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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니]이긴 자가 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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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니]이긴 자가 강한 것이다.
2002-09-14 조회 11666    프린트스크랩
강한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긴 자가 강한 것이다.

위의 말은 일본 현대바둑의 대다수 정상급 기사들을 키워낸 故 기타니 미노루(木谷實) 九단이 승부에 대해 던진 바둑 명언이다. 뭔가 강한 암시나 사연을 포함한 듯한 이말은, 일단 듣는 순간 사람을 감전시킬 듯이 잠시동안 멍하게 만들고 몇가지의 생각을 불러 일으킨다. 짧은 말이지만 일단 매우 멋지고 강렬하다는 생각이 든다.

불현듯 떠오르는 것은 문구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강한 것이라는 것과 이기는 것의 의미이다. 대체 어떤 것이 강한 것이고 어떻게 해야 이기는 것인지. - 승부에서의 확연한 승패와 승패를 가름짓는 강함에 대한 잠깐 동안의 뭔지 모를 숙연함 같은 것도 괜히 느껴지고 말이다.

이 말의 배경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 기타니 미노루를 간략히 살펴보자.

기타니 미노루는 한국바둑의 아버지인 조남철 九단의 스승이다. 그후에도 조치훈 九단을 위시한 오타케, 카토 마사오, 다케미야 마사키, 고바야시 고이치등 일본 현대바둑의 전성기를 이끈 쟁쟁한 고수들의 스승으로 '기타니 도장'을 키운 바둑계의 거장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나 그 자신 최정상급의 실력을 갖춘 프로였던 기타니 미노루의 가장 주요한 승부들은 언제나 그의 편만은 아니었다.

기타니는 1930년대의 청년시절부터 카이도마루(怪童丸)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발군의 성적을 올린 독보적 존재였다. 38년에는 일본 막부시대부터 이어진 세습 명인제도의 마지막 명인 본인방 슈사이의 은퇴기념 대국을 통해 '살아있는 바둑 신(神)'의 자리에 있던 명인(名人)을 인간의 자리로 끌어 내린 주인공이기도 했다.

그의 강력한 라이벌로 등장한 것은 신포석을 창안한 동료였던 오청원. 명인 슈사이가 은퇴한 후, 강력한 라이벌로 부상한 5살 연하의 천재기사 오청원이 기타니와 함께 일본 바둑의 쌍벽을 이루자 사람들은 둘 중에 누가 더 센지, 원초적인 질문을 하게 되었다. 결국 두 천재기사의 대결은 요미우리 신문에 의한 치수고치기 10번기로 기획되었다. 당시 7단이었던 두 기사의 십번기는 1939년부터 시작되었다.

십번기에서 기타니 미노루는 참담하게 패했다. 한판,한판 승부의 질적인 내용을 떠나 1승 5패라는 참혹한 성적이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그 결과 기타니의 치수는 선상선으로 떨어지게 되어 일본바둑의 1인자는 곧 바로 오청원으로 인식되었다. 이후 기타니는 일본 최초의 타이틀제로 정착한 본인방전에도 3번이나 도전했다가 모조리 실패해 결국 바둑계에서 정해진 틀에서는 제대로 된 1인자가 돼보지 못하는 불운을 겪었다.

그는 자신이 길러낸 쟁쟁한 제자들이 바둑계를 종횡무진하는 것을 행복하게 바라 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승부에 대한 회한은 언제나 그의 가슴속에 남아 있었나 보다. '살아있는 기성'이라 불리는 오청원 9단의 평전에는 기타니 미노루에 대한 다음과 같은 말이 실려 있다.

기타니의 말에는 오청원과의 십번기에 패배하고 세차례 본인방 도전에 실패하여 결국 바둑계의 정점에 서지 못했던 불운에 대한 회한과 함께 싸움의 원칙을 겸허하게 인정하는 마음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다. - (에자키 마사노리著, 오청원 스토리)


강한 놈(者)이 이기게 되어 있는 것이야 - 조훈현

98년 6월 혹은 7월, 왕위전 도전기 혹은 패왕전 도전기 였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당시 조훈현 9단은 패왕전 도전기에서 바야흐로 정상을 위협하는 신예강호들의 선두주자였던 이성재 5단(당시)의 도전을 받고 있었고, 왕위전 도전기에서는 타이틀 자인 이창호 왕위(王位)에게 조훈현 9단이 도전하는 입장이었다. 지키는 것이나 빼앗는 것 어느 것도 별로 쉽지 않은 피곤한 상황이 바로 조훈현 9단이 처한 입장이 아니었나 싶은데 이런 이유 때문인지 조훈현 9단의 심기는 그리 좋지 않아 보였었다.

대국이 점심시간인 1시가 되면 보통의 도전기에서는 한국기원에서 미리 식사장소를 정해놓고 대국자와 관계자(기록자,입회인, 진행자, 필자등)들이 편하게 식사를 할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한다. 마침 기억이 애매모호했던 그날의 점심에는 상대대국자(아마 이창호 9단 이었던 듯)가 다른 자리로 식사를 하러가서 대국자인 조훈현 9단과 입회인만이 단촐하게 식사를 하게 되었다.

