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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최후의 날, 바둑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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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최후의 날, 바둑돌
2002-12-31 조회 12567    프린트스크랩
"여기서 더 이상 갈 곳이 어디란 말인가?"

최인호의 장편소설 '잃어버린 왕국'을 보면, 백제 최후의 날을 예감하는 계백장군이 자신과 휘하 부대들이 모두 죽게되는 마지막 전투에서,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며 후퇴를 청하는 자신의 젊은 부장에게 이러한 말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짧은 대화가 오간 후 계백을 지키려 애쓰던 부장이 먼저 숨을 거두고 뒤따라 계백이 적의 창칼에 목숨을 빼앗긴다. - 소설 속의 이 말은 젊은 부장이 계백에게 먼저 했던 말이다.

전투가 시작되기 훨씬 전, 전가족을 몰살시킨 다음 백제 최후의 군대를 이끌었던 계백은, 자신을 따르는 전도 유망한 젊은 부장에게, 모두의 죽음이 뻔히 보이는 전장에서 몸을 빼 가족과 함께 탈출할 것을 명령한다. 노장이 아끼는 젊은 부장을 살리려 한 것이다.

그러자 계백에게 충성을 바치는 이 푸르디 푸른 사내는 명령을 거부하며 함께 싸우다 죽을 것임을 천명하는데, 명령을 받은 바로 그 순간 계백에게 이렇게 말을 했었던 것이다 . - " 더 이상 갈 곳이 없습니다."

소설속에 비감하게 표현된 백제의 마지막 전투후, 20여만에 가까운 나-당 연합군에게 백제의 수도 사비성(現 부여)은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마지막 왕이었던 의자왕과 태자융은 포로가 되었으며 백제는 망했다(서기 660년).

백제는 이러한 최후의 순간이 오기까지 무엇을 했었을까?

마냥 놀기만 한 것은 아니었을 텐데, 흥미롭게도 당시 삼국시대 말의 정치외교적인 분야에서 백제의 노력이 엿보이는 흔적이 일본의 나라(奈良)현 도다이지(東大寺)에 있는 쇼소인(正創院)에서 발견된다.

백제상아바둑돌백제의 군사 외교적인 노력을 내재한 그것은 옛날 일본 성무제(聖武帝=서기 740년대의 인물)가 사용했다는 목화자단기국(木畵紫壇碁局)과 홍아(紅牙=붉은 상아)·감아(紺牙=감색 상아)라는 상아 바둑알이다. 쇼소인의 기록에 의하면 이 고급 바둑판과 상아 바둑알은 백제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선물이었다고 한다.

문화재와 예술에 대한 무지한 감각으로도, 한눈에 국보급의 문화재임이 느껴지는 고품격 바둑용구를 일본에 준 까닭은 무엇일까?

[정치적인 배경]
-목화자단기국은 정치적 선물

백제는 원래 서울 부근에서 터전을 닦고 세를 확장한 왕조이다. 개로왕시절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북쪽의 고구려에게 국왕이 사로잡혀 피살당하고 수도를 빼앗긴후 절치부심하던 백제는 의자왕의 아버지인 무왕시절, 신라와 일시적인 동맹을 맺어 한강유역의 땅을 회복하는데 성공하지만 신라의 배신 등 여러 이유로 그 땅을 지키지 못하였다. 말기의 백제가 신라에 대해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의자왕의 정책기조는 그 아버지 무왕의 외교정책을 계승한 것이다. 중국의 왕조와 친분을 쌓아 고구려를 견제하고 한반도 내륙으로는 백제보다 약소국이었던 신라의 영토를 빼앗아 한강유역을 왕국의 실지로 회복하는 것이 그 토대였다. 그 정책의 일환으로 이전부터 교류가 활발했던 일본땅[倭]에도 정치 문화적인 지원이 신라나 고구려에 비해 왕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무왕의 뒤를 이은 의자왕의 정책도 부왕의 정책과 크게 틀리지 않았다. 통치기간 내내 한강유역의 진출과 영토확장을 위해 신라를 괴롭혔던 것이다. 이에 생존의 위협을 느낀 신라가 기댈 곳은 고구려와 당나라인데 국경을 맞대지 않은 당나라와의 군사 외교적 동맹관계가 신라의 필사적인 과제가 돼버렸다. 또한 당나라의 입장에서 보아도 자신들과 적대적 관계인 고구려의 침공을 위해서 고구려 후방을 교란할 수 있는 백제와 신라와의 친선은 반가운 일이었다.

