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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바둑인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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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바둑인물사
17년 작가 인생을 송두리째 불살라 박경리의 「토지」와 함께 한국문학사에 길이 남을 불멸의 역작「혼불」을 피워 올린 작가 최명희. 5부작 전 10권짜리 「혼불」을 완간한 최명희는 결국 펜과 함께 마지막 날숨마저 놓고 말았지만 그녀의 치열하게 타올랐던 작가 혼 만큼은 영원토록 기억될 것이다.
평생을 바쳐 하나의 화두에 매달리기란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니다. 그것도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대중의 사각지대에 있는 것일수록 그 어려움은 더하다. 최명희의 「혼불」을 읽는 것은 그래서 가장 한국적이라는 문장과 삶에 대하기에 앞서 행간에 감추어
진 한 인간의 땀을, 영혼을 읽는 일이다.
바둑계에도 몇몇의 「혼불」이 존재한다. 바둑, 그것도 전혀 세상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바둑사에 대해 일평생을 건 ‘딸깍발이’들이 엄존한다.「한국바둑인물사」의 저자 권경언 六단은 그 몇 안 되는 딸깍발이 중의 대표적 인물이다. 현역 프로기사이자 바둑사학자인 권六단이 전혀 ‘돈’이 안 되는 바둑사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지난 73년. 당시 경향신문에 바둑야화를 연재하면서 소재를 찾기 위해 자료를 뒤적이던 그는 자연스레 바둑의 옛 자료들을 접하게 되었고, 이후 바둑사에 관한 한 ‘오타쿠(편집증에 가까운 매니아층)’가 되어 버렸다.
「한국바둑인물사」는 이처럼 한 노객의 일평생과 맞바꾼 노작이다. 노객은 거꾸로 세운 듯 아스라한 벼랑 끝에 서서 안개 속에 감추어진 한국바둑의 여명을 향해 손을 너울거린다. 그리곤 그 안개 속으로 일엽편주를 몰고 들어가 손을 내밀어 열매 하나 하나를 소중히 수확한다.
밀리언셀러와도 바꿀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바둑인물사」는 쉽게 읽힌다. 마치 역사서를 읽듯, 위인전을 읽듯 흥미진진하다. 오래도록 신문관전기를 연재하고, 각종 지면에 바둑글을 기고해온 노객의 필력은 그 촌철을 감추고 버들강아지의 부드러움으로 독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애무한다. 슬슬 읽히지만, 그래서 얻어지는 지식의 양은 망외의 소득이라 돌리기에 미안할 정도이다.
「한국바둑인물사」를 출간한 한국기원 출판부의 이영욱 부장은 「한국바둑인물사」를 두고 ‘베스트셀러가 될 수는 없지만 밀리언셀러와도 바꿀 수 없는 책’이라 평했다. 「한국바둑인물사」가 한국바둑출판사에서 지닌 무게를 함축한 평이 아닐 수 없다.
「한국바둑인물사」는 과거 월간『바둑』에 「동강만필(東岡漫筆■동강은 권六단의 아호)」이란 제목으로 연재된 글과 지금은 폐간된 바둑주간지에 실린 연재물을 재정리하고 보완하여 단행본으로 꾸며졌다. 당시 월간『바둑』 편집장이었던 이광구 씨는 “불과 4쪽에 불과한 지면이었지만 연재 당시 애독자 인기순위 1, 2위를 다툴 정도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회상한다.
「한국바둑인물사」는 삼국시대부터 구한말, 일제시대에 이르기까지 정사와 야사를 넘나들며 한국바둑사를 꿰뚫는다. 역사에 등장하는 숱한 인물들의 이야기와 바둑시(詩), 문(文), 시조(時調) 등을 모아 시대별, 연대순에 따라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이를 위해 저자는 남산도서관의 수장고와 고서점을 내 집처럼 순례했고, 방대한 조선왕조실록의 세계를 탐사했다. 그리고 그의 작업은 오늘도 ‘ing'이다. 권六단의 말대로라면 조만간 「한국바둑인물사」의 파워 업 버전의 등장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양형모 기자/ryuhon@badu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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