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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혈국의 비장미 -죽음의 재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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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혈국의 비장미 -죽음의 재해석.
2002-06-05 조회 11454    프린트스크랩
느나라이건 다 비슷하겠지만. 한국인들은 비장미(悲壯美)를 유난히 좋아하는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80년대 영웅본색류의 비장함을 풀풀 풍기는 홍콩 느와르의 액션스타들에게서 전형적인 스타일을 찾을 수 있었던, 한국인들의 이 취향은 애.어른 가릴 것 없는 공통 분모였던 것 같다.

홍콩영화에 식상한 팬들이 홍콩느와르를 외면한지 십여년 가깝게 흐르더니.2001년 한국 영화 '친구'에서 더욱 한국적인 비장미가 폭발했다. 영화 '친구'를 보면 친구를 죽이는 주인공과 죽는 주인공,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분위기도 정말 비장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관객들은 주인공들의 비장함에 열광했다.

우리 역사에서 보았을 때에는 주로 침략을 막거나 권력의 힘에 굴복하지 않았던 구국(求國)의 영웅, 혹은 열사(烈士)들이 비장미를 물씬 머금고 있다. 고려의 최영, 임진왜란의 이순신, 구한말의 전봉준, 그들은 모두 예정된 죽음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일제때부터 80년대의 군사정권까지, 우리의 근대. 우리 현대사에 아픈기억이지만 우리가 숱하게 배출했던 열사들은 모두 일정부분 비장미를 함축하고 있다. 아주 오래된 일도 아니니 우리에게는 비장함이란 생활속에서도 매우 익숙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아무튼 모든 한국인은 청소년 시기에서부터 비장미에 공통적으로 익숙해지고 빠져드는 것 같다. 요즈음은 영화뿐만이 아니라 뮤직비디오에서도 슬프지만 어쩔수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주인공들의 비장함이 아주 넘쳐난다. 그 이유는 하나다. 우리모두가 비장함과 비장미를 한껏 머금은 주인공들에게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바둑에도 이런 비장미 넘치는 승부가 많이 존재하곤 한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진짜 사람이 죽어나간 바둑이 있다. 옆 동네인 일본 바둑의 옛 이야기인데 비장한 냄새가 진동하는 스토리로 명칭은 '피를 토하는 바둑' 즉 토혈국(吐血局)이다. 바둑에 관심이 많은 광적인 팬은 아마도 토혈국의 이야기를 이미 한번쯤 들어 보았을 것이고, 그 이야기에 담긴 비장함을 매우 좋아했을 지도 모른다.

다음은 토혈국의 전개과정이다.

[토혈국의 배경및 스토리]

-배경 '名人기소제도' '바둑가문' 그리고 '권력투쟁'

일본은 전국시대가 끝난 후 최후의 패자인 도쿠가와 이에야쓰의 막부 통치아래, 평화시대를 맞게 된다. 이 막부 제도는 명치시대. 즉 메이지 유신으로 막부가 붕괴될때까지 일본 사회를 확고하게 잡아 놓고 있었다. 이후 일본의 바둑은 막부의 보호와 지원아래 발달하게 되었는데. 막부는 기소(碁所)라는 별도의 직책을 두어 바둑을 총괄하게 하였다. 막부의 임명으로 기소에 오른 자는 이른바 명인(名人)으로 하나뿐인 九단이며, 전국의 기사를 통솔하며, 전국의 기사에 대한 단위의 허가, 그에따른 검정등, 당시 형성된 일본 바둑계에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 권력의 자리에 있는 자(名人)는 당국의 특별한 명령이나 괜히 대국을 해서 자신의 권위를 깎아 내릴 필요도 없었다. 자신에게 적수가 될 만한 호적수들에게는 상수에 해당하는 7단이나, 준명인에 해당하는 8단의 권위를 하사함으로써 바둑의 절대 권력에 기어오르는 것을 방지했다.