물론 백제의 의자왕도 수나라에 이어 동북아의 대국으로 등장한 당나라와 친선을 맺고 있었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당나라에 매달리는 신라에 비해 백제의 입장은 당나라와 어느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었으며 신라에 적대적인 태도를 바꾸고 싶지도 않았다. 군사적인 자신감도 있었을 것이며, 당나라 대군이 백제를 공격하려면 험난하고 강맹한 고구려를 지나야 한다는 지리적인 사실도 백제가 독자적인 외교정책을 펴는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의자왕은 즉위 12년인 652년 당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국제 관계를 모색한다. 신라에 빼앗은 땅을 돌려줄 것을 요구하는 당을 견제하기 위해 고구려와 협력을 다지고 해양의 후방이랄 수 있는 倭(왜=일본)에 정치 문화적인 지원을 통해 군사 외교적인 축을 마련한 것이다.

그리고 이때 왜와의 지속적인 관계유지와 돈독한 군사적 협력을 위한 정치적 선물이 바로 이 국보급 바둑용구였을 것이라고 유추해 볼 수 있다(그렇지 않으면 이런 국보급 문화재를 일본에 선물할 이유가 없다. 가령 왜와 백제가 동시에 군사를 일으켜 신라와 대규모 전쟁을 벌이는 것을 가상해 보자).

신라를 포위 압박하는 이 외교축은 몇 가지 전제가 있다. 첫째는 신라가 고구려, 특히 당나라와 활발하게 교류하지 못하도록 방해할 것, 둘째는 신라를 크게 공격할 시에 고구려와 당나라, 특히 당나라 군대가 백제를 공격하지 못할 것 등이다. 첫 번째는 신라의 군사기지들을 공격하면서 해결하 나갈 수 있고, 고구려의 공격은 외교관계로 막고 있으니, 당나라 군대의 기습만 막는다면 백제의 이 외교 정책은 성공할 수 있다.

그런데 백제는 당나라와 신라의 대규모 연합 침공을 간과했다고 보여진다. 확률은 낮을 지 몰라도 백제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일 것이다. 아울러 신라의 뛰어난 외교가 김춘추와 군사전략가 김유신의 능력, 고구려에 대해 사무친 원한을 가지고 있는 당나라의 이해 관계가 백제 최악의 시나리오를 완성시켜 나간 것이리라(당나라의 대군은 육상을 통해서 온 것이 아니라 황해바다를 건너 백제에 도달했다).

[결말 그리고 바둑판의 IDEA]

멸망 당시의 백제는 고립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멀리 왜에서는 백제의 위급함을 듣고 원군을 준비했다고 하지만 이미 시간이 늦었다. 당나라가 대병을 일으켰다면 가장 믿을 것은 당나라와 사실상 동북아의 패권다툼을 벌이고 있는 고구려이지만 수나라와 당나라와 연이어 대규모전쟁을 치른 고구려가 백제를 위해 나설 여력이 있었을까?

- 신라의 냉정한 정치적 판단

백제의 멸망은 역사적으로는 한반도내의 국가통합과 관련되어 있다. 신라에 의한 통일은 우리역사에서 사대주의의 출발점이라고도 하지만, 국가의 생존을 위해 김춘추, 김유신등이 추진한 냉정한 국제 전략의 실천과 맞닿아 있다.
화랑정신과 같은 상무(尙武)정신이 밑받침이 되었다고는 해도 결국 삼국 통합의 요체는 당과 고구려의 패권다툼을 바탕으로 고구려-백제-왜로 이어지는 외교 군사적인 이해관계와 신라-당으로 이어지는 동맹관계의 충돌에서 신라의 정치 군사적인 결단이 더욱 냉정했다는 데에 있다.
앞서 말했다시피 백제-고구려-왜의 동맹이 먼저 신라를 쳤다면 결과는 판이했을 것이나 상대적으로 주변국에 비해 약소한 관계로 국가의 안위에 더욱 필사적일 수밖에 없는 신라가 먼저 선수를 친것이다(백제의 잦은 침입이 신라의 이런 결정을 부추겼을 것이다).

