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1.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의 비밀

2. 기성유수고송관도인(碁聲有水古松館道人)

3. 화기계(畵碁契)

당대의 발군의 미술사학자 '오주석'이 김홍도와 더불어 조선후기 가장 비중 있는 화가로 주목하고 있는 '이인문'의 행적은 소략하다. 그는 해주 이씨로 일찍 그림을 배워 33세에 종6품 '낭관'을 거쳐 종3품관인 '첨사'를 거쳐 80세까지 살았다는 정도의 연보가 알려졌을 뿐이다.

이인문은 '남공철'이 "깡마른 몸에 눈빛이 형형한 기걸찬 인물이었다"고 한 평과 '신유'의 [경수당전고]에 "선대(순조)를 모신 화원 가운데 묘수는 오직 김홍도와 이인문이다(妙手唯君與老檀制)"라는 기록이 기적같이 남아있다.

이인문이 호를 '고송유송관도인'이라 사용했다 하여 그를 바둑과 연관지어 논지를 전개한다는 것은 어폐가 있다. 오주석도 이 점에서 고민을 하다가 이인문의 바둑 연관을 접었을 것으로 본다. 이인문이 남긴 많은 그림 중 바둑을 연상할 수 있는 작품은 '고송유수첩' 속에 있는 '상산사호도'다. 김홍도가 남긴 '서원아집도'나 '백학관기' 등에 비하면 미약한 것이다.

김홍도는 '백학관기(주=1)에 이렇게 말한다. 소식은 바둑을 잘 몰랐다(蘇子瞻素不解碁) 여산의 백학관에서 서책을 벗삼아 혼자 생활을 할 때(獨遊廬山白鶴館 觀中皆闔戶書寢) 숲속 흐르는 물가에서 바둑두는 소리를 듣고(獨開碁聲於方松有水之間) 바둑을 꼭 배우고 싶어 하더니 끝내 잘 두는 것까지는 이루지 못했다(欣然喜之自余欲學終不解也).

(주= 1. 책표지 배경. 김홍도 백학관기)

김홍도의 '백학관기'나 '서원아집도'는  문인들이 서원(집안 뜰)에 모여 거문고와 바둑을 즐기며 고담준론으로 소일하는 모습이다. 이 그림의 유행은 '소식'이 '황정경' '미불' 등과 당대의 문원 총수였던 '왕선(王詵)'의 집에서 금기서화와 담론을 즐기던 모습을 화원 '이공린'이 그림으로 남긴 것에서 시작된다.

소식의 시와 글씨는 물론 그가 즐겼던 금기(琴碁)와 하다못해 소식이 사용했다는 모자까지 유행할 정도로 소식의 열풍은 중국을 넘어 조선후기의 지식인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런 현실을 '강세황' '김홍도' '이인문' '조희룡' 등 조선의 유력한 화원들이 각종 아집도'를 통해 보여준다.

'이인문'을 비롯한 '김홍도' '최북' '조희룡' 등 조선의 일류 화원들은 모두 바둑을 잘 이해했고 또 잘 두기도 했다. 필자가 일종의 바둑동아리인 [화기계(畵碁契)]란 제목으로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이인문과 김홍도를 중심으로 한 일단의 화원들이 간혹 모여 바둑으로 친목을 도모한 현장 기록을 찾았기 때문이다.

이 기록은 당시대의 화가들의 후원자이자 그림 소비자로 기능하던 한 관료의 문집에서 발견한 것으로 김홍도 이인문은 물론 일단의 화원들의 생활 모습이 생생하다. 예술인으로 생활인으로 고군분투(?)하던 조선의 화원들이 자신들의 고뇌를 바둑으로 씻어내던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화기계'의 자료는 필자가 '조선 화원들의 바둑소통과 여유'라는 제목의 논문을 학회지에 발표할 때 본 칼럼란에 다시 소개하려 한다. 조선의 절대화가 '이인문', 그가 왜 바둑에 그토록 빠졌었던가를 알 수 있는 자료로 한국바둑사의 믿음직한 들보이자 미술사에도 조금은 기여가 되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