그리고 기소를 중심으로 하는 이 제도는 대대로 이어 내려지는 세습제의 4대 바둑가문이 일본에 뿌리내리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가장 유명한 것이 현재도 일본에서 아직도 열리고 있는 타이틀의 이름이기도 한 혼인보(본인방 本因坊), 그리고 나머지 세개의 가문은 각각 야쓰이(安井)家, 이노우에(井上)家, 하야시(林)家이다.

명인 기소. 일본에 독특했던 정치제도인 막부의 지원하래 존재했던 이 자리에는 그에 따르는 권력만큼이나 당연히 그 자리에 대한 치열한 권력투쟁이 상존할 수 밖에 없었다. 권력투쟁이 없는 시대란 아주 탁월한 기사가 오로지 바둑실력 하나만으로 깨끗하게 상대를 평정하거나, 혹은 정치력이 아주 탁월한 기사가 바둑 4대가문의 위신과 권위를 인정하면서 유연한 정치를 펼 때일 것이다.

하지만, 정치에서 사실상 평화상태란 없는 줄도 모른다. 언제나 야망이 강하고 권력욕이 넘쳐나는 사람이 바둑가문의 수장으로 있게 되고, 그들의 힘이 평형을 이루거나 일방의 힘이 아주 강하면 타협이 이루어지지만, 조금이라도 틈이 있는 한 투쟁과 암투는 끝이 날 수 없을 것이다.

-토혈국의 간략한 스토리

토혈국(吐血局) 사건은 권력의 핵심인 기소를 둘러싼 암투와 권력투쟁의 절정을 보여주는 한 사례이다. 바로 혼인보 죠와(丈和)와 이노우에가의 겐낭인세키(幻庵因碩)가 권력투쟁의 핵심인데. 최종 승자는 혼인보 죠와였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명인 취임까지 그럴싸한 바둑의 대결은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지는 사람, 즉 패자의 정치적인 부담이 곧 정치적인 사망에 가깝기 때문에 서로 두려워하는 부분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사람의 계략과 지모도 아주 뛰어났다. 먼저 7단의 위치로 불리한 위치였던 겐낭은 혼인보와 야쓰이가를 설득해 준명인인 8단의 위치에 오른다. 또한 바둑 4대가문간의 암약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한다음, 가장 강력한 위치에 있던 죠와가 명인 기소의 자리에 오르거나. 다른사람이 오르려는 시도를 사사건건 방해한다. 이에 비해 혼인보 죠와는 조금더 적극적이었다. 먼저 혼인보 죠와는 기소를 임명하는 권한이 있던 당국을 설득했고, 자신의 친 아들을 볼모로 다른 바둑가문들과 비밀 약조를 맺어 명인 기소에 취임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모든 권력자가 그렇듯이 암약과 투쟁을 통해 명인기소에 오른 죠와는 비밀약조의 약속을 지킬 생각이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듯하다.

약조의 내용은 혼인보를 적극적으로 도와준 하야시가의 가주 하야시겐비(林元美)에게 준명인인 8단의 단위를 인허하고, 이노우에가에는 6년뒤 기소를 이양하고 금화 6백냥을 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성공한 권력자가 이런 시덥잖은 비밀 약속을 지키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대단히 드문 일이다. -김영상 대통령 시절의 내각제 문서 파문을 생각해 보자 - 죠와도 마찬가지로 권력에 앉자 볼모로 잡힌 친아들 하나를,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신 죽도록 방치했다. 그리고 명인기소 취임에 정치적인 지지자 역할 해 준 하야기 겐비에게는 8단의 단위를 인허하지 않았다. 8단은 명인기소에 도전할 수 있는 권위가 있기 때문이다.

