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1. 시킴 그리고 티베트바둑

2. 백면의 외국인이 보여준 기보(棋譜)

3. 우리의 것들

우리의 것들 

피터는 티베트바둑이 티베트의 전통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면서도 반문하는 왜(?)라는 질문에는 명징한 해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피터의 답변은, 이미 오래전에 국내 학자가 시킴지역을 다녀와 시킴(범 티베트)바둑을 소개하면서 시킴바둑의 배석이 그 지역 사람들이 믿는 12지신(支神)과 연관이 있다는 발언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시킴지역은 갸큐파의 근거지다. 갸큐파는 속칭 백교라 부르는 종파로 입에서 입으로 전교한다(用口傳敎之意)는 스승과 제자의 일대일 전법을 중요시하는, 티베트불교의 은밀함을 가장 잘 대변한다. 갸큐파는 13세기 티베트의 중심에서 벌어진 종교전쟁에서 겔룩파(황교)에 밀려 변방으로 몰린다.
티베트지역의 바둑은 시킴만이 아니라 부탄, 네팔, 티베트의 라싸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현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라싸에는 얼마전 기원까지 생길 정도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보다 티베트에는 훨씬 광범위하게 바둑이 두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티베트는 불교국가다. 그러나 불교국가인 티베트에 동양전통 문화에 가까운 12지신 문화가 습합된 이유는 무엇인가. 12지신은 음양오행 사상에 충실했던 중국이 만든(?) 독특한 문화로 연원을 추적하면 '산해경'까지 소급된다.

- 어떤 여자가 달을 목욕시킨다. 제준(帝俊)의 아내 '상희'가 열두개의 달을 낳고 이곳에서 처음으로 달을 목욕시켰다.  (대황서경)

산해경은 '상'나라 신화를 전한다. 상나라 사람들은 12개의 달이 매일매일 날짜를 바꾸어 하나씩 떠오른다고 믿었고 그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였다. 그 이름이 12지신이다. 12지신은 '대대례기'에 전하는 달력 '하소정'으로 공자가 기(杞)나라에 가서 구해왔다는 12일주기의 달력을 말한다. 기나라는 강족의 후예로 흉노와도 연관이 있는데 바로 이 흉노의 본거지가 '서역'이다. 
12기일법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사천, 귀주, 운남성 일대에 흩어져 사는 '이족'이다. 운남은 티베트지역으로 이 지역의 산곡이 '이족'의 본거지다. 서역은 예부터 달을 숭배하고 달을 소재로 한 수많은 전설과 신화가 난무한 곳이다.

그랬다. 12지신은 오히려 중국보다 서역이 원조였다(12지신 문화는 전 아시적인 문화였다는 말이 더 맞을 듯하다). 서역은 곧 티베트이다. 티베트에서는 원숭이해(申)를 중요시하는 풍속이 있다. 사기(史記)는 12지신 중 원숭이로 표현되는 신(申)을 "음이 성해 만물을 끌어당겨 위협한다." 했지만 티베트는 티베트에 불교를 전파한 연화생(파르마삼바바) 보살의 탄생년으로 기리고 추앙하며 12지신 문화를 더욱 발전계승한다.

구한말 개화파면서 나름의 선각자였던 김옥균은 바둑의 동전(東傳)을 말하며 천축설을 주장한 바 있다. 한반도의 바둑은 천축(서역)에서 들어왔다는 것이다. 박람(博覽)을 중요시하던 시대 애기가면서 고수였던 김옥균의 말이니 허투로 들리지 않는다. 이 말은 김옥균보다 수십년 전 사람인 김몽인(金夢璘 ?-1850)도 착기설(着碁說)을 통해 바둑의 동전(東傳)을 궁금해 한다. 김몽인의 말도 김옥균과 비슷하다. 조선의 바둑이 서역으로부터 왔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바둑에 대한 궁금점을 표시한 사람은 수없이 많지만 한반도의 바둑의 유입을 궁금해한 사람은 지극히 드물다. 이런 상황에서 김옥균과 김몽인의 발언은 특출(?)나다.  이 두 사람은 한반도의 바둑의 전래를 서역으로 보고 있다. 무엇인가 근거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사람보다 진일보한 학자라 할 수 있는 최남선은 정색을 하고 한반도의 바둑의 유래는 중국이다라며 대못질을 한다. 참고할만한 바둑사의 교범이 없던 시대 최남선의 논지는 탁월하다. 최남선이 바둑사는 아직도 한국 고대바둑사의 전부(?)라 할 수 있다.

티베트바둑의 배석을 보면 곧바로 순장식 바둑이 떠오른다. 17도 반상이 19로로 확대되면서 약간의 배석이 달라진 것 외에는 바둑의 원형이 거의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중국식이라 부르는 4배자식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4배자, 12배자, 16배자 바둑은 모태가 같은 형제라 할 수 있겠다. 이것을 티베트, 중국, 한국식 바둑이란 이름으로 전혀 별종의 어떤 것으로 규정하는 것은 형식에 불과하다. 그러고 보면 바둑은 참으로 유구하다.

                                                    순장바둑 배치도
 

티베트바둑 배치도

바둑은 살아있는 화석이면서 살아있는 신전(神展)이다. 오래된 것은 정령이 붙기 마련이다. 우리는 바둑의 역사를 궁금해면서 살아있는 화석을 즐기면서 그 신전 앞에 경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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