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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기의 달인이 시간패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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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읽기 착각으로 실격패한 일도 있었다. 90년 10월 7일 한·일 TV속기전, 일본에서는 관서기원의 우주류 소노다 유이치(苑田勇一) 九단과 떠오르는 별 유키 사토시(結城聰) 六단이고 우리나라는 서능욱 八단과 당신 41연승의 신기록을 작성한 여드름소년 이창호 四단. 사건은 이四단과 유키六단전에서 벌어졌다.
이四단이 초반부터 강공책으로 앞서가자 유키六단이 96수에서 마지막 초읽기를 넘겨 실격패가 됐다. 일본의 초읽기 형식은 3회를 주면 처음 초읽기를 할 때 3이란 팻말을 넘기고 2에서 하며 마지막에는 아무 팻말이 없는 가운데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1이란 숫자를 남기고 초읽기를 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유키六단은 초읽기가 한번 더 남은 것으로 착각을 한 것이다. 초읽기 착각으로 인한 대표적인 사건은 97년 KBS바둑왕전 결승3번기 최종국에서 조훈현 九단과 김희중 七단간에 벌어졌다.
30분전에 1패를 당해 1승1패 상황이 된 가운데 '속기의 명수' 김七단이 불리한 바둑을 중반에 역전시키며 승부패가 생겼다. 김七단이 팻감을 쓸 차례. 기록을 맡은 조영숙 初단이 "마지막입니다. 둘, 셋…" 김七단은 둘 생각을 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일곱, 마지막입니다. 아홉, 열!" 그제야 "뭐? 마지막?"하며 팻감을 썼다. 하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뒤였다.
난데없이 실격승을 당한(정확하게는 백 시간초과 실격패가 되는데 기록은 승리한 쪽 기준으로 한다) 조九단은 그저 부처처럼 바둑판만 쳐다보고, 시간패라는 기절초풍할 사건을 만든(?) 김七단은 허탈하게 웃으면 천장만 올려다보고, 초읽기를 해 시간패를 결정지은 조初단은 괜스레 민망해 초시계만 만지작거린다.
TV바둑사상, 그것도 결승전에서 처음으로 시간패가 나온 것이다. 당시 우승상금은 1,000만원이고 준우승상금은 300만원이었으니 단 1초 때문에 700만원이라는 현찰이 공수표가 된 셈이다. 본격기전에서 8분(자신의 소비시간)만에 상대를 제압해 이 부문 신기록을 세우는 등 각종 시간기록을 꿰차며 속기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김희중이 시간패를 당한 것도 큰 이슈였다.
나중 김七단의 말을 들어보니 자신은 초읽기가 두 번 남은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마지막'이 상대방인 걸로 착각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가장 짧은 시간에 벌어진 이 해프닝은 비싼 대가(700만원)를 치른 까닭에 가장 오래 바둑 팬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됐다.
( 월간바둑 이성구 편집장 / stlee@baduk.o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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