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바둑 살인사건

종로의 파고다공원과 종묘 사이엔 돈의동(敦義洞)이 있었다. 본래 돈령동(敦寧洞)과 어의동(於義洞)이 있었던 곳인데 일제가 두 마을을 합해 ‘돈의동'으로 바꾼 것은 1914년의 일이었다.

마을 중앙엔 오로관(烏鷺觀)이란 바둑 도장이 있었다. 숙식을 하고 문하생을 키우는 곳이라면 ‘관(館)' 자를 사용하는데 어찌된 셈인지 ‘관(觀)'자를 떠억 걸어 사람들의 이목을 잡아끌었다.
한양의 중앙지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시내 한복판에 똬리를 틀고 그런 옥호(屋號)를 내걸었으니 그만한 이유가 있을 법했지만 뜬소문이 되어 흘러다닌 귓속질엔, 바둑은 사람이 두는 게 아니라 신선들의 놀이감이란 관점에서 붙여진 것이라 했다.

아닌 게 아니라 ‘관(觀)'은 도가(道家)에서 자신들의 거처에 붙이는 명칭이니 그럴 법하다는 것에 달리 의견이 없었다. 더구나 대문 중앙에 걸린 간판이 ‘오로관(烏鷺觀)'이었으니 그 앞을 지나가는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건 당연했다.

이곳 ‘오로관'엔 행세깨나 하는 선비들이 줄줄이 찾아들어 수담(手談)을 즐겼고, 백여 평 남짓한 집안엔 바둑판 앞으로 조선의 고수들이 찾아들어 오로 상쟁(相爭)의 열기에 휩싸이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바둑을 두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들어올 수 있는 곳, 장안엔 그런 소문이 깔렸었는데 집 앞에 게시용으로 세운 방목(榜木)에 붙은 묘수풀이가 오가는 기객들의 시선을 끌어들였다.

<본관에서는 금나라의 도제 베개를 걸고 내기바둑을 두려한다. 어느 누구도 내기에 응할 수 있으나 참여자의 조건은 방목에 붙인 문제를 풀수 있어야 하는 수준이다. ‘문제도'에서 백은 활로가 보이지 않는다. 선(先)으로 두어 결과가 어찌 되겠는가.>

그 앞을 지나가던 젊은이가 한동안 도형을 노려보더니 대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가 찾아온 용건을 전했다.

“시생은 방목(榜木)에 붙여진 묘수풀이 도형을 풀 수 있는 자를 구한다는 글귀를 보고 들어왔습니다.”

턱밑에 수염이 반 자(尺)는 넉넉한 ‘오로관'의 바둑 고수가 환한 얼굴로 맞이했다. 순식간에 묘수풀이 모양을 바둑판에 올려놓자 백돌을 든 젊은이의 착점이 시작되었다.

곁에서 지켜보던 오로관의 주인 육청하(陸晴瑕)의 걸찍한 웃음소리는 예순이 넘었다고 생각지 않을 만큼 우렁그렁 울리며 자신을 임문혁(林汶赫)이라 소개한 젊은이의 기력을 높이 평가했다.

“단숨에 풀어낸 걸 보니 대단한 기력일세. 방목에 쓰인 대로 자네가 이곳 ‘오로관'의 선수로서 한 달 후 열리는 ‘금나라의 도제 베개'를 건 내기바둑을 두어야겠네. 숙소는 몸채 뒤쪽에 마련했으니 그곳에서 기력을 연마하시게.
따분하다 싶으면 길 건너 아따미(熱海)란 음식점에 들러 피곤을 식히는 것도 괜찮겠지. 그곳에 가거든 ‘오로관'에서 왔다 하고 신패(身牌;신분을 증명하는 패)를 보여주면 식대 청구로 인한 시비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네.”

임씨 성을 쓰는 젊은이가 오로관 별채에 머문 지 십여 일이 지났을 때였다. 수표교 다리 아래 움푹 팬 물웅덩이에서 임문혁이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어 ‘오로관'을 발칵 뒤집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