의 여덟 대문이 닫히며 통행이 금지된다. 인정이 울린 후 통행하다 적발되면 경수소(警守所)에 구금되어 어긴 시각에 따라 10도(度)에서 30도의 곤장을 맞는다. 이러한 제도를 신도원에서는 그대로 답습해 시행 중이었다. 그러나 ‘교명고천제’를 올리는 이날만은 자정 이후 통행이 자유롭게 허락되었다. 그런 점에서 쇠북 치는 소리가 길게 이어진 것이라 짐작했다.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장소는 신도원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제를 올리기 위한 사전 준비를 해온 탓인지 제단이며 주위의 조경은 무척 빼어났다. 김순옥이 속삭였다.

“각계각층에서 보내온 화환은 이곳까진 가져오지 않았답니다. 화환을 보낸 것만으로 그분들을 신도라 볼 수는 없겠지만. 그런 것들이 놓임으로써 신도교의 위상은 높아질 게 뻔하잖아요. 아니, 어떤 분은 신도교와 유착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도 들었어요. 물론 이유는 자금 확보에 있지만요.”

부족한 자금을 종교 단체에서 얻는다. 그것은 매우 간단한 것 같지만 깊이 들어가면 마약과 같은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위정자가 모를 리 없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제단 앞쪽에 다다르자 생각했던 대로 그곳에는 일본에서 온 경제인들을 비롯하여 정부 여당의 중진 의원 몇 사람이 눈에 띄었다. 북이 울리자 버선목을 뒤집은 듯한 모자를 쓴 제관이 제단으로 올라갔다. 제관(祭官)이 층계를 오르자 아래쪽 군중이 있는 곳에서 장중한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우리 신도교가 하늘에 ‘교명고천제’를 올리게 됐습니다. 천지 일월성신에게 이처럼 경사스러운 일을 고하고, 천신의 뜻이 어디 있는질 직접 여러분에게 확인시켜 드리겠습니다.”

느릿하게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문이 낭독되고 뒤이어 축문이 이어지자 탁원제가 속삭였다.

“신도교의 교주나 종사에 대해선 특별한 언급이 없네요.”

“그들은 허수아빌 거예요. 대외적인 일들은 총령이 맡고, 신도원에서의 일은 교령과 호법이 주관하기 때문에 교주는 힘이 없어요. 일테면 유령 회사의 바지사장이죠.

탁기자님, 잠깐이라도 [신도경]을 본 일이 있으시죠. 그 경전에 나오는 직위는 여러 종교단체에서 따왔거든요. 특별히 마음 쓸 일은 없어요.”

축문이 끝나자 이번에는 장중하고 무거운 음악이 내리깔렸다. 북소리도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었다. 냅다 치는 게 아니라 어떤 행사를 좀 더 띄우기 위해 분위기를 유도해 나가는 울림이었다. 마이크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는 순간 탁원제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앞으로 21분 후 비봉각을 열겠습니다. 과연 스무하루가 지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질는지 궁금합니다. 신도 여러분은 그 자리에 앉아 영험이 있기를 기도해 주십시오.”

신도들이 통성으로 기도하자 말벌 우는 듯 웅웅댔다. 소리는 점점 고조되었다. 마이크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역시 격앙된 기도였고, 신도들은 고함이라도 지르듯 악을 버럭버럭 썼다.

그때였다. 하늘이 온통 오색찬란한 빛줄기로 뒤덮었다. 기도 소리가 멈춘 그 순간, 비봉각에서 하나의 빛줄기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새였다. 몸집이 거대한 새는 훨훨 깃 치며 서쪽으로 날아갔다.

“봉황이다! 비봉각에 잠든 봉황이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