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루, 너만 믿는다

김 이 식

“안 팔라카드라. 그래서 달라는 값에서 칠만 원 더 주었다. 개장사 지가 싸움개로 키울라 하데. 내가 더 단기라.”

형은 어제 새카만 도사견 한 마리를 집으로 가져왔다. 덩치는 작았지만 꽤 다부진 몸매였다. 나와 형수는 빙그레 웃었다. 형이 또 사람들의 감언이설에 혹했지 싶었다. 어쩌면 형은 자신의 개인 취미를 위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거금을 들여 산 것인지도 모른다. 순전히 자신의 만족을 위한. 형은 도사견을 손에 넣어서 그런지 의기양양했다.

“이름은 뭐가 좋겠노. 구루, 어떻노?”

나는 뭐 아무려면 어떠랴 싶어서 승낙의 뜻으로 싱긋이 웃어 주었다. 올봄에 큰 형 내외가 서울로 발령 받아 가버려서, 작은형 내외와 내가 35평 이 층 건물을 다 사용하게 되었다. 큰방은 작은형 내외가 차지하고 나는 갓방 끝에서 독수공방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개집이 내방 가까이 붙어있었다. 큰 형네가 키우던 삽살개는 털이 너무 날리고 늙어서 개집에 얼마간의 돈을 물고 주어버렸다. 안락사를 시켰는지 개장국 집으로 흘러들어 갔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비어있던 개집에 구루가 들어왔고, 큰집에 작은형 네도 들어왔다. 이제 큰 집은 사람 사는 집처럼 제법 시끌벅적하였다. 올여름은 유달리 더웠다. 더욱이 구루에게서 나는 고약한 냄새는 나로 하여금 창문을 열려 해도 망설이게 했다. 개 울음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해야 했다. 밤잠을 설친 나는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순간 구루의 눈에서 불이 번쩍하였다. 구루는 근 사흘 동안 밤마다 울었는데 꼭 늑대울음 소리 같았다. 그 눈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깊은 어둠을 간직한 채 과거에 떠나왔던 야성의 들판을 그리워하는 듯 동공 속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야 발목 봐라 직인다. 뭉툭한 게 싸움깨나 하게 생겼다. 목 좀 보레이 짤막하고 굵제. 주둥이는 한 번 물면 안 놓아주게 안 생겼나.”

형은 구루 몸에 좋은 생선대가리를 새벽에 자갈치시장 가서 큰 대야에 가득 얻어왔다.

“참도미 대가리다. 커제.”

대부분 어른 손바닥만 한 고기의 대가리를 잘랐던지 큼직큼직했다.

“어두육미라 했제. 이거 묵으면 살 좀 찔기구만.”

형은 대강 씻어도 될 것을 다섯 번 이상 고기대가리를 씻었다. 형수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

“앗 따! 고기대가리 두 번만 가져오다간 수돗물 다 쓰겠네요.”

물 사정이 안 좋아서 물 물탱크에 받아놓은 물이 다 닳을세라 형수는 은근히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였다. 생선 대가리 고우는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하였다. 어릴 때 닭 먹이로 고왔던 개구리 냄새처럼 식욕이 불끈 솟아올랐다. 햇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 13평 아파트에서 살다가 큰 집으로 들어오니 작은형수도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삼촌, 넓은 집에 살아보이 좋지 예.”

형수는 사람 좋은 무골호인 풍의 웃음을 얼굴에 넘치도록 담았다. 구루야! 형은 구루를 덥석 안더니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저러다 물리면 어쩌려고. 나는 형의 막무가내 기질에 은근히 불안해졌다. 가관인 건 서로 얼굴을 가져다 대고 비비는 통에 형의 작은 머리통이 금방 구루의 주둥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얄궂은 공상도 일어나고 있었다. 구루가 우리 집에 오기 보름 전에 형은 그랜저 중고차 세 대를 매입하려고 브로커 최 씨에게 선금으로 이천만 원을 주었으나 아직 차를 받지 못했었다.

