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것이라? 뭘 봤다는 게냐?”

“모여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한 여자에 집착해 그 주위에 웅성거리는 걸 봤습니다. 그 여인은 목이 떡메처럼 모착한 볼품없는 목이었는데 왜 그 여인에게 모여들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그 이율 알았느냐?”

“아침이 가까워서야 알았습니다.”

“이유가 뭣이더냐?”

“사내를 홀리는 약에 취했다는 겁니다. 그 약 이름이 뭔지 모르니 일단 그 약을 들면 아무리 호박같은 여자라도 신선으로 뵈인다는 말에 너무 신기해 그곳에 있었습니다. 월성의 사내들은 조금만 행세해도 그런 약을 먹는다 했으니 소인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약 이름이 뭐더냐?”

“미실환(美室丸)이라 들었나이다. 소인도 주머니에 돈이 있었기에 마누라에게 실험하기 위해 세 알 구해 왔습니다.”

“그걸 구하느라 지금껏 자릴 비웠다 그 말이렷다!”

“아, 예에.”

“그러면 너는 살 자격이 없다.”

“예에?”

“네가 자릴 비운 사이 태자마마께서 개에 물려 세상을 뜨셨다. 네가 한갓 건달의 몸으로 보명궁의 봉사화랑이 된 것은 댕견을 잘 키워야 하는 의무감 때문이다. 헌데도 넌 할 일을 잊은 채 유곽 계집에게 빠져 돌아보질 않은 죄가 있으니 능지처참의 형을 받아도 할말이 없다.”

“아이구 아닙니다요, 댕견이 태자마마를 물어뜯으리라곤 생각밖이었습니다.”

“무어라? 네 놈은 궁에 들어와 댕견이 잡식성이라고 말했을 뿐 사람을 물어뜯는다곤 하지 않았다. 댕견이 그토록 위험한 개였다면 어찌 주의 사항을 말하지 않았더냐? 이 일은 가만 생각해 보면 시작과 끝에 네 놈이 도사리고 있음이 분명한 터! 모든 일을 네 놈이 꾸민 게 분명하다.”

“아이구, 아닙니다요. 내가 무슨 일을 꾸밉니까?”

“시끄럽다! 어사대 판관은 저 놈을 닦달해 흉계가 도사리고 있는지 이유를 살펴라. 누가 무슨 목적으로 댕견을 보명궁에 들였는지 그 이유부터 살펴라!”

“예에, 마마.”

양위마마가 부축을 받은 채 보명궁에서 물러난 후 어사대 판관 설추경은 또출이를 직접 심문했다. 죄인의 주위를 어사대 병력이 둘러쌌으니 죽을 수도 도망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더구나 설추경은 6세 풍류주의 부제인 설원랑까지 구인해 어사대 지하뇌옥에 집어넣고 또출이부터 채근했다.

“대왕께서는 태후마마의 수렴청정으로 심신이 곤고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 점을 세종 전군이 모르지 않는 일이기에 이번 사건은 더욱 계획적인 일이라 의심이 간다. 이에 편승해 네 놈이 무슨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어떠냐 주리를 튼 뒤 말하겠느냐 지금 입을 열겠느냐?”

“아이구 나으리, 살려 주십시오. 소인은 아무 것도 모릅니다요.”

“지금은 모르겠지. 그러나 주리를 틀고 형옥을 당하면 생각나는 게 있을 것이다.”

설추경이 손에 쥔 불자(拂子)를 좌우로 흔들자 주리를 틀 고문의 도구가 등장했다. 고문이라고 해야 도구의 사용은 상대에 따라 달라진다. 행세깨나 하는 자들은 의연함을 나타내기 위해 애쓰고 아랫것들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멀리 바다 건너 중원의 수(隋)나라에서 사용하는 ‘인분(人糞)에 집어넣기’는 일단 주리를 틀어 팔다리에 상처를 낸 후 그곳에 인분의 독이 스며들도록 집어넣었다. 그렇게 하면 상처는 금방 덧나고 부어올라 견딜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그러나 이것만이 중요한 건 아니다. 자신이 인분 통에 들어갔다는 현실이 지독한 아픔인 것이다. 그래서 혀를 물고 죽거나 나중엔 반미치광이가 되어 고래고래 소릴 지르거나 헛소리를 웅얼거리는 상태에 들어간다. 팔다리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고통이 몰아쳐도 이를 악물며 또출이가 참아내자 어사대 판관 설추경은 오히려 즐거운 낯으로 상대를 몰아세웠다.

“네 놈이 아직도 육신이 팔팔하다고 여유가 있는 모양이다만, 오늘 저녁을 넘기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거라. 그래야 내일 아침에 인분에 몸을 담궈 온몸이 진무르는 고통을 맛볼 것 아닌가. 열심히 입을 닫고 네 놈과 공모한 자의 의리를 생각하거라. 그래야 내일의 고통을 참아낼 게 아니냐.”

반쯤 널브러진 또출이는 어사대의 형옥에 구겨 넣어졌다. 눈앞에 떠오른 건 태후전의 약사의 은밀한 당부였다.

“설혹 일이 잘못돼 곤욕을 치르더라도 끝까지 모른다고 해야 살 길이 열리네. 섣불리 입을 열면 자네만 죽는 게 아니라 태후마마를 비롯해 자네 집안도 거덜이 나네. 입을 다물 게. 그래야 사는 길이 열리네. 아시겠는가.”

또출이가 갇힌 형옥의 건너편엔 설원랑도 들어와 이번 일이 일어난 원인을 분석하는 모양이었지만 알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자신이 미실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 일어난 사고였으니 그것을 계획된 범행이라고 보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삐익 삑 울리는 피리소리와 뒤이어 담을 넘은 동륜태자의 움직임이었다. 댕견은 무엇 때문에 흥분해 태자를 물어뜯었을까? 설원랑의 뇌리엔 이러한 의문이 일어나고 있었다.

▲미실환(美室丸) ; 이것은 미실이 약을 만들었다기 보다 그녀의 이름을 이용한 것으로 신라 사회에 유행하던 음약(淫藥)이었다.

▲군마장식 ; 군마를 치장하는 장식.

** 알림 **
작가의 건강상 이유로 당분간 연재를 쉽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여설하 작가의 빠른 쾌유를 빕니다. (사이버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