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歲毛)에 오면 세정(世情)이 차분하고 인정(人精)도 따라가는 것이 보통이다. 진서(晉書) '천문지'는 '하늘과 땅의 신명이 덕에 통하니 천지간의 일을 살펴 지나간 일을 갈무리하고 다가올 일을 준비하라(以通神明之德以類天地之精可以藏往知來) 한다. 과거와 미래를 잘 잡도리 하는것이 개물성무(開物成務)의 단초라는 것이다.

개물성무는 일의 시작과 마침으로 크게는 우주자연의 이치이고 작게는 인간 개인의 삶의 전개다. 일찍이 28수(宿)와 오성(五星)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역법(曆法)을 발전시켜온 동양은 '서경'에 불인두(火印) 자국 같은 글을 박아 놓고 있다.

-백성들은 모두 따뜻한 방으로 들어가고 날짐승 들짐승들은 가늘고 부드러운 털이 난다. 임금께서 그대들 '희씨'와 '화씨'들에게 1년을 366일로 하고 윤달을 두어 사시를 정하고 1년을 정하셨다. (朞三百有六旬有六日以閏月定四時成歲)

하루, 사시, 일년 그리고 윤년을 개입시켜 력(曆)을 발전시켜온 동양사람들은 세성(歲星)의 움직임을 고려한 일년, 사시, 십간(十干), 십이지(十二支), 28수(宿), 진(辰)이라는 육물(六物)을 만들어 천문과 시간의 모든 것을 해결하고자 했다. 오늘날에 와서는 선인들의 골방 서랍 속에서만 기능하는 십간십이지의 '춘추좌전정의(春秋左傳定義)'의 정리다.

-해와 달이 교차하는 것이 진(辰)이다. 하여 십이지를 십간에 배치한다. (日月之會是謂辰.故以配日)

(60갑자를 기록한 은허갑골문 자료. 출처 은허문자집석.)

동양인들의 천문현상의 식견은 놀랍다. 그들이 세성이라 말하는 목성(木星)의 일주기가 12년에서 조금 빠지는 것을 파악한 것이 춘추시대로 과학적 관측기계의 도움 없이도 현대천문학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시차 계산은 놀랍다. 바둑이 동양에서 만가지 놀이의 왕이자 가장 오래된 놀이 중의 하나인 이유도 바둑이 담아내고 있는 속성 속에 동양의 천문관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은, 28수(宿)와 오행, 그리고 오방(五方)으로 바둑의 반상(盤上)이 축소판이다. 천원지방 속을 시간인 흑과 백(음양)이 고금왕래(古今往來)하는 것이다. 이것을 눈치챈 '육상산'은 바둑판을 보고 '하도낙서'를 깨달았다 했고 기성 오청원의 천문 발언도 나온 것이다.

경인(庚寅)은 60갑자 중 27번째다. '경'은 쇠로 만든 큰 악기를 의미하고 '인'은 산중 호랑이를 의미하니 경과 인의 결합은 무엇인가 큰일을 상징한다. 맑고 큰 쇠경 소리와, 가공스런 동물인 호랑이의 포효는 집안의 풍파와 세상의 역동성을 뜻한다. 1950년 경인년이 그런 경우다. 그러나 2010년 경인년은 파괴와 소란의 경인(庚寅)이 아니라 건설적인 포효여야 한다. 소란이 있어도 생산적인 소란이어야 하고 갈등이 있더라도 의미가 있는 갈등이어야 한다.

바둑도 그렇다.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의 통합, 인천 아시안게임의 바둑종목 특정, 이세돌의 복귀 등 불투명한 일들이 난마처럼 얽혀 소란과 갈등의 표출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바둑이 대한체육회의 산하단체로 편입이 된 이상 그에 걸맞은 바둑대표기관이 있어야 한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어부지리(?)로 탑승한 바둑이 영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인천 아시안게임에 살아남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42개 종목을 35개로 줄이는 방향으로 아시안게임이 가닥을 잡아가고 있고, 특히 인천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는 [38개] 종목을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바둑은 빠져있다. 자칫 중국이 차려 놓은 밥상을 한국이 뒤엎(?)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긴장해야 한다.

이세돌문제는 더욱 그렇다. 서로간에 소닭보듯 저리 놔둬서는 안된다. 휴직이 길어질수록 이세돌과 한국기원의 손해가 아니라 한국바둑의 손해다. 어쨌든 세모에  [비씨카드배]가 힘차게 출발했다. 2010년의 한국바둑의 수레바퀴는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떨어지는 해를 아쉬워 마라.

추운 밤이 지나면

더 크고 붉은 태양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