“짜석이 돈 돌려 달라고 하니 내 목을 쪼르는기라. 내가 병신이제. 차도 안 보고 그놈 말만 믿고 돈을 다 주었으니 돈 보고 환장한 놈이 꿀꺽 해버리고 돈 내놓으라니 이렇게 내 목을 쪼른기라.”

형은 손자국이 선명한 목을 내게 들이밀었다. 피멍이 시퍼렇게 들어있었다.

“그러이 내 뭐라 했능기요. 선금만 조금 주고 차 받고 잔금 주라하이 그 단세를 못 참아서 있는 돈 없는 돈 다 퍼줄 때 알아봤다니까요.”

“마누라가 약 올리나. 퍼뜩 개밥이나 퍼라.”

“앗따 사람이 개시도 안 한 밥을 개를 먼저 주어요.”

“암 먼저 줘야지. 구루가 사람보다 낫다. 사람은 거짓말해도 개는 거짓말 안 한다.

밥만 잘 먹여도 살이 통통하게 찌고 터레끼 윤나는 것 봐라 기가 막히제.”

형수도 이래저래 심사가 사나운지 밥주걱으로 솥을 박박 긁고 있었다.

돈 이천만 원은 형이 중고차 장사하여 푼푼이 삼 년 동안 적금을 들어 모은 돈이었다.

적금 타고 형 자신도 형수에게도 조카들 누구에게도 돈 한 푼 안 쓰고 알뜰하게 중고차 매매 자금으로 투입을 했으나, 남 좋은 일만 시키고 말았다.

형은 중고차 장사를 하기 전에는 채소와 과일 장사를 하였다. 일 톤 트럭에 매일 사과나 수박을 싣고 동네를 외고 다니면서 장사를 하였다. 형은 장사를 잘하였고, 눈썰미가 있어서 차 수리도 곧잘 하였다. 화물차 그것도 주로 똥차만 다루다 보니 잔고장이 많았다. 물건을 싸게 사기 위해 산지에 들락거리다 보면 고장이 잦았다. 지방이라 정비소가 주변에 없어서 즉석에서 형이 웬만한 것은 다 고치곤 했다. 형의 장사 머리는 곧 과일 장사에서 중고차 중개인으로 나서게 만들었다.

“당신은 점을 보이 사주에 쇠를 만져야 성공한다고 나와 있어요.”

형수도 형이 돈을 잘 벌자 신이 나서 용하다는 점쟁이 말로 형의 사기를 북돋아 주고 있었다. 과일장사 할 때도 항시 형은 현금을 주머니에 가득 넣고 다녔다. 가난했던 시절을 몸으로 때웠던 형은 주머니가 불룩해야 마음을 놓는 것이었다. 돈도 가지런히 해서 보관하는 것이 아니고 아무렇게나 넣어서 주머니에서 돈을 꺼낼 때 보면 꼭 지폐 한두 장은 땅에 흘리곤 했다. 그러면 주변 상인들이 쓴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김 사장 돈 많은가보네. 땅에 질질 다 흘린다.”

그러면 형은 씩 웃으면서 땅에 떨어진 돈을 별 대수롭지 않은 듯 주워서 주머니에 쑤셔 박곤 했다. 가난해서 초등학교 밖에 못 나온 형은 돈에 한이 맺혀 나 돈 많이 있소 하며 세상 사람들에게 과시하고 싶어 했다. 학벌에 대한 콤플렉스를 돈이 많은 사람으로 보임으로써 다소 자신을 위안하는 것이었다. 적금을 타고 중고차 매매상사에 나가서 얼마나 자랑을 해대었는지 돈 냄새를 맡은 최 씨가 형 돈을 꿀컥 삼켜 버린 것이었다. 차 달라고 하면

“김 사장 왜 이래요. 다 아는 처지에. gg영업 사원 박 군이 그랜저 세 대 준다고 했는데 소비자가 신차 매입을 꺼리는 통에. 뭐 업숀이 마음에 안 든다나.”

형은 돈만 날리고 차 대신 목에 시퍼런 손자국을 달고 다녔다.

“열흘 만 있으면 개싸움이 열린다. 우리 집 뒷산 무덤 두 개 있제. 그기서 철망 쳐놓고 할끼다. 토요일 날 학교 일찍 마치면 니도 놀러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