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이 애기가였냐는 질문에 필자는 감히 그렇다는 대답은 하지 못한다. 다만 성웅 이순신이 활동하던 시대 조선의 도락은 바둑이 압도적으로 유행했다는 것은 신빙성이 있다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난중일기'의 일독을 통해서도 금방 들어난다.

난중일기는 1592년(선조25년)부터 1598년까지 대략 7년간의 개인의 일상이자 전쟁의 기록으로 진중일기(陳中日記)다. 일기의 원명은 '임진장초' '진중일기' '일기' '병신일기' '정유일기' 등이고 난중일기라는 이름은 정조 때 유득공에게 지시하여 활자본으로 출간하며 새로 지은 이름이다. 난중일기의 첫 페이지는 임진년 1월1일 여수좌수영으로 (이순신의) 동생 여필(汝弼)이 조카 '봉' 그리고 아들 '회' 등과 함께 와 신년 인사를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 밝아오는 새해 아침이다.

동생 조카 아들이 세배를 왔다. 서로간에 덕담을 나눴다. 그리고 어머니를 떠난 지 두 해나 되도록 뵙지 못한 정한을 담아 편지를 썼다.

병사영(營)의 군관 이경신이 와 긴 화살과 작은 화살 등 여러가지 물건들을 신년을 기해 가져갔다.

(난중일기)

난중일기를 말하기 전에 먼저 한마디 해야겠다. 난중일기는 난해한 행초서로 되어 있다. 초서는 극도로 간략한 형태로 개발된 필체이기는 하지만, 이 속에 사용자의 필체 습관까지 더해지면 거의 암호화되어 사용자의 사망 후에는 그 기록물을 완전하게 독해 또는 복원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난중일기를 보면 그것을 실감한다. 난중일기는 국보다. 세상에 가장 많은 국역본(?)이 나온 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새로 출간되는 책마다 필자들이 국역에 완전을 기했다 강조(?)를 하는 것을 보면 아직도  완전한 국역본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실토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난중일기 속에서 이순신은 모두 19번의 바둑기록을 남긴다. 그가 바둑을 둔 날은 날씨와 별 상관이 없다. 전쟁에 출정을 앞둔 전날이나 전투를 치루고 온 다음날 등 어떤 날짜에 특별히 구애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순신은 조선수군의 유력자로 또는 총책임자로 일본수군과 정면으로 대치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을 음해하는 제3의 적들과도 싸워야 하는 이중고를 겪는다. 계사년(1593) 9월6일의 일기는 그런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맑다.

밥을 먹고 '우영공' 배에서 종일을 보냈다. 그곳에서 원균의 흉포한 일을 듣고 또 '정담수'가 사실무근의 말을 퍼트린 것도 알았다. 가소롭다. 바둑을 두다 돌아왔다.

(난중일기)

이순신은 원균에 대해 일종의 피해의식(?)을 보여준다. 그들은 서로 갈등하는 사이로 당시 전쟁의 골칫거리중의 하나였다. 이들의 갈등은 조정은 물론 선조임금까지 알고 있을 정도였다.

선조 26년 12월4일을 한번 보자. 선조를 위시하여 유성룡 이산해 윤두서 이덕열이 편전에 앉아 정국을 논하고 있다.  이덕열이 이순신과 원균이 서로 싸우는 통에 전쟁 수행이 차질이 있으니 이순신을 파직하여 군사작전의 일원성을 확보하자고 한다. 원균이 보내온 보고에 의하면 이순신이 전공을 지나치게 과장한다는 것이다. 듣고 있던 선조는 다른 경로를 통해 올라온 보고서를 들어 전황을 설명한다.

- 지난번 해전에서 왜장이 전함의 3층 누각에 앉아 바둑을 두며 전쟁을 지휘하는데 우리 수군선이 격돌을 하니 배가 허술하여 즉시 파괴되었다 한다. 순신이 올린 보고는 과장된 듯하다. (선조실록)

선조의 이 말에 유성룡이 그런 면도 있다고 동조를 한다. 선조는 이순신과 원균이 서로 갈등하여 고민이라 한다. 이 말을 듣고 유성룡과  윤두서가 동시에 지금은 두 장수로 전쟁을 치르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고 한다. 선조는 일단 이순신을 파직시키라는 이덕열의 주청을 물리친다.

이순신은 난중일기 속에 총 19차례의 바둑을 둔 기록을 남긴다. 이순신의 오락은 바둑 술 그리고 활쏘기가 전부일 정도로 단조롭다. 이순신과 바둑을 둔 사람은 모두 15명(아래)이다. 이순신 책임 하의 군영의 진영장들과 고급 참모는 총 30명 정도이고 보면 그들 중 거의 절반과 바둑을 둔 셈이다. 이 말은 당시의 바둑의 유행의 가늠자로 유용하다고 본다.

- 이억기, 이순신(동명이인), 이홍명, 배경남, 이경명, 박종남, 권조방장, 최천보, 최호, 가리포첨사, 광양현감, 선수사, 마량첨사, 낙안군수, 순천부사.

조선의 국방체제는 세조 때 완성된 진관체제(鎭管體制)다. 조선의 행정단위인 군현을 군사단위인 진(鎭)으로 활용, 유사시 지방의 군장들이 군사지휘관이 되는 자전자수(自戰自守) 개념이다. 이순신이 군령을 행사하던 삼도수군의 작전권은 순천만에서 충청도 오천항에 이르는 해안지대로 대략 15개 군현이 된다. 난중일기속에 유달리 지방 군수 현감 등이 등장하는 이유다.

조선후기 바둑이 도박으로 변질되어 사회문제화 될 정도로 강성을 떨쳤지만 조선전기도 그에 못지 않았다. 조정에서는 이순신과 원균의 갈등을 놓고 선조 유성룡 윤두서 이산해가 머리를 맞댄다. 드라마는 이순신을 못잡아 먹어 안달난 사람으로 이산해를 그리지만 사실의 이산해는 이순신을 두둔한다. 이곳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이 바둑을 잘 이해한 사람들이다.

필자는 조선은 바둑의 유토피아였다 말한다. 이산해의 아들 이경전은 일본통신사로 가 '본인방산사'와 대국을 하기도 했고, 원균도 이순신과 바둑을 둔 적도 있다. 성인이면 두명 중 한명은 바둑을 둘 줄 알았던 조선. 이것이 바둑의 유토피아가 아니고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