겐낭 인셰키는 자신이 비밀약조에 속았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이미 적수는 대망의 권력을 손에 넣었으니. 이제 그의 권력과 권위에 흠집을 내 죠와를 끌어 내려야 하는 수순이 필요하게 되었다. 겐낭은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 당시의 막부 중신인 마쓰다이라의 이름으로 혼인보 죠와와 이노우에가의 친선대국을 주선하게 한다. 말이 친선대국이지 죠와로서는 막부 고관의 이름이 걸려 있으므로 울며겨자 먹기로 대국에 임하는 것이고 만약에 지는 날이면 모든 가문에서 벌떼처럼 도전할 것이 뻔한 이치였다. 지속적이고 정당한 대국이 아닌 권모술수와 암투로서 권력에 올랐으니 명인의 정당성이 부족하고, 따라서 이러한 도전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일을 암약한 이노우에가의 겐낭도 정치적인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바로 겐낭이 직접나서 명인기소에 오른 혼인보를 꺾는다 해도, 자신이 그 자리에 바로 취임한다는 보장이 없다. 지는 날이면 다시는 도전할 기회가 없을 것이고. 게다가 자신이 이기면 유리는 하겠지만 다른 바둑가문에서도 자신과 똑같은 명인기소 공략의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겐낭이 생각한 것은 자신의 수제자인 아카보시 인테츠(赤星因哲, 1810-1835)였다. 25세로 7단에 오른 인테츠는 겐낭을 정선으로 4번이상 연속 이긴 젊은 실력자였다. 겐낭은 제자를 대신 전쟁터에 내보냈다. 승리하면 더할나위 없이 많은 상처를 정적에게 입힐 수 있고. 실패한다 하더라도 아카보시는 자신의 제자이므로 자신은 다시 도전할 기회를 훗날 도모할 수 있다. 역시 겐낭다운, 비겁하긴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매우 합리적인 선택과 처신이었다.

대국은 무더운 7월에 열렸고 나흘의 시간이 소모되었다. 대국이 중단 됐을 때. 죠와는 이판을 생각하느라 옷에 오줌을 지리는 것도 몰랐고, 인테츠는 생각으로 침식을 잊고 있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결과가 드러나는 것이 바둑의 승부, 형세는 초반에 역시 흑을 잡은 인테츠가 유리했으나 연속해서 죠와가 3번의 묘수를 터뜨리며 형세를 역전. 결국 아카보시 인테츠가 자신의 불계패를 인정하고 돌을 던진다.

그리고 죽음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스승의 명예와 가문의 위상을 한 몸에 짊어지고 바둑승부에 임했고 결국은 패배한 아카보시가 판 옆에서 피를 토한 것이다. 아마 죽을만큼 토했나 보다. 많은 사람이 놀랐고, 아카보시는 이노우에가의 사람들에 의해 가문으로 옮겨진후 그곳에서 얼마 못가 짧은 인생을 마쳤다.

이후 이 바둑의 이름은 토혈국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혼인보를 중심으로 한 근대 이전 일본의 바둑역사에서 아주 아주 유명한 사건이 되었다. 사문의 명예가 달린 막중한 책임을 진 젊은 기사, 아카보시 인테츠가 나흘간에 걸쳐 바둑을 두어 승부에서 패하자, 피를 토하고 죽은 이 사건이 말이다.

[토혈국과 죽음의 재해석]

아카보시 인테츠는 왜 죽었을까? 그의 나이는 싱싱한 25살. 나흘간 아무리 중차대한 일을 맡고 바둑을 둔다 하더라도, 잠시 혼절할 수는 있을 지언정 피를 토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상하다. 혹시 젊은 아카보시에게 무슨 중병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느정도 토혈국을 소개하는 책들에서는 아카보시가 병약하다거나 쇠약하다는 식으로 소개가 되고 있으니 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피를 토한 증상을 살펴보자.

입에서 피를 토하는 증상은 좀더 정확하게는 원인에 따라 토혈(吐血, hematemesis)과 객혈(喀血 ,hemoptysis)로 나뉘어 진다. 먼저 객혈은 기관지와 폐의 질병에 의한 경우가 많으며 쉽게 얘기하면 결핵, 폐렴, 폐암등의 질병에 의해 환자가 기침을 하며 피를 쏟는 것이다. 객혈에 의한 출혈은 별로 그 양이 많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객혈은 그 대부분이 기침을 심하게 하는데 토혈국에서는 아카보시가 가만히 누워서 생각을 한다고만 소개가 되있고, 기침에 관한 얘기는 없는 것으로 보아 객혈과는 무관한 것 같다.

