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1.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의 비밀

2. 기성유수고송관도인(碁聲有水古松館道人)

3. 화기계(畵碁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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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유수고송관은 소식(蘇軾)의 시 '백학관기'가 출전이다. 소식은 송나라를 대표하는 문인이자 예인으로 중국문학 전반을 대표하는 문호다. 시서화를 아우르는 품격과 '서경' '주역'에 정교한 학술은 예술과 학문 두 분야의 시너지로 나타나 중국의 문인들뿐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문인들의 지향점이 된 사람이다.

소식은 동양의 전통적인 문인 사대부의 탈속미와 예술미의 백미라 할 정도로 모범적인 시어를 구사했고 동시에 높은 대중성까지 겸비한 탁발한 재능의 소유자였다. 다양하고 풍부한 시의 재료, 넓고 큰 세계관으로 유불도를 거침 없이 넘나들면서도 크게 거부감을 주지 않는 그의 문학미는 동양의 심미관의 모범이기도 하다. 소식의 인생관은 선비는 물러나 살되 풍도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백학관시'는 이것을 잘 표현한다.

오로봉앞 백학사 터에/ 늙은 소나무 정원을 꾸미고/ 시원한 바람 너무 좋아/

혼자서 숲속을 거니노니/ 사람 한명 만날 수 없고 / 어느 집 앞 누군가 바둑을 두는지/

방문 앞에 신발 두짝/ 말소리 없이 바둑돌 소리/ 바둑판 앞에 앉은 두 사람/

깊은 생각에 빠졌는데/ 물속에 주낙을 드린 듯/ 빙어와 잉어라도 낚으려는지/

어린아이도 배우고 익히면 도를 안다네/ 이기면 기분 좋고/ 져도 또한 그러하리/

근심이여 즐거움이여/ 나도 저리 살까하네/

-백학관기-

소식의 인생관은 관기(觀碁)에 잘 드러난다. 이기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지는 것 또한 기쁜 일이니 여유롭고 즐겁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라 말한다. 첨예한 승부를 속성으로 하는 바둑을 인간과 인간 간의 고상한 풍류를 나누는 교감과 친교의 장으로 보는 것이다. 소식의 이 탈속한 사고는 송의 황제로부터 향촌필부까지 운위되어 9세기 이후 동양의 문원(文苑)은 그야말로 소식의 시대였다.

(이인문작 미녀도)

소식은 조선에도 그 영향이 심대했다. 문인 개인들이 소식의 초상화 한 점 얻어 집에 걸어 놓기를 소원할 정도로 소식의 인기는 꺼질 줄 몰랐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의 화원(畵員)들의 소식 사랑도 도가 넘칠 정도였다.화원(畵員)을 국가적으로 관리하던 조선은 도화서를 예조의 아문(衙門)에 소속을 두게 하고 화원들의 실력 향상을 위해 자주 사생대회를 열고 화제(畵題)를 제시하곤 했는데 그 화제에 바둑이 빈번하게 등장할 정도다.

화원(畵院)은 도화서를 말하는 것으로 조선 성종 때 설치된 종6품관이 책임관인 독립 관청으로 예조판서의 관리를 받았다. 경국대전에는 20명의 화원과 10여 명의 예비 화원과 관리 서리 등 20명의 기타직의 편제로 되어 있다. 책임자는 종6품관인 문반이었으나 화원의 수장인 선화원(善畵員)이 종6품관이었다.

화원들은 국가의 중대사 외에도 군왕의 관심사항에도 대응해야 했다. 금강산이나 대동강  연회 등을 실화로 그려 군왕의 이해를 도왔던 것이다. 군왕은 간혹 화원들을 불러모아 즉석 사생대회를 열곤 했다. 화원들의 사기양양과 실력향상을 위한 조치였다. 사생대회에서 잘 그려진 그림들은 표구가 되어 궁안에 보관되고 때로는 대신들에게 선물되기도 했다.

순조 9년(1809) 군왕은 도화서 화원 전원을 소집하여 그림을 그리도록 했다. 화제는 임하문기성(林下聞碁聲)이었다. 숲속에서 들리는 바둑 두는 소리를 그려내란 것이다. 바둑 화제는 헌종 때도 있었다. 순조5년에는 규장각에 화원들을 불러놓고 인물산수화를 그려내게 한 바 있다. 그날 김홍도가 그려낸 그림이 '백학관기(百鶴觀碁)'다. 백학관기 또한 임하문기성의 다른 표현으로 김홍도는 그날 삼상이(三上二)의 품평을 받는다. 김홍도보다 더 뛰어난 등급을 받은 화원들이 있었다는 말이다.

'임하문기성'이나 '백학관기'는 '소식의 백학관기에서 유례한 것으로 산수간에 유유자적하던 문인들의 아취가 살아있는 말이다. 조선은 금기서화(琴碁書畵)의 바탕 위에서 바둑을 소요와 우미(優美)를 대변하는 고상한 풍류로 인식했다. 바둑이 오락과 유흥의 소일거리 중 가장 탁월한 종목으로 유행하던 조선후기에도 바둑의 인식이 여전히 군왕 앞에서도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아래서 '기성유수고송관'을 아예 자신의 호로 삼은 화원 '이인문'이 등장한다. 이인문은 조선의 화원 중 가장 출세를 했던 인물이다. 김홍도가 종6품관으로 지방 수령을 역임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이인문은 종3품관인 '첨사(僉史)'를 현지 보임받은 간단치 않은 인물이다. 이쯤되면 이인문이 몹시 궁금해진다. (다음편 화기계(畵碁契)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