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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산, 손의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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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산, 손의 표정
2003-01-10 조회 7915    프린트스크랩
3백만이라고도 하고 5백만이라고도 한다. 지금은, 조금도 과장된 숫자가 아닌 것 같다.

만천하 바둑 팬들이 자나 깨나 고심초려하는 것은, 어떻게 진일보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그것도 무슨 특별한 비결을 원한다. 그런데, 바둑에서는 일보가 천리만리-

바둑을 놀면서 가끔 그말이 생각난다.

옛날 아리스토텔레스라던가 하는 철학자가 "손은 머리의 연장"이라고 했다는 말 - 아니 어쩌면, 머리는 손의 연장"인지도 모른다. 어떻든, 손처럼 교묘한 기계는 없다. 한자의 손수변 글자는, 한 자 한 자가 손의 생동을 나타내는데, 글쎄 몇 자나 될까? 아마 4,50자나 되겠지, 하고 조그만 옥편을 펼쳐보니까, 4,50이 뭐냐, 대충 235자나 된다. 큰 옥편은 좀 더 나을지 모른다.

2획에 타(打)자부터, 21획에 람(攬)자까지, '타'는 두드릴 타(打), '람'은 묶을 람(攬) 또는 거둘 람(攬), 그렇다면 타는 바둑을 두는 동작, 람(攬)은 바둑을 두고 나서 돌을 거두는 동작이다

. 그 사이에 천태만태가 잇다. 235자를 쭉 따라가면서 바둑의 손짓을 나타내는 글자를 가려뽑아 나열해 보는 것도 재미가 있겠지만, 너무 번잡하니까 그만 둔다.

여하간, 바둑을 수담(手談)이라 하는 것은 과연 옳은 말이다.

바둑을 둘 때에는 '머리'와 '손'이 같이 사고(思考)를 한다. 그야 물론, 머리가 결정을 하고, 손이 돌을 갖다 놓지만, 돌을 주무르거나, 판위에 방황할 때는 손이 직접 사고를 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손이 직접 사고를 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머리의 사고가 손의 동작에 나타나는 것만은 사실이다.

바둑은 한 수 한수, 한 점이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그 의미 내용에 따라서 손의 동작이 다르다.

두 칸 벌릴 때는 침착하다.
중앙으로 한 칸 뛸 때는 경쾌하다.
끊을 때는 단호하다.
이을 때는 조심스럽다.
달아날 때는 탈토(脫兎)같고,
쫓을 때는 분마(奔馬)같다.

그리고, 사람다 얼굴표정이 다른 것처럼, 손의 표정이 다르다.

손도 표정을 한다. 따라서 기력은 손의 동작에도 나타난다. 얼마나 두는지, 바둑 두는 얼굴을 보면 대개 짐작이 가지만, 얼굴보다 손이 더 확실하다.

나는 프로기사의 대국을 더러 관전한 일이 있는데, 반면의 이치, 동정은 잘 모르면서도, 기사의 태도, 얼굴, 손의 움직임에서 인상을 받는다.

보통, 얼굴은 무표정이다. 깊은 호수는 바람이 불어도 잔잔한 것처럼. 머리 속에서 사고가 천신만고(千辛萬苦)할수록 얼굴은 더욱 무표정이 된다.

얼굴에 비하면, 차라리, 손이 약동을 한다. 한 수 한 수, 한 점 한 점의 의미가 은연중에 엿보인다. 희노애락(喜怒哀樂)을 얼굴은 가려도 손은 숨기지 않는다.

아마추어도 그렇다. 그게 더 심하다. 아마추어도 얼굴은 되도록 평정을 지키려 노력을 하지만, 손은 도저히 수양이 부족하다. 자칫 손이 먼저 나아간다.

그런데, 그 사람 기력하고는 별도로, 손의 동작이 특별히 우아한 사람이 있고, 특별히 소박한 사람이 있다.

기품(棋品)이 향상하면 절로 우아해지기 마련이지만, 일부러 손을 아름답게 놀리는 것은 위험하다 - 대개의 경우 실수는 그 순간에 나온다.

성인이 교언영색 선의인(巧言令色 鮮矣仁)이라고 한 것처럼, 멋을 부리거나 공을 서두르거나 하면 반드시 과오를 범하게 된다.

결국, 바둑이 진일보하는 비결은, 현재의 자기 수준에서, 손을 소박하게 놀리는 데 있는 것 같다.


(1977 민병산 閔丙山 /수필가 )

※ 참고하세요-단어해설(From empas)

○.. 탈토(脫兎) :
우리를 빠져 달아나는 토끼란 뜻으로‘동작이 매우 재빠름’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분마[奔馬]
빨리 닫는 말을 지칭,‘세찬 기세’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

○..천신―만고(千辛萬苦)
마음과 몸을 온 가지로 수고롭게 하고 애씀. 천고만난(千苦萬難). 천난만고(千難萬苦)

●..희로애락[喜怒哀樂]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 사람의 온갖 감정을 이름.

○..巧言令色 鮮矣仁
'논어(論語)'의 학이편(學而篇), 양화편(陽貨篇)에서 공자가 거듭 말한 것으로 "교묘한 말과 아첨하는 얼굴을 하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 적다(巧言令色鮮矣仁)"는 뜻이다. 즉, 말을 그럴 듯하게 꾸며대거나 남의 비위를 잘 맞추는 사람, 생글생글 웃으며 남에게 잘 보이려는 사람치고 마음씨가 착하고 진실된 사람은 적다는 뜻이다.

巧 : 공교로울 교
言 : 말씀 언
令 : 하여금 영
色 : 빛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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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돌도기 |  2006-09-07 오후 3:18: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손 동작에 대한 상세한 해설을 보게 되어 모처럼 머리속이 정리됨을 느낌니다. 감히 가일수 한다면... 拙은 생각보다 손이 먼저 나감으로 빚어지는 결과로서 바둑이나 인생이나 경계해야  
깨구락지 |  2006-09-22 오후 10:05: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결국, 바둑이 진일보하는 비결은, 현재의 자기 수준에서, 손을 소박하게 놀리는 데 있는 것 같다." 명언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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