-백제멸망과 상아 바둑돌의 IDEA

백제의 멸망은 요즘 2002년말 대선과 함께 벌어지는 북한 핵문제 있어도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로 이어지는 군사-외교적인 라인이 있고, 한국은 미국과 일본으로 이어지는 군사적인 동맹관계가 있다. 두 축이 은연중에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역학관계에서, 한반도 최악의 시나리오는 무엇일까? 그것은 전쟁이다. 예를 들어 중국이 주변의 민족문제를 압살하며 러시아가 주변국가들을 평정하는 것에 미국이 침묵하고 그 댓가로 북한공격의 암묵적 동의를 받아낸 미국이 막강한 화력을 동원해 북쪽을 초토화한 다음 한국 70만군대의 작전지휘권을 손에 넣어 한-미 연합군이 한반도 북쪽 전역을 압박해 들어가는 그런 것 말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 미국의 공격이 임박했다고 생각한 북한이 청천벽력의 기습을 감행, 한반도 전체가 불바다가 되는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일단 선제공격을 통한 전쟁을 일으킨 다음 주변국의 반응을 보는 방식 말이다.

우리의 선택은 무엇일까? - 현실의 우리는 과거에 멸망당한 백제 만큼의 선택권이라도 있는 것일까? 혹은 국가안위를 위해 천년전의 신라처럼 냉정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일까? - 할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전쟁 발발의 모든 조건을 제거하고 싶은 것이 모두의 마음일텐데 말이다.

백제바둑판과 고양이천년이 더 된 시간전의 백제에서 보내온 바둑판과 상아 바둑알은 그 시대의 복잡한 정치관계를 내포하고 있다. 현실이 천년전의 시간과 같을 수는 없고 상황도 더욱 복잡해졌겠지만 일본 쇼소인에 소장되어 있는 바둑판과 상아 바둑알은 국가간의 이해관계에 대해 많은 IDEA와 생각을 불러 일으킨다.


( badukdol /drago@baduk.or.kr )

○... 백제 멸망 당시 사비성의 낙화암에 떨어져 죽었다는 3천 궁녀의 전설은 후세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당시 백제에는 그만한 궁녀가 없었으며 의자왕은 적어도 타락한 임금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낙화암은 부여 사비성의 부소산성 마지막 자리로써 나당 연합군에 쫓긴 백제인들과 백제군인들이 최후에 함께 모여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만약 그랬다면 그자리에서 절벽까지 몰린 수많은 백제인들이 낙화암밑으로 떨어져 죽었을 것이다.

●... 평화스럽게만 보이는 그림, 목화자단기국에 앉아 있는 능청스러워 보이는 고양이의 모습이다. 이 예술품은 예술의 가치를 넘어 삼국시대말의 역학관계를 함축하고 있는 백제의 흔적이다.

○... 정창원 헌물(獻物)기록에 의하면 상아 바둑알은 백제 의자왕이 선물한 것이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한국바둑 인물사-권경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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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리성 |  2003-12-30 오후 12:43: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삼국이 화평 할수는 없었나? 상아바둑알을 신라에 보냈으면...  
금정도인 |  2004-12-31 오후 1:09: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몇개의 바둑알에도 보는 관점에 따라 이런 역사적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이  
금정도인 |  2004-12-31 오후 1:12: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몇개의 바둑알에도 보는 관점에 따라 이런 역사적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이 놀랍고 글쓴이의 논리전개도 감탄을 금할수 없다  
큰하수 |  2005-07-07 오전 12:11: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당나라에 의한 백제멸명 ..... 우리민족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브레인바둑 |  2005-07-08 오전 3:05: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일본. 동맹의 나라는 될 수 없는 쪽바리다. 한반도 내의 반란군과 연계되는 경우가 더 많다.  
대초원 |  2005-11-06 오후 8:05: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글쓴이가 누군지 왜 안나오죠..논리있고 훌륭한 해석이라 아니 할 수 없군요.  
이정우 |  2006-03-01 오후 5:45: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역사는 이프가 없다합니다. 간과로써 강산이 물들였다면 아무리 뜻이 좋다한들 무슨 의미가 있다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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