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연초록이 진녹색의 잎으로 변해가는 산을 보면서 조훈현 9단의 등산 철학

이 생각났다. 몇 년전 월간바둑의 취재를 위해 평소 산을 자주 오르는 조 9단의 

등산 행로를 동반취재 하기로 약속을 하고 평창동을 찾은 일이 있었다.

등산을 위한 그의 준비는 간

단했다. 물 한통과 수건 하나,

그리고 지금은 없어진 입장료

를 위해 100원짜리 동전 몇

개.(내 기억으로는 800원 정

도 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입

장료를 위해 100원짜리를 따

로 몇 십개 준비해 둘 정도로

자주 산을 찾았다.)

집에서 10여분 걸어가니 북한

산 매표소가 보인다. 북한산

이 뒷동산이라 할 정도로

가까우니 자주 찾기가 쉬울

것이다.                                                                                                          

제비로 알려진 조 9단은 바둑만큼 걸음걸이도 빠르기로 유명하다. 사진 촬영을 위

해서는 피사체보다 최소한 10여 미터는 앞서 가야 하니 쫓아가기도 힘든 걸음 속

도가 벌써부터 걱정이다.

그러나 기우였다. 평시 걸음 속도와는 전혀 틀린, 여류로움까지 느껴지는 등산 속

도였다.                                                                      

요즈음 주말이면 등산복 차림의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산이라도 오를라 치면

줄을 서서 올라가야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산을 찾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을 찾

아 그 속에서 지친 삶을 위로 받고 건강도 도모하니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자연을 바라보거나 쉬러 가는게 아니라 오로지 건강만을 위해 달리기 경주

를 하듯이 산을 오르내리는 것보다는 등산로 옆에 피어 있는 샛노란 제비꽃, 양지

꽃 등 작은 야생화에게도 말을 걸어 보고 무성한 오리나무숲속의 낙엽도 밝아 보

면서 자연을 느끼고 삶을 느끼는 것이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크고 작은 산을 정복했다는, 꼭대기에 올라 봤다는 이력만을 얻기위한 ‘피크 베거’

가 되지 말아야겠다.

 속도를 올려 취재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조 9단이 코피

를 쏟았다. 오버페이스를 한

것이 원인이리라. 내 탓인 것

이 분명하기에 죄송스러운 마

음에 손수건을 내밀었다.

집으로 돌아와 깨끗한 손수건을 기자에게 내밀며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영광이다. 바둑황제가 쓰던 손수건을 얻다니...                                                  

조국수님! 기회가 되면 손수건에 사인도 부탁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