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다른 골목에서 살아남기.

명사(明史)는 주원장의 지략을 기록한다. 주원장은 야전(野戰) 시절 화주(和州)에서 태평부(太平府)로 공격 거점을 정하고 고민에 빠진다. 군량과 군수품이 다한 탓이었다. 주원장은 참모들을 모아놓고 의견을 구한 바 모두 불가를 외쳤다. 허약한 내실로 강한 적을 칠 수 없다는 것이다.

화주에 주둔한 주원장군은 사기가 떨어져 있었다. 주원장은 이 상황에서 지략을 낸다. 주원장은 부대를 화주에서 강을 건너 태평부 관할지역으로 이동시킨다. 그리고 부대가 타고온 배를 모두 강물에 흘러보낸다. 마지막까지 아껴온 식량을 남김없이 풀어, 밥을 해 병사들을 먹이고는 일장 연설을 한다.

"배는 이제 없다. 식량도 모두 먹어 치웠다. 우리는 퇴로가 없다. 그러나 보라. 저 성안에 많은 식량과 진귀한 보물들이 있다. 그것은 병사들 너희의 것이다. 여기서 죽을 것인가?  아니면 죽더라도 저 성안에서 죽을 것인가?"

주원장군은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알고 필사적으로 성을 공략하여 탈취한다. 주원장은 학식도 없고 무식했다. 본래 배운 바도 없었다. 그러나 남다른 지략과 배포로 사람을 모으고 전쟁을 하는 방법에 밝았다. 이것이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의 힘이었다.

고대의 병법은 퇴로가 없는 적을 몰아붙이는 방법을 금한다. 그리고  마지막 수단으로 배수진(背水陳)을 권한다. 이 방법은 그야말로 병법의 최후의 수단이다. 사람이 숨을 거두려는 순간에 마지막으로 써보는 비방(秘訪)인 것이다. 그런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퇴로가 없는 곳으로 상대를 몰고 배수의 진으로 맞서는 형국이다. 마주치려는 기관차 같다. 이 상황을 지켜보며 세상이 놀라고 있다. 당사자의 심정은 오죽하랴.

이세돌의 착점(着點).

이세돌이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바둑을 둘 수 없을 정도란다. 그가 받은 마음의 상처는 동료들로부터 받은 비토 때문이란다. 기왕의 긴장관계를 유지해 왔던 한국기원과 노장(?) 기사(棋士)들로부터의 비토는 각오하고 있었던 터라 견딜만했으나 80여 명의 기사들의 지적은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이세돌은 이 상황에서 곧바로 승부수를 던진다. 1년6개월간 휴직한다는 휴직계를 낸다. 한마디로 물러서지 않고 맞선 것이다.

과연 승부사다. 이세돌답다.

그러나 이세돌의 수는 반상에 놓일 때 빛이 난다. 누구도 착상하지 못하는 의표를 찌르는 의외의 수읽기는 반상에 놓일 때 빛나는 태양이고 달이다.

이세돌은 반상이 아닌 세상에 착점을 했다. 문제(?)가 있으니 시정을 하라는, 한국기원과 기사회의 요구에 휴직계로 반격을 한 것이다. 한마디로 몽니다. 기왕 낸친걸음이니 끝까지 가보자는 것이다. 그 끝은 이세돌 자신이나 한국기원 양쪽에 모두 상처다.

이 싸움은 승자가 없다. 누구 하나 이익될 일도 아니다. 그저 욕하고 삿대질하며 이전투구를 벌이는 것뿐이다. 이세돌이 자신을 버려 한국바둑을 고쳐 놓겠다는 마음으로 휴직계를 던졌다면 착각이다. 그런 생각이였다면 이세돌은 은퇴를 선언했어야 옳다.

그래야 바둑계가 일순 침묵하고 이제까지의 불미함을 돌아보고 아쉬워 하며 반성도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세돌은 은퇴를 한 것이 아니다. 그는 적어도 이 땅의 바둑팬들의 가슴에 남아 태양같이 뜨거운 에너지를 키워 다시한번 일출(日出)했을 것이다. 그래야 뭐가 돼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사항이고 현실은 허전하고 초라하다.

휴직계의 제출과 중국 갑조리그의 참가라는 착점은 이세돌이 보여준 그간의 반상의 착점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저 시간을 벌기 위한 고민 없는 착수에 불과하다. 갑조리그의 계약이 중요하다면 이세돌이 참가하고 있는 국내 여러 기전도 중요하다. 아니 더욱 중요할 것이다. 당장 혼란을 겪고 있는 명인전이나 물가정보배 등을 보라.

이번 이세돌의 행동이 어떤 결단인 듯해도 그것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은 모두 같은 것이 아니다. 이세돌은 천재적인 기사다. 그는 역동적인 바둑으로 이세돌류를 창조한 사람이다. 천재는 세상에 불일치하다는 말이 있다. 천재는 독불장군일 때 빛이 나는 실례를 우리는 많은 천재들을 통해 본다. 과학이나 음악 미술 등에서 그렇다. 그러나 이세돌은 혼자하는 과학이나 예술계에 있지 않다. 그는 항상 대면하는 상대가 있고 '리그'라는 무대에 산다. 그리고 아낌 없는 지원을 퍼붓는 팬들도 있다.

이세돌은 지금 그 세계에서 들볶이고 있다. 허나 그중의 반은 이세돌 자신의 책임이다.