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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 밀리는 바람에 승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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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 3월 17일 제1기 기성전 본선리그 제1국 장수영 八단과 백성호 七단 간의 대국이다. 당시 기성전은 국내 최초의 억대기전으로 출범, 화제를 모았다. 두 대국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 대국, 무려 46번에 달하는 패싸움 끝에 308수만에 승부가 가려졌다.
결과는 흑을 들은 백七단의 반집승. 어려운 바둑을 이긴 백七단이 진땀을 닦고 있는데 장八단은 뭔가 착오가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고개를 좌우로 갸우뚱하며 "그럴 리가 없는데…"를 되뇌인다.
이어 간단한 손가락복기가 막 시작될 즈음 기록자가 별안간 "앗!"하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손가락으로 흑집 한가운데를 가르켰다. 모두 놀라 자세히 보니 '아, 글씨' 흑돌 하나가 엇비스듬히 포개져 있었다.
결국 승부는 흑 반집승에서 백 반집승으로 창졸지간에 돌변하고 말았다. 실수로 바둑돌을 잘못 메워 미안해하는 장八단과 어안이 벙벙한 백七단, 그리고 졸지에 승패를 뒤바꾸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기록자, 구경하던 주변 사람들 모두 이 희한한 사건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몇 년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강훈 九단과 김동면 六단의 대국. 막판 혼전이 되는 바람에 종국을 하고 난 다음 계가를 할 때까지 승부의 향방을 짐작하지 못했다. 결과는 김동면 六단의 1집반승.
그런데 옆에서 바둑을 구경하던 김일환 九단이 계가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돌이 한 줄 밀렸다는 것이다. 집을 짓고 세는 과정에서 돌이 옆으로 밀려간 것이다. 그 바람에 계가가 뒤집힌 것이다.
다행히(?) 옆에서 이를 지켜본 기사가 있었길래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계가 실수로 바둑 승패가 뒤집힐 뻔했다. 여기서 문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만일 서로 모르고 지나쳤으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옆에서 말한 것을 훈수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만일 이런 경우 모르고 지나치면 승패는 서로 확인한 대로 한다. 다만 옆사람이 말한 것은 바둑룰 상 제3자 개입이므로 안된다. 이것도 일종의 훈수로 제3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부칙 제4조 대국분쟁 3항) 규정은 그렇지만 대국 당사자가 모두 명백한 실수라고 인정하면 승패는 실제 승부대로 하는 것이 관례다.
바둑룰에는 제3자 개입을 금하고 있다. 그것은 훈수 때문에 만든 조항이고 대국당사자는 가만히 있는데 엉뚱한 3자가 개입하면 문제가 자칫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둑내용과 관련된 훈수가 아닌 이상 받아 들여지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 월간바둑 이성구 편집장 / stlee@baduk.o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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