두번째로 토혈은 소화기관인 식도와 위등을 통해 대량의 출혈을 보이는 증상이다. 아마도 객혈국(喀血局)이 아니라 토혈국(吐血)이란 이름 자체가 붙은 것을 보아도 아카보시가 죽기전에 입에서 피를 토해낸 것은 역시 토혈인 것으로 보인다. 대량의 피를 토할 수 있게 만드는 질병은 간경화, 간암, 위암, 궤양 등인데 특히 간경화와 간암 말기환자들에게 토혈의 증상이 생기기 쉽다고 한다.

간경화등의 간질환에서의 토혈원인을 설명하자면, 간으로 피를 공급하는 식도 정맥에서 흐르는 대량의 혈액이 간이 딱딱해져서 간으로 흐르지 못해 식도정맥에서 퉁퉁 부어있다가 식도에서 폭발하는 것이다. 따라서 피를 토하는 환자는 정신없이 피를 꾸역꾸역 토하게 된다. 또 그 피비린내가 역한 것으로 치면 그 어는 것도 따를 수가 없다고 한다. 꾸역꾸역 흐르는 검붉은 암갈색 피와 역한 피비린내.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온 갖 역하고 끔찍한 것을 다 보던 노련한 간호사와 의사들조차도 토혈환자들을 보면 일단 주춤한다니까. 아마 일반인들이 한번 보면 평생 못잊을 것이라고 한다.

만약 아카보시가 이런한 간질환에 의한 토혈이었다면, 대국장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일단 쇼크를 먹은다음 그 장면을 평생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젊은 아카보시의 입에서 흐르는 엄청난 량의 피, 그리고 입에서 꾸역꾸역 새어나오는 그칠줄 모르는 다량의 정맥류, 게다가 진득한 피에 동반되는 역하디 역한 피비린내.

-중독의 가능성은?
워낙 권력욕이 강했던 투쟁의 현장이니 만큼, 독살(毒殺)의 가능성은 좀 희박하지만 한번 따져볼 수도 있겠다. 중독되어 입에서 피를 흘리는 것은 항응고제 계열의 독성이 있어야 한다. 쉽게 풀이하면 임금이 내리는 사약을 받고 죽어가는 죄인들이, 입에서 피를 흘리는 장면을 TV에서 볼 수 있는 데 이런 증상을 일으키는 것이 항응고제의 역할이다.

가령 이런 독약에 심하게 중독되면. 온몸의 미세한 혈관들이 파열된다. 눈 동자의 점막안에 있는 모세 혈관들이 파열되어 글자그대로 피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 구강의 점막도 파열하며. 점막으로 이루어져 있는 인체의 약한 부분의 모세혈관이 거의 다 파열된다. 역시 입에서 가징 많은 피를 흘리기 마련이고 역사속에서 독살장면을 묘사하는 '오공에서 피를 뿌리며 죽어갔다' 라는 식의 표현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만약 토혈국의 사료에 피를 흩뿌린다는 식의 표현이 들어간다면 독살의 가능성도 약간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나, 그러한 표현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워낙 저열한 수법의 계략도 서슴지 않았던 혼인보가와 이노우에가의 죠와와 겐낭이고 보면 독살에 관한 의문이나 호기심도 한번은 짚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독에 서서히 중독되어가던 아카보시가 혼미한 마지막에 피를 토했을 가능성 말이다.

결론적으로는 아카보시의 증상과 토혈국의 서술만을 본다면, 아카보시 인테츠는 결국 간과 관련된 질환으로 항상 고통받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간질환 환자의 특징중의 하나가 아주 쉽게 피곤하고 지치고 해서 오래 누워 있어야 하는 것인데 아카보시도 이러한 특징을 좀 보이는 것 같다. 그리고 과도한 체력의 소모가 공교롭게도 대국이 종료된 시점에서 토혈을 불러온 것으로 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 아카보시 인테츠의 죽음에 관한 이해득실.

