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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대면 쫙-갈라질 친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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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대면 쫙-갈라질 친구지!
2003-02-11 조회 9782    프린트스크랩
언제였던가, 가까운 문용직 4단에게 물었다.

'최규병 사범 어때?'

다른 사람 같으면 '무엇이 어떠냐는 것이냐'고 되물어옴직도 한데, 문4단은 묻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사람처럼 즉시 답을 준다.

'칼을 대면 쫙, 하고 갈라질 친구지!'

아아, 이렇게 선연한 표현도 있었구나. 그 '칼을 대면 쫙, 하고 갈라질 친구'가 속된 말로 요즘 뜨고 있다.

세계최강을 자랑하는 한국바둑계에서, 정상의 트라이앵글(이창호, 조훈현, 유창혁 9단)을 제외하면 그야말로 1, 20대 기사들의 경연장이 되다시피 한 이 땅에서 해묵은 '30대 기수론'의 기치를 들고 일어선 것이다.



8월 23일(2001년) 현재 12연승 포함 23승 5패, 승률 82%. 삼성화재배, 농심 신라면배 세계대회 연속 진출. 특히, 82%의 승률은 유일무이한 기록이다. 80%대의 승률을 유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것은, 전체 176명의 기사 중에서 승률 70%를 넘긴 기사가 18명에 불과하다는 사실로써 짐작할 수 있다.

최규병 9단은 63년생(38세). 걸어야 할 인생의 길로 측정하면 이제 반환점에 이르렀거나 막 돌아섰을 나이지만 대성의 시기를 20대 이전으로 잡는 바둑에서는 이미 환갑으로 접어든 것인데 어떻게 이런 성적을 거둘 수 있을까.

원인 없는 결과란 없는 법이다. 지극히 평범한, 그렇기 때문에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의 일상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것을 알게 된다.

지극히 평범하기 때문에 결코 평범하지 않다? 그 무슨 궤변이냐고? 천만에, 세상에 변함 없이 평범한 일상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삶보다 더 비범한 삶이 어디 있겠나.

언젠가 루이나이웨이 9단의 인터뷰 때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도 나이 스물, 서른을 넘기면 점차 잡념이 많아진다. 더구나 두 아이를 둔 생활의 가장으로서, 다양한 인과관계로 얽힌 성인으로서의 삶은 어떤 하나의 목표에 전력을 기울여 몰입하는 일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바둑계에서 최규병만큼 선, 후배의 친교가 깊고 넓은 사람도 드물다. 그러면서도 사교에 필요한 테니스, 골프, 마작, 카드 등 바둑 이외의 스포츠나 게임을 일체 즐기지 않고 바둑 외길에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은 차라리 불가사의하다.

오직 바둑으로 일관된 그의 단순, 명료한 삶은 그런 불가사의한 절제의 일상을 지속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평범하지 않다는 얘기다.

그 불가사의함의 비밀은 녹번동 '최규병 연구실'에 가면 조금 풀린다. 20평 남짓한 실내, 벽에 기대어놓거나 칸막이로 세워둔 책장 12개에 꽤 오랜 기간 모아온 것으로 보이는 고금의 바둑서적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모두 탐독했을까. 묻지 않고 답하지 않았으니 그건 모르겠다. 하지만, 자산의 소장 가치를 따져 고서적을 수집하는 콜렉터가 아닌 다음에야 어찌 모으기만 했을까. 사실, 연구실에서 받침대에 책을 펼쳐 세워두고 오로(烏鷺) 삼매경에 빠진 그의 모습을 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어떤 분야의 책이든 사람의 손때를 타며 오랜 기간 묵은 책에는 정신을 고양(高揚)시키는 힘과 향기가 있다. 바로 그 힘과 향기가, 40에 다다른 나이로 10대들의 거센 파도를 헤치고 정상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은 아닐지….

스스로도 '아직은 승부를 해야 할 나이'라고 말하는 그는 분명히 진보하고 있다. 몇 해 전에 본 최규병의 바둑은 강철봉의 이미지였는데 요즘은 푸른 대나무를 연상시킨다.

'상대가 싸움을 걸어주지 않으면 맥이 풀린다'는 치열한 전투의지는 굳센 강철봉의 직선 이미지 그대로인데 요즘은 꺾일 듯 굽혔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굴신(屈伸)의 탄력을 보여준다.

그것이, 자신의 끊임없는 정진으로 한꺼풀을 벗어 던진 경지에 이른 것인지, 한때의 운인지는 아직 단언할 수 없지만 달라지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고이지 않고 흐르는 물과 같이….

한가지, 알 수 없었던 것은 승부사로서는 갖기 어려운 그의 좌우명. '생이불유(生而不有)'라, '살면서도 드러내지 않기를, 존재하지 않은 듯 한다'는 뜻인데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서 그 마음의 한 자락을 찾았다.

만물작언이불사 생이불유(萬物作焉而不辭 生而不有). 그러니까 '천하만물을 만들어도 떠들어 자랑삼지 않으며, 살면서 드러내지 않기를 존재하지 않은 듯 하겠다'는 얘기? 아하, 그렇군. 이건 승부사 최규병이 아니라 먼 길을 준비하는 자연인 최규병의 좌우명인 듯하다.

이런, 이런 그러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떠랴. 내게 다행인 것은, 그가 금욕과 절제의 승부사이기 이전에, 내성적이면서도 파안대소하는 술자리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라는 것, 또 그 즐거움을 기꺼이 상대에게 감염시키는 법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2001-08-25
( 손종수 일간스포츠 관전기자 / wbstone@baduk.or.kr )

○... 30대 후반으로 올라가는 기사중 성적이 탁월한 사람은 역시 최규병 9단과 양재호 9단이다. 두 기사가 성적을 내면 '386기사'라는 표현을 여기저기에서 많이 쓰기도 했으나 적합하지 않다는 반론도 제법 있어서 요즘은 많이 안쓰인다.

●... 이 칼럼은 먼저 다른 매체에 실렸던 것을 다시 사이버오로에 싣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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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0307 |  2006-07-07 오전 1:00: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이창호九단앞에만 서면 작아지시던데,분발하셔서 반집만 남기세요^*^  
상고하수 |  2020-07-05 오후 11:50:1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q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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