조9단의 심기(心氣)는 그날 아주 안좋은 것은 사실이었다. 피곤해 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보통 조 9단과 같은 정상급 기사들은 한국기원의 사무나 행정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는 일이 별로 없다. 큰 승부가 많기 때문에 시시콜콜한 일에 대해 관심을 주느니 주요대국에 대한 컨디션을 조절하는 것이 더 낮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조 9단은 갑자기 4월 30일에 은퇴했던 최고령(만88세) 현역 기사였던 김태현 4단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 "김태현 선생의 은퇴식은 한국기원에서 직접 하는가?"
- (어리벙벙)....네? 네.. 글쎄요, 아마 대전에서 친분이 있는 기사분들과 은퇴식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조9단은 계속해서 왜 그러한 큰 의미가 있는 분의 은퇴식을 한국기원 대회장등에서 공식적으로 하지 못하느냐고 차근차근 따져 물었다. 당연히 그런 기획을 한국기원 사무국에서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조훈현 9단의 음성은 평소에도 톤이 약간 높은 편인데, 이날 따라 조금 더 높았다. 무엇인가 평소 맘에 들지 않던 부분이 많이 있었는데 불현듯 김태현 선생에 은퇴에 대해 느꼈던 부분을 이야기 하는데서 일종의 감정이 터져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 그런데 왜 나한테 자꾸 그러지?...오늘 동네북 되는구낭... - TT;;)

이 때 입회인이었던 조훈현 9단과 비슷한 연배의 기사분이 어색한 분위기를 누그러 뜨리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 일본에서 대삼관의 위업을 달성하고 있던 조치훈 9단과 세계최강인 이창호 9단이 이틀동안 제한시간 8시간으로 두는 번기를 벌이면 결과가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 " 조국수, 왜 그래요? 그만큼 얘기 했으면 됐어요. "
- " 그런데 말야. 일본의 조치훈 9단 말야 , 세계기전에서 성적이 잘 안나오는 것은 제한시간 때문이겠지(3시간). 이창호 9단과 8시간 번기를 두면 어떨지 말야?"

조금 부연 설명을 하자면, 당시 조치훈 9단이 일본바둑계에서는 정상의 행보를 보이면서도 세계기전에서 큰 활약을 보이지 못한 것에 대해 국내에서는 100미터 주자인'스프린터'와 42km를 달리는'마라토너'의 비유를 통해 당연히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의견도 바둑잡지에 소개가 되곤 했었다.

그런데 이 질문이 되려 조 9단의 심기를 한 번 더 자극하는 결과가 되고 만 것 같았다. 아무튼 강하고 높은 톤의 답변이 들렸다.

-"강한 놈(者)이 이기게 되어 있는 것이야"
-"무슨 놈의 스피린터! 무슨 놈의 마라토너! 속기건, 3시간짜리건, 8시간이건, 일년짜리건 강한 놈이 이기는 거야. "

잠시 약간의 침묵이 흐르다가. 입회인이 다시 조9단이 일본에 가서 타이틀을 전부 따보라는 등, 이창호를 파견하면 큰일 나겠다는 등. 이러저러한 농담을 던져서 분위기는 좀 더 화기애애 해졌다. 따지고 보면 조훈현 9단이나 이창호 9단은 벌써 세계기전에서 여러번 우승을 해서 그 강함을 검증받았는데, 제한시간의 차이때문에 그렇다느니, 3시간에 적응이 안돼 그러느니 하는 소리에 조 9단은 몹시 짜증이 났었던 듯하다.

사실 정점에 가장많이 올랐던 사람들인 이창호 9단과 조훈현 9단을 제외하고 자꾸 일본 바둑과 그 강함을 비교하려 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자기 폄하일지도 모르고 말이다.


[REVIEW] 1인자와 2인자의 시각 비교.

굳이 비교를 하려 한 것은 아니었지만, 기타니 미노루 9단의 어록과, 오청원 9단과 같은 절대무적의 1인자로서 바둑계의 정점을 30년가까이 점하고 있는 조훈현 9단의 말을 같이 써놓게 되었다. (조훈현 9단의 말은 사석에서 지나는 대화로 한 것이라서 본인은 기억도 전혀 못 할지 모른다.) 하지만 정점에 서기를 원했지만 실패한 사람과 절대강자의 자리를 지켜온 사람의 말은 좋은 대비가 될 수 있기에 같은 자리에 배치를 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비교적 단순한 의미에서의 강한 자가 어떤 여건이라도 승리할 경우가 많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것이 권력이든 어떤 형태의 것이든 말이다. 그리고 1인자는 한명 뿐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고 말이다.

불특정의 누군가에게 경쟁에서 밀리거나 자신이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했을 때 그 아쉬움도 크고 자신의 능력과 의지 보다는 주변의 환경을 탓하기도 한다. 혹은 그것이 자신의 최선을 다한 것일 때 정말이지 가슴에 오래 오래 남을 것이다. 그래서 - 기타니의 말이 처음 보는 사람에게 무엇인가 깊은 느낌을 주는 것은 우리들 대부분이 1인자이기 보다는 2인자에 더 가깝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대부분은 그러한 경험을 더 많이 하게 될테니까.

말하자면 우리들 자신이 1인자가 아니기에 1인자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던 기타니 9단의 말이 우리에게 강하게 어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98년도에 조훈현 9단은 왕위 도전에는 3:2로 실패했으나, 패왕전은 2연패뒤 3연승으로 타이틀을 지켜냈다.
●... 김태현 4단의 은퇴식은 김태현 선생의 고향인 대전에서 예정된 대로 열렸다. 그리고 김인 9단이 한국기원 대표로 참석해서 은퇴의 자리를 같이했다.

[ badukdol / drago@baduk.o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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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산21 |  2006-01-12 오전 8:57: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좋은글이다. 김태현 9단의 은퇴식이 한국기원에서 성대히 치러졌으면.... 전통은 내려오는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블로우 |  2007-02-10 오후 11:06: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기타니 선생의 말은 운명론적인 뉘앙스가 있는 것 같고 조국수님의 말에는 서부 개척시대의 정신이 있는 것같다는 느낌이 옵니다. 강한놈은 정해지지 않았고 시시로 만들어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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