그가 죽어서 손해를 본 사람은 별로 없었다. 아카보시 인테츠의 스승인 겐낭이 큰 피해를 입은 것 같으나. 냉정히 따지면. 겐낭이야 어차피 못되도 본전이라는 의미로 제자를 희생한 것에 불과하고(죽을 것 까지 예상을 못했을 수도 있지만) 또 뛰어난 후기 지수가 요절하면 권력자는 더 오래 권력을 향유할 수 있으니 아주 큰 손해라고 볼 수는 없다. 뛰어난 후기지수에게 가문의 수장이나 권력을 이양할 마음이 전혀 없었을 겐낭에게 아카보시 인테츠의 죽음은 그다지 손해가 아니었다.

나름대로 득을 본 사람은 죠와다. 가장 큰 정적인 겐낭의 수제자를 꺾었으니 비록 겐낭을 보내버린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명인기소 취임의 얄팍한 정당성을 쟁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겐낭 자체를 꺾은 것은 아니므로, 토혈국의 위험성과 옷에 오줌까지 지리면서 시간과 정력을 소모한 것을 합하면 실질적으로 아주 큰 소득은 아니었다.

나머지 4대가문은 관전하는 위치에서 자신들의 이해득실을 따져 보았을 것이다. 대국의 승패에 따라 누구에게 붙을지를. 죠와의 승리는 이런면에서 향후 몇년간의 정치적인 안정을 예고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겐낭이 토혈국에서 꺾인 것이 아니고, 자신을 도와준 하야시家에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계속되는 불안을 잉태하고 있다.

[토혈국의 IDEA REVIEW - 희생양]
희생양 (犧牲羊 scapegoat)

처음에 말했듯이 이 스토리가 비장한 까닭은, 젊은 천재기사가 어느정도 예정된 죽음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 중요한 요소이다. 또 하나는 토혈국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권력관계와 암투관계에서, 대국결과에 따라 정작 피를 토해야할 사람은 혼인보 죠와와 그의 라이벌인 겐낭 인세키 둘중 하나여야 한다는 점이다. 어찌보면 권력투쟁과는 아직 무관한 병약한 천재기사 아카보시가, 스승이었던 겐낭의 다소 정치적인 판단과 명령으로 스승과 가문의 영광을 한몸에 지고 희생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런 몇가지 요소 때문에 요즘사람들도 과거 토혈국의 기보를 놓아보면서, 그 비장함에 괜시리 명상에 빠지곤 하는 것이다.

희생양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원래 고대 사회에서 희생 제물의 의미는 어떤 집단이나 사회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하늘이나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하늘이나 신에게 바쳐지는 가축이나 곡식 그밖의 것들을 뜻하는 것인데, 근대 정치학등에서는 희생양 이론이 좀 더 확장되어서 심각한 내부의 갈등에 대한 관심을 외부로 돌리기 위한 대외정책이나 모험을 뜻하게 되었다. 우리사회 같으면 과거의 정통성이 취약했던 권력집단이 국내 내부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외부의 북한문제등으로 갈등을 이완시킨 것을 기억할 수 가 있겠다. 좀더 쉽게 쓰이는 의미로 적용하자면, 한국 현실정치에서는 말뜻 그대로 보스의 정치적인 실수나 죄과등에 대해 정쟁에서 어떤 누군가가 혼자 책임을 뒤집어 쓸 때 책임을 홀로 부담하는 사람에 대해 '희생양'이라는 표현을 쓴다. 물론 희생양은 본질적으로 원래 문제가 되었던 사항을 회피하는 것이므로 갈등의 사항은 그대로 잔존하는 경우가 많을 것을 예측할 수 있겠다.

