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태후전각에 머무는 설약사라고 밝혔다. 궁에 오래 있으면서 사다함이 5세 풍류주에 올라 북문 수비의 귀당비장이 됐을 때엔 내명부 관리에 힘을 기울였으나 그가 죽은 후에는 여전히 북문 출입을 손아귀에 쥐고 있었다. 따라서 월성에 들어서려면 까다로운 검문 · 검색을 받아왔으나 북문을 이용할 때는 설약사의 부도(符圖)만 소지하면 출입이 허가됐다. 그런 점 때문에 또출이는 아무런 제제 없이 월성에 들어올 수 있었다.

“가만, 그건 이때까지의 경우완 다르지 않은가. 네가 처음엔 북문을 통해 왔다는 것도 모른다 하였고 나중엔 그게 북문인지 서문인지도 모른다했었다. 한데, 지금에야 그게 북문이라고 한 이윤 무엇이냐?”

“나으리께서 소인의 목숨을 살려주시리라 믿은 탓입니다.”

“내가 처음부터 이상히 여긴 것은, 댕견을 구한 이는 보명궁의 미실 낭주인데 왜 너를 설약사가 부도를 내려 이곳으로 부른 것이냐?”

“댕견은 주인의 말을 잘 따르는 명견입니다만 귀가 쫑긋하고 꼬리가 짧은 것으로 보아 성격이 칼칼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저희 마을에서는 곡물만을 주어 키우기 때문에 댕견의 습성을 잘 모른다고 봐야겠지요. 어떤 개라도 주인이 던져주는 음식을 며칠만 먹으면 성격은 자연스럽게 음식으로 인해 바꿔질 수 있습니다.”

“호오!”

“그럴 땐 소인이 필요하게 돼 이곳에 온 것이지요.”

“그러니까···, 너는 개의 먹이를 주러 온 게 아니고 댕견의 성격을 고치고자 왔다는 말이냐?”

“그러···하옵니다.”

“댕견의 성격을 고쳤느냐?”

“사람이든 짐승이든 보름날 밤엔 마음이 조금 달라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이때를 노려 댕견을 난폭하게 만들려는 것은 이곳에 머무는 미실 낭주를 공격하기 위해섭니다. 홀로 사는 여자가 달밤에 홀로 있다보면 당연히 뜨락을 거닐고 싶은 충동을 느낄 거고 그때를 이용해 댕견을 풀어놓으면 공격할 거로 보기 때문입니다.”

“허나, 댕견이 반드시 공격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그 동안 이 날을 위해 먹이를 조정했거든요.”

“댕견의 먹이 말이냐?”

“예에. 소인이 깊은 산···, 아니 선도산에서 머리에 일곱 개의 점이 박힌 칠성사(七星蛇)란 뱀을 잡아와 고통을 가해 죽인 연후에 살이 잘 상하게 하여 구더기가 끓게 했습니다. 보름날이 되자 소인은 개의 먹이로 그것들을 준 후 해가 지면 댕견을 풀어놓으란 말을 하고 월성을 나가 시간이 지나길 기다렸습니다.”

“흐음, 일이 다 처리된 후에 들어오겠다 그 말이렷다.”

“예에. 그러나 본래의 계획은 크게 어그러졌습니다. 본래의 계획대로라면 의당 미실 낭주가 정원에 나가야 했는데 이 날 설원랑이란 부제가 찾아들어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습니다. 그때 태자마마가 술에 취한 김에 담을 넘었고, 먹이를 기다리던 댕견은 얼씨구나 달려들어 태자마마의 목줄을 물어뜯었습니다.”

“단숨에 절명했겠구먼.”

“그러하옵니다.”

“그렇다면 자넨 태자마마 죽음에 간접적인 책임만 있을 뿐이지만 이 역시 대왕마마가 아실 때엔 목숨을 부지할 수 없네. 그러니 내가 무슨 말을 할 때까진 입을 꾸욱 다물고 있게. 알겠는가?”

“아이구 그럼믄입쇼. 살려만 주신다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다시 한 번 말하겠네만 함부로 입을 열었다간 결코 살아남을 수 없으니 각별 조심하게. 한데, 미실 낭주께서 댕견을 구한 이유를 무어라 보는가?”

“댕견은 주인의 말을 잘 듣는 고로 월성의 귀부인들은 자주 구해가곤 합니다. 다른 개들도 있는데 굳이 댕견을 구하다 보니 곱지 않은 소문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만 설마 개를 이용해 수간(獸姦)이야 하겠습니까. 그런 것으로 보면 미실 낭주께서는 댕견을 곁에 두고 싶었기 때문으로 보이옵니다.”

“죽은 댕견은 수컷이냐?”

“아니옵니다. 암컷입니다. 암컷이 더 사납습니다.”

“너는 대왕의 명이 있기 전까지 어사대의 뇌옥(牢獄)에 구금될 것이다. 그래야만 사는 길이 나올 것이다. 그런 줄 알고 고분고분 따르길 바란다.”

“아, 예에.”

눈짓을 받은 어사대 관원들이 또출이를 끌어가자 설추경은 이 일을 놓고 주판을 튕기기 시작했다. 예전의 상황이야 국권(國權)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권한이 지소태후에게 있었으나 지금은 실제적인 권한이 미실에게 있었다. 대왕에게 새주(璽主)의 첩지를 받은 데다 원화(源花)의 권한까지 이양받았으니 나라 안팎의 병권은 그녀 수중에 들어와  있었다.

‘아무리 그렇다 하나···, 태후마마의 허물을 모른 척 할 수는 없지. 일단 지소태후를 흔들면 소득있는 일이 일어날 게야. 으흐흐흐.’

설추경은 불자(拂子)를 흔들며 태후전(太后殿)으로 향하고 있었다.

▲부도(符圖) ; 첩보원들에게 자신의 신패에 먹물을 찍어 그 용지를 주면 출입할 때 사용한다.

▲칠성사(七星蛇) ; 맹독을 가진 독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