아카보시 인테츠도 희생양의 의미를 아주 포괄적으로 적용하자면, 그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이다. 피를 토하고 죽을 책임이 별로 없던 사람이 피를 토하고 죽었으며, 그의 죽음이, 사태의 핵심인 일본 명인 기소에 대한 권력의 문제를 잠시동안이지만 모두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해서, 수면밑으로 잠복하게 한 것이다. 사시사철 권력투쟁만 하자면 모두가 피곤한 것이므로, 정쟁을 중단시키는 일종의 공통된 관심을 모을 수 있는 '희생'이 필요한 시점이었는데 아주 유효적절하게 아카보시가 죽어 버림으로써 희생양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만것이다.

약간은 겐낭에 대한 의구심도 드는 것은...... 혹시 아카보시의 질병을 미리 알고 있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겐낭은 아카보시 인테츠의 스승이므로 그가 골골하며 앓고 있는 것을 잘 알았을 수 있다. 그냥 앓다 죽으면 아까우므로 죽기전에 고깃값이나 하고 죽으라는 셈으로 출전 명을 내린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든다. 또 하나는 아카보시의 실력이 겐낭의 예정보다 일취월장하여 자신의 자리를 너무 일찍 내줘야 할 것 같은 불안감에 제자를 미리 사지(死地)로 내몬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은근슬쩍 들기도 하는 것이고.

아카보시 인테츠의 토혈국이 주는 IDEA는 희생양의 의미이다. 때론 우리모두는 사실 당연하지 않은데 아주 당연하게 희생양이 되어버리곤 한다. - 아카보시는 병으로 앓다가 죽을 수는 있겠지만, 스승대신 대국을 하다가 고통스럽게 죽을 필요는 전혀 없는 사람이다. - 그리고는 자신이 희생양이 되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오히려 자신이 희생양이 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희생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버둥거리다가 장엄하게,, 쓸데없이 비장하게 희생양의 본분을 마치곤 한다. 아마 이유는 우리가 그런 때 의리나 사회적인 약속을 지키도록 훈련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희생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희생양인줄 모른다. 설령 안다 해도 희생양의 자리에 들어선 순간은 피해가거나 도망칠 여유가 없어진다. 그리고 어느정도 예정된 희생양의 마지막을 향해 묵묵히 나아가게 된다.

권력이 이동하는 주변에 가깝게 있는 당신이라면. 약간씩은 자세를 낮춰보는 것이 어떨까. 희생양으로 가는 필연의 수순에 당신이 당신 의지와는 상관없이 끼워 맞춰져 있을 수도 있으니까. 약 200 여년 전의 바둑고수 아카보시가 그러한 개연성들과 전형적인 진행과정을 잘 알려주고 있지는 않은지....

[죠와, 겐낭]

○...죠와(丈和)
아카보시 인테츠를 바둑으로 물리친 죠와는 이후 그 대국을 음미하며 승리를 만끽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정적들은 제거되거나 물리친 것이 아니어서. 먼저 자신을 끝까지 편들어 주었던 하야시가의 하야시겐비가 먼저 도전을 요청했다. 하야시겐비의 실질적인 도움을 얻었음에도 준명인인 8단을 인허해 주지 않은 죠와에 대한 배신감때문이었다. 죠와는 하야시겐비등과의 쟁기를 포기하고 자리를 후계자인 슈와(秀和)에게 물린다. 죠와는 비록 암약을 하고 친아들을 희생하기도 했지만 명인기소의 위엄이 생생할 때 정상에 있었으므로 권력자로서는 성공한 셈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겐낭(幻庵因碩)
겐낭은 명인기소에 연륜과 권위로 취임하려 하나 혼인보의 새로운 주인 슈와에게 가로막힌다. 그 옛날 자신이 죠와의 명인 취임을 방해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겐낭은 술수를 쓰는대신 슈와와 두번의 쟁기를 펼친다. 그리고 두번 다 패배하고 말았다. 겐낭은 이 패배이후 자신의 이름에서 이노우에(井上)를 빼고 글에서 소개된 겐낭인셰키(幻庵因碩)로 개명한다. 그리고 가문을 이을 자는 혼인보가에서 슈와에게 밀려난 죠와의 친아들 道和로 정한다.


[ badukdol / drago@baduk.o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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